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산부인과가 정형외과로...대도시 병원도 '분만 포기' 속출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8(통계청 장래인구 추계)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출산 절벽 쇼크’ 속에 대도시 산부인과에서도 휴ㆍ폐원하거나 분만 진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분만을 위해 24시간 인력을 가동하던 병원은 “저출산 여파로 더는 분만 진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젊은 신도시’ 병원도 분만 포기 선언
31일 부산시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정관일신기독병원 홈페이지에는 ‘고객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공지가 떠 있다. 병원 측은 이 공지를 통해 다음 달 9일부터 분만이 중단되며, 산후조리원 운영도 다음 달 29일 종료한다고 밝혔다.
신도시가 조성된 정관읍엔 지난달 기준 임신과 출산이 활발한 20~44세 인구 비율이 32.8%(2만6347명)에 달했다. 초고령 도시인 부산에서 손꼽히는 ‘젊은’ 도시다. 하지만 병원 측은 저출산 문제와 24시간 진료 유지를 위한 의료진 수급 어려움 탓에 분만 진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 이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2020년 597명에서 ▷2021년 499명 ▷2022년 514명 ▷2023년 487명으로 4년 새 20% 가까이 급감했다.
기장군 보건소에 따르면 이 병원 이외에 정관신도시에서 분만이 가능한 병원이 한 곳 더 있지만, 규모가 작다. 보건소 관계자는 “일신기독병원에 다니던 산모 상당수가 다른 지역 병원에서 원정 진료나 분만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만 중단이 임박한 시점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려 전원 등에 따른 일부 산모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부산시에 따르면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화명일신기독병원도 오는 5월 무렵 분만 진료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화명일신기독병원 또한 젊은층(20~44세 인구 비율 31.0%)이 많은 화명신도시에 자리했다.
30년 울산 ‘산실’ 산부인과는 정형외과로
비슷한 현상은 광역시 규모인 다른 대도시에서도 나타났다. 울산시 남구 프라우메디 병원은 지난해 9월부터 휴업했다. 1991년 개원한 이 병원은 ‘내 아이의 아이까지’라는 슬로건을 걸고 이 지역 출산과 산후조리, 소아청소년과 진료 등 출산과 보육의 ‘산실’로 30년 넘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저출산 등에 따른 경영 어려움과 의료진 수급을 견디지 못했다. 병원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재개원을 계획하지만,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로 다시 문을 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정형외과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시 북구 대형 산부인과인 문화여성병원은 지난해 9월 말 문을 닫았다. 분만하는 환자가 급감한 탓에 운영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폐원을 결정했다고 한다. 광주시 의사회에 따르면 광주 소재 산부인과 32곳 가운데 문화여성병원을 포함한 4곳이 이 무렵 같은 이유로 문을 닫았다. 이들 지역 맘카페에선 안타까움 속에 폐원한 병원에서 진료하던 의사가 어느 곳으로 옮겨갔는지 수소문하는 내용의 게시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줄폐원-출산 감소 악순환 우려”
대도시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시작된 휴ㆍ폐원과 분만 중단 사태가 출산율 악화를 부채질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울산에 사는 임신 7개월차 산모 이모(34)씨는 “산부인과는 태아 질병, 조산 위험 등이 없다면 대학병원보단 주거지 근처 병원을 선호한다. 분만할 수 있는 병원이 줄고 임신 초기부터 산모와 태아 상태를 지켜봐 온 의사에게 출산을 맡기기 어려워지면 출산 기피가 더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에 따르면 분만 진료하는 의료기관 수는 2012년 729곳에서 2022년 461곳으로 줄었다. 이 기간 분만 건수는 46만7000건에서 24만6000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손성대(55) 부산 산부인과의사회장(광안자모병원 원장)은 “출산 감소가 병원 분만 중단을 부르고, 다시 출산 환경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손 회장은 1997년부터 광안자모병원에서 진료를 봤다. 그는 “당시 한 달에 분만이 최대 350건에 달했다. 지금은 60~120건 수준”이라며 “분만 진료를 하려면 직원 3교대, 의사 당직 등을 통해 24시간 병원을 가동해야 한다. 우리 병원은 인건비로만 한 달 5억, 6억원이 든다. 분만이 이렇게 적으면 우리 병원도 분만 중단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손 회장은 “출산을 장려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다만 다시 출산이 늘 때까지 병원이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지역 의료기관 분만 수가를 상향해 분만 1건당 지역 수가(55만원)와 안전정책 수가(55만원)를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하지만 특별ㆍ광역시 등 대도시는 지역 수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손 회장은 “악조건 속에서도 분만을 유지하는 병원이 포기하거나 폐원하지 않을 정도의 실효성 있는 수가 인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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