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번호 달고 V리그 데뷔전 치른 ‘랜디 존슨 딸’ 윌로우
메이저리그 전설인 아버지 랜디 존슨(61)의 등번호를 달고 성공적인 한국 배구 데뷔전을 치렀다. 윌로우 존슨(26·미국·등록명 윌로우)이 분홍색 머리를 휘날리며 강스파이크를 날렸다.
흥국생명은 올스타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 새 외국인 선수로 윌로우를 영입했다. 김연경이 고군분투하며 선두를 달렸지만, 옐레나 므제라노비치가 부진해 2위로 내려앉자 결단을 내렸다. 지난 20일 입국한 윌로우는 짧은 훈련기간을 가진 뒤 30일 김천 도로공사전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윌로우는 아시아쿼터 외국인 도코쿠 레이나(일본/가나·22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7득점을 올렸다. 옐레나가 부진한 탓에 최근엔 공격점유율을 33% 이상 가져갔던 김연경(17점)의 부담도 줄면서 팀 전체 경기력이 올라갔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도 "날개 공격수 3명을 활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만족했다.
윌로우는 "정말 재밌었다. 연습은 힘들었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팀원들이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줘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처음 이틀은 세터들과 호흡을 맞춰보는데 집중했다. 다음엔 도로공사를 연구했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윌로우는 흥국생명과 계약하기 전부터 화제의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통산 303승, 사이영상 5회 수상에 빛나는 왼손 투수 랜디 존슨의 둘째 딸이기 때문이다. 존슨은 큰 키(2m7㎝)에서 나오는 불같은 강속구로 시대를 풍미했다. 윌로우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 1m91㎝의 장신에 왼손잡이다. 한 살 터울 여동생 알렉산드리아(1m93㎝)도 큰 키를 살려 배구를 했다.
오레곤대를 졸업한 윌로우는 2021년 처음 V리그 트라이아웃 지원서를 냈고, 튀르키예 팀과 계약하면서 철회했다. 이후 22~23시즌, 23~24시즌에는 국내 팀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단기리그인 미국 프로리그 개막을 준비하다 흥국생명의 대체 선수로 마침내 한국 무대를 밟았다. 윌로우는 "3년 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를 얻게 됐다. 꿈이 실현됐다"고 말했다.
아버지 랜디 존슨은 한국인들에게도 낯익다.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커트 실링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공동 MVP에 올랐다. 당시 마무리 투수가 '핵잠수함' 김병현이었다. 도로공사전에선 한 팬이 랜디 존슨의 유니폼을 들고 윌로우를 응원하기도 했다. 당시 만 3세였던 윌로우는 "아버지도 한국에 간다고 하자 기뻐했다. 한국 선수와 같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과 인연이 흥미롭다"고 했다.
윌로우는 아마추어 시절 4번(20번 이하만 선택 가능)을 썼고, 프로에선 주로 44번을 썼다. 그러나 흥국생명에선 51번을 쓴다. 애리조나에선 영구결번이 된 아버지의 번호다. 윌로우는 "한국 문화에선 '4'가 (死·죽을 사와 음이 같아)불행한 의미라고 들었다. 가족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 51번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윌로우는 왼쪽은 분홍색, 오른쪽은 검은색이다. 윌로우는 "지난 팀에서 뛸 때 팬들에게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염색했다. '마이 히어로 아카데미아'에 나오는 캐릭터(도도로키 쇼토)를 좋아해 반반으로 했다. 그런데 흥국생명의 팀 컬러도 핑크색이라 좋았다. 한국에 올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코트 위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 윌로우는 "항상 그렇다. 오늘은 평소보다 침착한 편이었다. 아버지가 열정적이고, 경쟁심이 강한데 물려받았다"고 웃었다. 은퇴 이후 대학 시절 전공을 살려 사진작가로 활동중인 랜디 존슨은 최근 무릎 수술을 받았다. 회복이 되면 한국을 방문해 딸의 경기를 지켜볼 예정이다.
김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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