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초부터 AI발 칼바람...물류업체 UPS "관리직 1만명 감원"
연초부터 미국 기업에서 인력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인공지능(AI)를 활용하는 대신 인력을 줄이겠다는 기업이 이어지는 한편 실적 악화나 인수합병(M&A) 후속 조치로 감원에 나선 곳도 있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경기동향계'로 불리는 물류업체 UPS가 관리직 직원을 중심으로 1만2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UPS의 전 세계 직원은 49만5000명으로, 이 중 관리직은 8만5000명이다.
UPS가 구조조정을 하는 이유는 매출 둔화와 순익 감소 때문이다. 이날 실적 발표에 따르면 UPS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7.8% 줄었고, 1주당 순이익도 급감했다.
코로나 19 때만 해도 온라인 쇼핑이 급격히 늘면서 소포 배달이 늘어난 덕에 UPS 실적은 좋았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 소포 물량 감소로 매출이 줄자 자구책이 절실해졌다.
UPS는 AI 도입을 선택했다. 앞서 이 회사는 화물 운임 등을 정할 때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했고, 그 결과 가격 책정 부서에 필요한 인원을 줄였다. 캐롤 톰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감원은 회사 운영방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AI를 비롯한 신기술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설사 배달량이 늘어도 한 번 줄인 관리직 직원 규모를 이전처럼 늘리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번 인력 구조조정으로 10억 달러(약 1조3344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WSJ는 보도했다. 언어학습 플랫폼 듀오링고의 경우, 계약직 근로자를 10% 줄이는 대신, 일부 콘텐트를 만드는데, AI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기술직과 광고직 직원 1000명 이상을 해고한 데 이어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도 일자리 100여개를 없애기로 했다. AI 열풍을 주도하는 구글이 AI 기술을 도입해 특정 서비스 내에서 맞춤형 광고를 만들 수 있게 되자, 기존처럼 광고 분야에 많은 직원을 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마존도 스트리밍·스튜디오 운영 직원 수백 명을 내보냈고,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도 정규직 인력의 9%인 1000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거대 테크 기업들의 해고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면서 올해는 타깃을 정해서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했다. 이어 "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대신, AI 등 소수 핵심 부문에 기업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이팔 올해 2500명 해고…신규 채용 없다"
미국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도 올해 직원 2500명을 해고할 계획을 밝혔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알렉스 크리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회사는 직원 수를 줄이고 올해 신규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 등 회사 규모를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500명은 페이팔 전체 직원의 9%(2022년 기준)다.
페이팔은 간편 결제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업이익이 줄고 지난 1년간 주가가 20% 이상 내리는 등 타격이 컸다. 경영 악화에 따른 책임을 지고 지난해 8월 댄 슐먼이 물러나면서 크리스가 CEO 자리에 올랐다. 크리스 CEO는 "감원을 통해 수익성 있는 성장을 도모하겠다"면서 "성장을 가속할 사업 분야에 계속 투자하겠다"고 덧붙였다.
M&A 해도 안 해도…인수합병 발 해고도
M&A 여파가 인력 조정에 영향을 준 기업도 있다. 미 증권거래소 중 하나인 나스닥이 수백 명의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30일 보도했다.
나스닥의 이번 구조조정은 지난해 6월 소프트웨어 업체 아덴자를 105억 달러(약 14조원)에 인수하며 이뤄지게 됐다. 통신은 "아덴자를 통합하면서 감원 계획도 생겼다"며 "업무 중복 최소화와 효율화를 위함이다"고 전했다. 나스닥에는 지난해 9월 기준 직원 6590명이 일하고 있다. 아덴자는 나스닥에 인수되기 전까지 2000명이 일했다.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 등 유명게임 제작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완료한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25일 게임 부문에서 약 1900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MS 게임 부문 전체 직원의 9%에 해당한다.
M&A가 무산됨에 따라 인력 조정 칼바람이 불어닥친 기업도 있다. 로봇 청소기 룸바로 유명한 아이로봇은 29일 17억 달러(약 2조 2686억원)로 예정됐던 아마존과의 합병이 없던 일이 되자 직원 350명(전체의 31%)을 내보내겠다고 밝혔다. M&A 실패에 책임을 지고 콜린 앵글 회장도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프린터 업체·백화점 등 전 분야 해고 바람
WSJ에 따르면 프린터업체·백화점·소프트웨어 회사 등 구조조정 바람은 전 분야에 불고 있다. 프린터 제조업체인 제록스는 인력을 15% 줄이기로 했다. 메이시스 백화점은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의 3.5%인 2350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음반업체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은 올해 전 세계적으로 100~300명의 직원을 해고할 계획이다.
금융권도 예외는 없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전체 인력의 3%인 600명을 해고할 방침이다. 씨티그룹은 2026년 말까지 일자리 2만개를 없애기로 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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