힘 빠진 켈리…고민 깊어진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가 “카스를 잡겠다”며 야심 차게 선보인 맥주 신제품 ‘켈리’ 성적이 신통치 않다.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지난해 4월 출시 이후 최단 기간 100만상자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전국에 ‘켈리 열풍’이 불어닥쳤다. 지난해 8월에는 대형마트·편의점 등 소매점 판매액 기준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카스·테라 다음이 켈리였다. 하지만 여름 성수기를 지나면서 힘이 빠지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해 10월 5위까지 내려앉았고 11월과 12월에도 순위가 그대로 유지됐다. ‘켈리 띄우기’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은 하이트진로 입장에선 더 아쉬운 성적이다.
소매전 판매액 5위까지 추락
테라와 ‘카니발라이제이션’도
켈리의 최근 부진은 통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장조사기관 마켓링크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맥주 브랜드별 소매점 판매액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위기론이 본격 부상했다. 출시 초반에는 판매액이 빠르게 늘었다. 4월 46억원에서 5월 133억원, 6월 262억원까지 증가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여름 성수기가 지난해 9월부터다. 전월 대비 판매액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카스, 롯데아사히 등 타 브랜드 증가폭에 못 미치며 순위가 쳐졌다. 11월에는 171억원까지 쪼그라들며 하이트진로 발포주 브랜드 필라이트에 밀린 5위까지 내려앉았다. 목표했던 ‘카스 타도’도 멀어지는 모양새다. 카스와 60억원까지 격차를 좁혔던 테라와 켈리 합계 판매액은 지난해 12월 다시 80억원으로 벌어졌다.
처음부터 제기됐던 ‘카니발라이제이션’ 우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제품이 기존 제품 점유율을 잠식하는 현상으로, 하이트진로의 경우에는 켈리가 기존 테라 매출을 깎아 먹었다는 의견이다. 기존 하이트를 대체하며 데뷔한 테라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한 맥주업계 관계자는 “음식점이나 주점 쇼케이스에 자사 제품을 채워넣기 위한 영업팀 간 경쟁이 치열하다”며 “카니발라이제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테라가 아닌 카스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데,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 입장에서는 이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흥뿐 아니라 가정용 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켈리 출시 전 15%에 육박했던 테라 소매점 매출 기준 점유율은 5월 12%대로 줄어든 데 이어 12월에는 10.4%까지 떨어졌다.
비용 급증…맥주 부문 적자 전망
신제품이 고전하는 것은 보수적인 주류 시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문제는 갈수록 눈에 띄게 힘이 빠진다는 사실이다. 켈리는 종전 테라가 보유한 최단 기간 100만상자 판매 기록을 3일 단축하는 등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출시 99일 만인 7월 1억병 판매를, 9월에는 2억병을 돌파했다. 역대 맥주 신제품 중 가장 빠른 속도였다.
급격히 시들해진 인기를 놓고 ‘마케팅 효과가 다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가장 많다. 이른바 ‘약발이 다했다’는 평가다. 하이트진로는 4월 켈리 출시와 함께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인기 스타였던 손석구를 모델로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갔다. 홍보를 위해 서울 강남과 대구·부산에서 팝업스토어 ‘켈리 라운지’를 운영했고 7월에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켈리×JTBC 최강야구’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2분기 맥주 부문 영업손실폭이 급격히 커지면서 마케팅비를 대폭 줄인 모습이다. 덕분에 3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때부터 켈리도 힘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이트진로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광고선전비는 19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7% 늘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주류 담당 애널리스트는 “단순 광고 홍보는 물론 유흥 채널을 놓고 오비맥주와 펼친 영업 전쟁에서 쓴 비용도 하이트진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켈리 띄우기에 쓴 액수가 워낙 크다. 지난해 마케팅 비용이 평소 대비 500억원 이상 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초반 공격적인 마케팅 덕에 켈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본다”며 “유흥 채널에서도 수요가 꾸준하다. 이제부터는 진짜 제품력 싸움”이라며 자신감을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갸웃하는 분위기다.
켈리의 애매한 제품 콘셉트가 발목을 잡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켈리는 기존 맥스를 대체하는 ‘올몰트’ 맥주다. ‘올몰트’는 제조 과정에서 전분류 등 다른 첨가물을 섞지 않고 100% 맥아만 사용한 맥주를 말한다. 진한 향과 묵직한 맛이 특징이지만 국내에서는 맥아 비중을 낮춰 청량함을 강조한 ‘라이트 라거’가 대세로 인식돼왔다.
하이트진로는 묵직함과 청량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며 켈리를 내놨다. ‘부드럽게 강타한다’라는 카피 문구만 봐도 그렇다.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애매해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수제맥주업계 관계자는 “최근 맥주는 소주·와인 등과 함께 섞어 먹는 ‘베이스’ 역할이 더 중요해졌는데 올몰트 맥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며 “올몰트 맥주답게 아예 진한 향과 특유의 묵직함으로 승부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크러시·아사히…경쟁 심화된다
켈리 성패를 평가하는 건 시기상조다. 중요한 건 올해부터다. 전망은 엇갈린다. 기존 테라에 켈리가 추가된 덕분에 하이트진로 맥주 매출이나 존재감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라는 긍정론도 많지만 회의적인 시선도 분명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올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맥주 시장 경쟁이다. 업계 1위인 카스가 여전히 건재한 데다 지난해 품절 대란을 일으킨 일본 ‘아사히 생맥주캔’ 후속작 ‘아사히 쇼쿠사이’가 올봄 국내 상륙한다. 지난해 11월 롯데칠성에서 선보인 신제품 ‘크러시’가 올 들어 본격 영업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부담이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판국에 새 경쟁자가 계속 늘어나는 형국이다.
올해 7월이 하이트진로 창립 100주년이라는 점도 켈리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100주년 계산 기준은 1924년 진천양조상회를 모태로 출발한 소주 회사 진로다. 2005년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 2011년 합병하면서 지금 하이트진로에 이르렀다. 굳이 따지면 ‘소주 100주년’인 셈이다. 업계에서 “아무래도 소주 영업·마케팅에 더 힘이 실리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인 소주 100주년인 만큼, 소주 점유율 지키기에 소홀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맥주 투자를 줄이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이벤트를 앞둔 만큼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5호 (2024.01.31~2024.0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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