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혼, 신용불량, 실직... 2년전 '전세광고'에 모두 속았다
[박수림 기자]
▲ 광주 광산구 임대아파트의 임차인 박정현(가명)씨는 지난 24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임대사업자로부터 속아 신용불량자가 된 상황"이라며 "아이가 셋인데 남편과 이 집 때문에 다툼이 많아져 이혼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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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2년간 전세대출 이자 전액 지원(2년간 무이자).'
'살아보고 결정하자! 2년 단위 갱신 계약(2년마다 즉시 퇴거 가능).'
2년 전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서 본 이 광고 때문에, 세 아이의 엄마 박정현(가명)씨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이혼까지 하게 된 박씨는 '그 광고만 안 봤더라면 지금 이렇게 살지 않을텐데'라며 매일 아침을 후회로 시작한다.
임대사업을 하는 A법인이 내건 위 광고 문구는 거짓이었다. 2년 간 전세대출 이자를 지원한다는 보기 드문 조건과 계약이 끝날 즈음 중학교에 진학할 아이를 생각해 고심 끝에 전세계약을 맺은 박씨였다. 하지만 이자 지원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6개월 만에 끊겼고, 곧이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근 전세계약 기간이 끝났음에도 A법인은 전세보증금 3억 9000만 원 또한 돌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박씨는 이사할 집을 알아볼 수도 없다. 매달 꼬박꼬박 찾아오는 이자 지급일이 오도가도 못 하는 박씨를 더욱 옥죄고 있다.
▲ 광주 광산구 임대아파트의 임차인 박정현(가명)씨와 세 자녀를 지난 24일 자택에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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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문제의 그 집'을 찾았다. 거실 가운데서 춤을 추던 아이들이 와락 엄마 품에 안겼다. "이 추운 날씨에 아이 셋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나..." 박씨는 깊은 숨을 내뱉었다.
집엔 박씨와 세 아이만 있었다. 빚이 늘면서 남편과 자주 다퉜던 박씨는 결국 이혼을 했다. 10년 넘게 주부로 살았던 박씨는 이자 연체를 막기 위해 보험회사에 취업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가 얻은 건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었다.
▲ 광주 광산구 임대아파트의 임차인 최시현(가명)씨의 아이가 24일 자택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최씨는 "임대사업자가 전세 대출 이자 대납을 약속해 계약했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매달 160만 원의 이자 부담으로 아기용품마저 계속 중고 거래로만 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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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인 최시현(가명)씨 부부는 오는 2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박씨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같은 날 찾은 부부의 집에선 생후 7개월 된 아이가 장난감 몇 개를 쥔 채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와 놀아주던 최씨였지만 인터뷰 중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대출 이자를 대납하겠다는 A법인에 속아 매달 160만 원 정도의 이자를 내고 있다"며 "아이 장난감, 용품마저 중고거래로만 구매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최씨는 지난해 5월 A법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5개월 만에 '대납하지 않은 이자와 전세보증금을 지급하라'는 광주지방법원의 조정이 이뤄졌다. 법원의 조정은 (2주일 이내에 당사자 이의신청이 없을 경우) 확정판결의 효력을 갖지만, A법인은 이 또한 이행하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의 윤은수(가명)씨 또한 '대납하지 않은 이자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조정을 받아냈지만 A법인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 광주 광산구 임대아파트의 임차인 김서진(가명)씨가 지난 24일 집에 쌓여 있는 짐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기용품 사업을 하던 김씨는 입대사업자가 2년 간 대출 이자를 대납하겠단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고액의 이자 부담을 지게 됐고 결국 사업도 접었다. 집 곳곳에 쌓여 있는 짐들은 사업을 진행하며 취급했던 물품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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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혐의 부인한 법인 "경기 침체 때문"
A법인의 주소를 찾아 지난 23일 광주 동구의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밖에선 간판을 찾을 수 없었고, 우편함에서 A법인의 이름을 확인한 뒤 인기척 없는 계단을 올라갔다. 불 켜진 사무실의 투명 유리문엔 A법인이 아닌 다른 상호가 적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이내 문이 열렸고 퇴근을 준비하는 듯한 직원 3명을 만났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취재 의사를 전하자 이들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임차인들에게 약속한 이자 대납을 왜 이행하지 않았는지, 전세계약 만료에도 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지 물었다.
직원 3명 중 1명이 명함을 건네며 답변에 나섰다. '차장' 직함이 붙은 그의 명함 역시 A법인 이름이 아닌 유리문에 적힌 다른 상호가 적혀 있었다.
▲ 광주 동구에 위치한 A법인의 사무실을 지난 23일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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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 두 문서(임대차계약서, 이자대납확약서)가 8년 계약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짚어봤다.
A법인과 임차인들이 쓴 임대차계약서를 살펴보니, 계약기간은 모두 2년으로 적혀 있었다. A법인 측은 계약서의 '민간임대주택 종류' 항목 중 '8년'에 체크가 돼 있으니 계약기간 또한 8년이라고 주장했는데, 해당 항목은 말 그대로 민간임대주택 종류가 '8년 임대주택'인지 '10년 임대주택'인지 기재하는 문항이다.
이강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은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A법인 측이 주장하는) 8년에 체크된 부분은 전세계약 기간이 8년이란 게 아니라 임대사업자가 해당 주택을 8년 동안 임대주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임차인 김서진씨는 "2년만 살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전세계약 기간이 2년인지' 여러 번 물어봤고, (A법인 측에서) '그렇다'고 해 계약했다"고 떠올렸다.
또 다른 문서인 이자대납확약서 중 일부엔 이자 대납의 조건으로 "8년 전세계약을 함에 있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확약서도 있었다. 임차인 최시현씨는 "계약 당시에도 (A법인에) 해당 문구를 문제 삼았는데 '임대차계약서에 계약 기간을 (2년으로) 명시했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 A법인과 임차인이 전세계약한 임대차계약서 중 일부. 위쪽은 계약기간이 2년으로 적혀 있는 부분이고, 아래쪽은 '민간임대주택 종류'가 '8년 임대주택'으로 표기된 부분이다. A법인은 아래쪽 내용을 이유로 "8년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는데, 이강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은 "8년에 체크된 부분은 전세계약 기간이 8년이란 게 아니라 임대사업자가 해당 주택을 8년 동안 임대주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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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법인과 광주 광산구 임대아파트를 계약한 여러 임차인의 이자대납확약서를 살펴보니 일부에 이자 대납의 조건으로 "8년 전세계약을 함에 있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아래 사진은 그러한 문구가 있는 확약서, 아래 사진은 그렇지 않은 확약서다. 임차인 최시현(가명)씨는 "계약 당시에도 (A법인에) 해당 문구를 문제 삼았는데 '임대차계약서에 계약 기간을 (2년으로) 명시했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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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들, A법인 대표 검찰 고소
앞서 만난 A법인 직원은 "임차인들을 기망하거나 전세보증금을 편취하는 등의 사기는 없었다"며 "임차인들이 형사고소도 진행했으나 무혐의 처분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임차인 9명은 이자 대납이 이뤄지지 않자 지난해 2월 A법인 대표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A법인이 애초에 2년 분의 이자를 대납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고 지적했으나, 광주 광산경찰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불송치).
하지만 임차인 9명 중 5명(피해액수 약 20억 원)은 전세계약이 끝났거나, 또는 끝나가는 현 시점까지 이자 대납은 물론 전세보증금 반환도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강조하며 최근 A법인 대표를 검찰에 재차 고소했다.
이들은 "1년 전 경찰에 고소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2년 전세계약 기간이 끝난 임차인들이 생겼고 여전히 전세보증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A법인이 임차인들에게 처음부터 전세대출 이자 및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지난 29일 광주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추가로 임차인 1명(피해액수 약 4억 원)도 고소를 준비 중이다.
▲ 광주 광산구 임대아파트의 임차인들이 2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광주의 한 임대사업자는 이들과 2년 간 대출 이자를 대납하겠다는 내용의 전세 계약을 맺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계약 만료 또는 만료를 앞둔 상황에서 보증금도 반환하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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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2년 2월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광주 광산구 민간 임대아파트 전세 홍보 글. 당시 해당 아파트 임대사업자는 비슷한 홍보 글을 수차례 올렸다. 최근 계약 기간이 끝났거나 끝나가는 임차인들은 "이자 대납을 미끼로 전세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자 대납도, 보증금 반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
ⓒ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 |
[반론보도] <[르포] 이혼, 신용불량, 실직.. 2년전 '전세광고'에 모두 속았다> 관련 |
본 신문은 1월 31일자 <사회>섹션, <[르포] 이혼, 신용불량, 실직.. 2년전 '전세광고'에 모두 속았다>라는 제목으로 임대사업을 하는 A법인이 전세계약상의 이자 납부 약속과 전세금 반환을 이행하고 있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이자 대납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으며, 임차인들과 약속한 이자 대납 피해 복구에 대해 최선을 다 하고 있고 임차인들의 이혼 등 어려운 상황은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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