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지 마십시오!"... 저출생, 가습기 그리고 이태원

김성욱 2024. 1. 3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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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후배 부모들 향한 절규... 1258명·304명·159명을 대하는 국가의 자세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김성욱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초부터 저출생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이미 OECD 꼴찌인 한국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명에서 더 떨어질 거란 어두운 전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새해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저출생 대책을 특별 주문했다. 신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1호 공약으로 삼은 것 역시 저출생 대책이었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기록적 저출생에 관심을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28일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체험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아이를 낳을 때 소요되는 고비용 문제를 다뤘다.

여권을 중심으로 저출생이 화두로 떠오른 사이,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판결 하나가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2심이었다. SK케미칼·애경·이마트 임직원들이 무죄라고 판단했던 1심이 뒤집히고 유죄가 떨어졌다. CMIT·MIT(이소티아졸리논 계열)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들에게 유죄가 선고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지고 무려 13년 만의 일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시민사회단체가 지난 1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인근에서 열린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의 2심 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연합뉴스
 
판결 이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취재했다. 중증 피해자들의 폐병은 더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유죄 판결을 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폐 기능 저하로 스스로 호흡을 못했던 아내와 4년 전 사별한 김태종(70)씨는 "정부에서 출산율 얘기하는 걸 들으면 코웃음이 난다"고 했다. "정부에서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만 1200명이 넘는데, 사람 목숨값을 이렇게 헐값으로 취급하는 나라라면 애를 안 낳는 게 정상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는 "10년 넘게 지났건만 유독성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허용한 국가 책임은 아직 인정조차 안 됐다"고 했다.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 비슷한 절규가 울렸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었다. 참사 발생 437일만에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마저 대통령 거부권으로 무산될 수 있다는 소식에 놀란 가족들이 급하게 모여 삭발식을 하는 자리였다. 희생자 고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57)씨가 머리를 깎기 전 마지막으로 성토했다.

"오늘 (여당이) 출산장려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더군요. 아이 낳지 마십시오! 이 나라에선 살 수 없습니다! 새끼 키우고 살 수 없는 나라입니다! 아이 낳지 마십시오!"
  
 지난 1월 18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가 의결된 가운데, 서울 용산 대통령실앞에 급히 모인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국민의힘 규탄 및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법 즉각 공포를 촉구하며 단체 삭발을 했다. 삭발을 마친 고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57)씨를 다른 유가족이 부둥켜 안고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1258명, 304명, 159명

1258명. 김태종씨 말대로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자수다.
304명. 2014년 세월호 참사 사망자수다.
159명. 2022년 이태원 참사 사망자수다.

언뜻 출생률과는 무관해 보일지 모르는 세 참사다. 하지만 이 숫자들을 천천히 다시 쳐다본다. 1258명. 304명. 159명.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평범한 '동료 시민'들이 아무 잘못 없이 한꺼번에 죽었을 때, 국가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 인간은 본다. 그리고 학습한다. 적응한다.

윤 대통령은 30일 결국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가족들이 언 땅에 오체투지를 해가며 요구한 진상조사기구를 거부한 이유, 그리고 대신 내놓은 '피해자 지원책'의 부실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번에 정부에게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유가족에게 사전 설명도 없이 이같은 내용을 언론에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가 반발을 산 점이다.

정부·여당은 한발 더 나아가 특별법에 대해 "정쟁의 수단이 될 수 없다"(한덕수 국무총리), "재난의 정쟁화"(정희용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라고까지 언급했다. 이전 참사 때와 기시감이 든다. 정부 발표를 접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모욕했다"고 울었다.

1258명. 304명. 159명. 13년 사이 세 차례 대형 참사를 겪고도 유가족들과 충분히 만나 설명하고, 궁금증을 풀고, 대화하고, 신뢰를 형성해가는 상식적인 국가를 만들지 못한 것은 바닥을 기는 우리의 출생률과 관계가 없을까?

마치 후배 부모들에게 당부하듯 "아이 낳지 마십시오!"라고 외쳤던 이태원 유가족 박영수씨는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도 똑같이 소리치고 있었다. 박씨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소식을 듣고 광화문 길가에 쓰러졌다. 119 구급대에 실려갔다. 한국이란 나라에 사는, 유달리 적응 능력이 특출나다고 정평이 난 인간들은 이 광경을 또 숨죽여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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