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화려한 영광의 날’ 다시 올까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1. 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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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게임 대장주

“당분간 긍정적인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엔씨소프트의 현재 상황을 두고 게임업계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말 그대로 엔씨소프트는 ‘수렁’에 빠졌다. 2022년부터 하향세로 접어든 주가는 반등할 기미가 없다. 한때 100만원을 넘어섰던 주가는 올해 들어 1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실적도 급감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100억원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시장 분석이다. 그나마 믿을 구석이었던 신작 ‘쓰론 앤 리버티(TL)’는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분위기다. 돌파구조차 쉽게 보이지 않는 모습에 엔씨소프트는 이례적으로 구조조정까지 단행하기 시작했다.

엔씨소프트가 기나긴 부진의 초입에 들어갔다. 실적 주가가 부진하고 신작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진은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매경DB)
기존 작품 매출 하향 속 신작 부재

경영진의 ‘오판’ 부메랑으로 돌아오다

엔씨소프트가 수렁에 빠진 이유는 2가지다. 핵심 IP 리니지의 부진, 리니지를 받쳐줄 다른 게임의 부재다.

엔씨소프트는 핵심 IP인 ‘리니지’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다. 리니지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막대한 현금을 지불하고 아이템을 사야 한다. 때문에 게임 사용자 수 대비 수익이 다른 게임보다 월등히 높다. 리니지 시리즈가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엔씨소프트 실적은 2021년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문제는 2022년부터 시작됐다. 리니지가 돈을 쓸어 담자 다른 게임사들이 리니지와 비슷한 수익 모델과 그래픽을 가진 ‘리니지 라이크’류 게임을 쏟아냈다. 결과적으로 기존 리니지 이용자 일부를 다른 게임에 뺏겼다. 동시에 리니지와 비슷한 게임만 나오면서 게임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느꼈다. 다른 게임은 물론, 원조 리니지까지 외면하기 시작했다. 리니지 시리즈 수익과 이용자 수 감소세가 이어지자, 엔씨소프트에는 비상이 걸렸다. ‘리니지’ 이름을 달고 나갈 게임 공개가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개발이 다 된 게임들은 급하게 리니지 색깔을 빼는 작업에 들어갔다. 일례로 ‘더 리니지’라는 이름을 쓰려던 신작 ‘TL’ 이름을 ‘쓰론 앤 리버티’로 바꾸고 게임 안에 리니지와 관련된 요소를 대거 삭제했다.

신작 공개가 밀리고 취소되자 엔씨소프트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대부분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매출이 하락한다. 때문에 게임사가 지속적으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올리려면 2~3년 주기로 신작을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리니지 이슈로 인해 엔씨소프트는 기존 게임 매출이 하락할 때 신작을 내지 못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려줘야 할 신작이 제때 나오지 못하면서 엔씨소프트 실적 성장세는 그대로 멈췄다.

리니지를 받쳐줄 다른 IP의 부재가 실적 악화를 가속화시켰다. 일반적으로 게임사는 게임 여러 개를 내놓는 다작 전략을 택한다. 게임 하나에만 매출을 의존하는 구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특정 게임 실적이 하락해도, 다른 게임으로 메울 수 있어서다. 엔씨소프트는 지금까지 다작 전략과 거리가 다소 멀었다. 핵심 IP인 리니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과거에는 ‘아이온’ ‘트릭스터’ ‘블레이드&소울’ 등 다른 게임에서도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 그러나 회사가 리니지 IP를 중점적으로 키우면서 매출 대부분이 리니지 IP에서 발생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가뜩이나 리니지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경영진 오판이 더해졌다. 수익성이 높은 리니지 과금 모델을 다른 게임에 적용하면, 다른 게임 매출액이 오를 것이라 판단한 것. 2021년 공개한 신작 트릭스터M, 블레이드&소울2에 리니지식 수익 모델을 활용했다. 다른 신작에도 리니지 성공 방식을 이식하겠다는 의견을 연달아 피력했다. 이는 완벽한 ‘판단 오류’였다. 신작들이 본연의 매력은 사라진 ‘양산형 리니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용자 외면을 받으며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의미 있는 매출을 내는 게임 IP가 사실상 리니지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이후 리니지 시리즈마저 무너지자 엔씨소프트 실적은 순식간에 급감했다.

뼈아픈 TL의 부진

증권가 58% 사실상 ‘매도’

물론, 엔씨소프트가 아예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리니지 색깔을 뺀 ‘TL’을 재빨리 준비하며 반전을 꾀했다. TL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나 부활할 수 있었다.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TL은 현재 국내에서 기대 이하 흥행을 기록 중이다. 게임 이용자가 모이지 않아 서버를 21개에서 10개로 줄이기까지 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달 지난 게임이 서버를 줄이는 것은 흔치 않은 현상이다. 아마존게임즈를 통해 해외 공개를 준비하고 있지만, 현재 분위기상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해외 게임 이용자들은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한국식 수익 모델에 대한 거부감이 더 강하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TL 흥행 실패로 엔씨소프트 개발력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새로운 장르와 스타일의 게임으로 기존 리니지 이용자층이 아닌 다른 고객을 공략해야 하는데, 고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장 시선은 냉정하다. 현재 보고서를 낸 증권사 58%가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했다. 매도 의견이 잘 나오지 않는 국내 증권사 특성상, 중립 의견은 사실상 매도와 똑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목표주가만 낮추고 투자의견을 ‘매수’로 제시한 곳도, TL의 부진이 길어지자 중립으로 바꿨다. 김진구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향후 엔씨소프트가 지속 가능한 성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과도한 과금을 유도하는) 현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늦었지만 ‘체제 전환’ 스타트

인력 조정 마무리…남은 건 ‘버티기’

길어지는 부진의 늪에, 엔씨소프트는 구조 개편이라는 대수술을 진행했다. 경영진 변화는 물론, 이례적으로 인력 구조조정까지 단행했다.

기존 오너 가족 중심 경영 체제에서 벗어나 C레벨급 임원에 개발자 출신 전문경영인을 대거 포진시켰다. 또 창사 이래 처음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법조인 출신이자 경영 전략 전문가인 박병무 대표를 영입했다. 엔씨소프트는 넥슨·넷마블과 달리 창업주의 존재감이 강했다. 김택진 대표를 비롯한 김택헌 부사장, 윤송이 사장 등 오너 일가가 회사 경영에 적극 참여했다. 이번 개편으로 전문경영인이 회사 운영의 키를 잡는 체질 변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김택헌 부사장과 윤송이 사장은 해외 시장 개척에 집중하고 국내 경영에서는 물러났다. 이들의 빈자리를 채운 박 공동대표를 비롯한 개발자 출신 임원들은 ‘포스트 리니지’ 체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동시에 자회사 엔트리브를 폐업하는 등 비용 감축을 위한 인력 구조조정도 착실히 진행 중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부서를 없애고 인력을 재배치했다. 현재 인력 조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리니지 매출이 받쳐줄 때 미리 변화를 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변하면 된다. 인력을 줄였지만, 여전히 핵심 게임을 만드는 개발 인력은 그대로 있다. 아이온과 같은 비(非)리니지 IP를 성공시킨 경험도 보유했다. 평가가 좋은 배틀 크러시, 프로젝트G의 개발까지 버텨낸다면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5호 (2024.01.31~2024.0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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