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관심 없는 나, '청소 방송'에 빠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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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종종 브라이언 청방을 들으며 청소를 한다.
나처럼 청소맛을 느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나처럼 특화 안 된 사람은 청소를 최소한만 하고 뭔가 다른 일을 해야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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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 아들 덕에 배운 신문물 먹방을 학습한 아들 덕에 '봉지 라면을 기계로 끓여먹는다'가 뭔지 처음 알았다. |
ⓒ 최은영 |
먹방을 본 적이 없다. 4학년 아들은 먹방을 제일 좋아한다. 새로운 음식에 관심 없는 나는 마라 떡볶이가 처음 나왔을 때도 아들의 유튜브 감상평으로 알았다. 라면 10개를 한번에 먹는 영상 좀 보라는 아이 말에는 할 수 없이 보는 흉내만 냈다. '남이 너무 많이 먹는' 모습을 왜 봐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남이 많이 청소하는' 걸 넋놓고 보게 될 줄 몰랐다. 바로 가수 브라이언의 청소 방송(아래 청방)이다.
아들은 종종 먹방을 보면서 밥을 먹는다. 그렇게 먹어야 밥맛이 더 좋다나. 나는 종종 브라이언 청방을 들으며 청소를 한다. 무선 이어폰으로 흘러오는 그의 쫑알거림이 청소맛을 한껏 올린다. 먹방이 밥맛을 돕는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대청소용으로 2~3시간짜리 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댓글에 많은 공감이 달렸다. 나처럼 청소맛을 느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 나도 처음 보는 나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
ⓒ 최은영 |
브라이언이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는 이유를 다른 인터뷰에서 봤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어쩌면 상처가 될 수 있는 기억 덕에 연예인 브라이언은 새로운 콘셉트를 잡았고 그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도 즐거운 청소를 배운다.
살아가면서 겪는 일 자체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좋고나쁨이 결정된다고 한다.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 아닌가 했는데 브라이언을 보며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 <살림 못하는 완벽주의자> 겉표지. 협성재단 에세이 공모전 당선으로 만든 책 |
ⓒ 부크럼 |
청방으로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감각적으로 집을 꾸미는 일은 특화된 재능의 영역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얼룩을 닦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그저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재능씩이나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정돈이 덜 되거나 지저분한 집 환경을 둔 사람은 피로하고 우울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물론 이건 가능성이니 지저분한 집에서 피로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사람이 분명 있겠다.
다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 굴러다니는 먼지가 꼭 내 모습 같아서 우울했다. 그걸 떨쳐버리려고 쇼핑이나 산책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 먼지를 치워야 해결될 일이었다.
▲ 청소를 기다리다 세상에 이런 일이 |
ⓒ 최은영 |
청소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기는 날도 당연히 있다. 그 일을 끝내고 집에 널브러져야 진짜 휴식인 줄 알았다. 지금은 힘들어도 내가 정한 최소한의 청소가 더 진한 휴식인 걸 안다. 이럴 때의 청소는 나를 돌보는 의식이 되기도 했다.
먹방 말고 청방
▲ 청소의 순기능 공간이 나를 토닥여줄 때 |
ⓒ 최은영 |
새로운 먹방 유튜버가 생기듯 새로운 청방 유튜버도 나왔으면 좋겠다. 먹방을 보며 입맛이 돌듯 청방을 보며 청소맛이 돌아서 내 공간을 돌보는 기쁨이 유행처럼 번지면 좋겠다.
반듯하게 펴진 이불이 기분까지 반듯하게 다림질 해주는 이 상쾌함을 나만 알기 아깝다. 마음이 어그러지는 순간을 탁 잡아주는 청소기의 위이잉 소리를 나만 알기 아깝다. 이불도, 청소기도 새로울 게 없는데 청방과 같이하면 새로워진다. 그러니 청방이 널리 퍼져야 한다.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종일 먹는다고 나오지 않는다. 때론 내 공간을 돌보는 안정감에서 오기도 한다. 청소맛 들린 나를 얼떨결에 따라한 중학생 큰 아이도 제 방이 넓어졌다고 좋아한다. 소소한 기쁨으로 딸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먹방 대신 청방의 유행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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