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이 된 경기력, 이재성 황인범 후방 기용 때문이다… 이 조합 버려야 둘 다 살린다

김정용 기자 2024. 1. 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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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한민국의 2023 카타르 아시안컵 경기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특히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 중반까지 변변한 공격 한 번 되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스리백이 아니라 황인범과 이재성으로 이뤄진 중원이었다.


한국은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16강전을 갖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연장전까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PK2 승리를 거뒀다. 8강 상대는 호주다.


한국은 대회 첫 경기 바레인전만 승리하고 이후 3경기 연속 무승부(승부차기 포함)에 그쳤으며 경기력도 우하향 중이다. 특히 기존의 4-4-2를 버리고 사우디 상대로 꺼내든 3-4-3은 일을 그르칠 뻔했다. 스리백일 때 실점했고, 4-4-2로 포메이션을 돌려놓은 뒤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수비수가 3명이라는 표면적 변화보다 더 심각했던 건 중원 조합이었다. 조별리그 중 최고 졸전이었던 말레이시아전, 그리고 사우디전의 공통점은 중앙에 이재성과 황인범이 배치됐다는 점이다. 두 선수가 중앙을 맡았을 때 일이 잘 풀린 적은 거의 없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 초반 박용우의 컨디션과 메이저대회 적응 문제가 불거지자 박용우 황인범 조합을 버렸다. 그리고 황인범 이재성 조합으로 바꿨다. 이때 황인범이 후방에서 공을 뿌리는 역할을 맡는다. 황인범 스스로 "6번"이라고 했는데 이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의미하는 숫자다. 그 옆에서 활발히 돌아다니며 공수 양면에서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은 이재성이다.


한국 미드필더 중 가장 클래스 높은 선수들인 건 확실하지만, 더 공격적일 때 빛을 발하는 선수들을 후방에 배치하면서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조합의 첫 번째 문제점은 체격이다. 상대 미드필더가 거칠게 몸으로 견제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현재 한국처럼 조직력이 잘 갖춰지지 않은 팀의 중앙 미드필더는 수비진에서 공을 건네받은 뒤 몸을 180도 돌려 전진패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특히 상대가 바짝 붙어 돌아서지 못하게 견제할 때 실수가 나온다. 그럴 때 이재성과 황인범의 패스가 부정확해지기도 했고, 몸을 돌리지 못하니 단조로운 백패스가 강제되는데 더 가치 높은 패스를 하려고 억지로 몸을 틀다 빼앗기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대회 초반 두 경기에서 그나마 한국 공격이 가장 좋았던 장면들의 핵심 부품 황인범을 전진하지 못하게 하는 전술이라는 점이다. 황인범은 파트너가 더 수비적인 박용우일 때 자주 전진했다. 황인범이 아예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올라가고, 측면으로 자주 붙어주지 않으면 한국의 고립된 공격자원들은 아무 플레이도 하지 못했다. 오른쪽 윙어 이강인을 가장 잘 살렸던 대목들은 황인범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이강인의 견제를 분산시켜줄 때 나왔다.


이재성(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위르겐 클린스만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의 전술이 미완성인 가운데 황인범이 그나마 최선의 플레이인 전진을 자주 수행하다보니, 박용우는 후방에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박용우의 기동력과 볼 키핑 능력으로는 헤쳐 나가기 힘들 정도로 고립되니까 실수도 나왔다. 대회 초반 박용우가 보여준 여러 실수들은 개인의 기량 탓이라기보다 한국의 공격 문제를 해소하러 미드필더들이 전방으로 지원하다보니 생긴 어쩔 수 없는 구멍이었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은 그 책임을 박용우에게 묻듯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고, 이 자리에 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꺼내는 선택을 했다.


황인범의 6번 기용 자체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황인범이나 이재성 모두 소속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을 맡은 적 있고,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뛸 만한 지능과 킥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 경우 황인범의 옆에서 대신 몸싸움을 벌이고, 황인범의 패스를 받아 전진해 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독일 대표팀에서 자미 케디라가 오랫동안 수행했고, 안드레아 피를로와 젠나로 가투소의 조합으로도 유명한 방식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선수단에는 활동량과 전진성이 장점인 미드필더는 없다.


중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 쓸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이고 효과적인 카드는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박용우나 박진섭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고 그 앞에 황인범, 이재성, 홍현석 중 두 명을 배치할 수도 있다. 혹은 체격의 열세를 활동량과 숫자로 메우기 위해 황인범, 이재성, 홍현석을 모두 중원에 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미 포백도 버렸고, 투톱도 버렸다. 하지만 중앙만큼은 2인 조합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도 한국의 선발 포진만 4-4-2였을 뿐, 경기가 잘 풀리는 대목에서는 사실상 미드필더가 3명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선발 라인업대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걸 감지한 선수들이 스스로 중앙으로 이동해 제3의 미드필더 역할을 해주곤 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앞서 이끈 팀의 전례를 보면 강팀 입장일 때는 4-4-2, 약팀 입장일 때는 4-1-4-1이었다. 한국은 아시안컵 우승후보이므로 공격적인 4-4-2를 써야 한다는 게 대회를 시작할 때의 생각이었던 듯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미드필더 숫자를 늘리거나 최소한 조합을 더 상식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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