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행 지점서 모바일 가입 유도…'홍콩 ELS' 꼼수 영업 '도마 위'
상환일 되면 연락해 비대면 재가입 유도
판매 실적 쌓기만 급급한 영업 행태 논란
시중은행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영업점에서 판매할 때 비대면 채널인 모바일뱅킹으로 가입하도록 유도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통해 설명의무 미준수 등 상품 판매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모든 책임을 피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ELS 가입자들의 상환일이 다가왔을 때마다 연락을 취해 모바일로 재가입을 유도한 정황이 나오면서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초고위험 파생상품인 ELS에 관한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 실적에만 눈이 먼 영업 방식을 구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31일 데일리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강남구의 시중은행 영업점을 방문한 한 고객은 은행원의 권유로 지난 2021년 2월 홍콩H지수 ELS에 6000만원을 넣으면서 신규 가입했다. 이 은행원은 해당 고객을 ELS에 가입시키기 위해 약 한 달 전부터 내점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 은행원은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했는데도 ELS를 모바일뱅킹으로 가입시켰다. 당시 은행원은 "모바일로 가입해야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를 댔다. 이후 은행원은 고객에게 본점에서 확인 전화가 오면 "은행원의 권유로 가입하는 게 아니다"라고 답할 것을 요구했다. 비대면 채널로 고위험 파생상품을 가입할 때 은행원의 권유가 있었다고 답하면 상품 가입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은행원은 설명의무 미준수 등 불완전판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이 고객이 가입한 ELS의 선취수수료율은 1%다. 모바일뱅킹을 통해 가입하면 통상 0.2~0.3%가량 수수료율이 낮아진다. 결과적으로 은행원은 이 고객에게 수수료 12만원 절감을 미끼로 초고위험 파생상품인 ELS 판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해당 고객은 "ELS 가입을 위해 영업점에 방문해달라는 문자가 여러 차례 와서 내점했고, 담당 은행원이 ELS 관련 상품을 2~3개 추천해줬다"며 "기초지수랑 금리 등은 이야기해줬는데 선취수수료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수차례 전화랑 문자메시지가 와서 내점한건데 은행원은 ELS에 가입할 때 수수료와 시간이 절감될 수 있게 모바일로 가입하자고 했다"며 "(본점) 상담원의 확인 전화가 오면 '직원의 권유로부터 가입한 상품이 아니다'라고 답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불완전판매는 전체 판매 과정을 봐야하는 것"이라며 "영업점에서 모든 단계를 (부실하게) 끝내놓고 최종적인 가입만 비대면으로 진행시킨거라면 모든 책임을 구매자에게 넘기기 어려워 보이고, 불완전판매의 일환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은행은 본점 차원에서 이 같은 방식을 적극 활용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LS 가입자들의 상환일이 다가오면 영업점 방문없이 고객이 자택에서 비대면으로 직접 가입하게 연락을 취했다. 우선 이 은행은 ELS 상환 시기가 도래하면 고객 리스트를 각 지점에 전달하는 체계를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지점에서는 고객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고객들이 ELS를 모바일로 재가입할 수 있게 유도했다.
이 은행원은 문자메시지에서 ELS와 관련해 기초지수와 연 수익률 정도만 설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모바일뱅킹 내 메뉴→상품가입→신탁을 통해 투자 성향을 분석하도록 요구했다. 투자 성향 결과는 공격투자형이 나와야 상품 가입이 가능하다는 문구도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상품 구조와 위험성에 대한 설명은 전무했다. 과거 통계를 기반으로 기초지수의 변동성을 설명하는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은행권 관계자는 "ELS와 같은 자산관리 상품은 프라이빗뱅커(PB)가 기본적으로 만기 관리를 한다"며 "하지만 일반적으로 상품을 재가입할 것인지, 다른 금융상품으로 바꿀 것인지 등은 고객이 영업점에 방문해서 직원과 충분한 상담을 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이 ELS를 공격적으로 판매한 배경에는 이자이익에 치중된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란 설명이 나온다. 이를 위해 은행원들의 ELS 판매 실적을 인사평가에 높은 비중으로 반영하도록 핵심성과지표(KPI)를 설계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충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이달 초 ELS 현장·서면 검사 관련 브리핑에서 "통상 은행권 KPI가 1000점 만점인데, 고위험 ELS나 주가연계신탁(ELT) 상품 판매와 관련해서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주요 지표 점수 비중이 30~40% 정도"라며 "특히 KB국민은행 같은 경우 1000점 만점에 약 410점이 ELS 판매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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