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헬스장 이용법? 70 다 돼도 인사 고민합니다

이혁진 2024. 1. 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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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알던 이와 5년 만에 샤워실서 처음 인사... 차라리 용기 내어 먼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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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헬스장 사이클 타기
ⓒ 이혁진
  
나는 동네 주민센터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잠시 폐쇄된 것을 제외하곤 이 동네 헬스장에 다닌 지 5년은 족히 넘는다. 내가 부실한 체력으로도 그나마 일상을 잘 버틸 수 있는 건 헬스장 운동 덕분이다. 이제는 관성처럼 매일 헬스장을 찾고 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헬스장은 다양한 시설을 갖춘 민간 헬스장과는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기본시설을 갖추고 이용료가 저렴해 동네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헬스장 이용객도 젊은 층보다는 대부분 나처럼 60~70대 고령층이다. 대학생들이나 직장인과 달리 바쁜 일이 없는 고령자들은 아침이나 저녁 즈음 비교적 한가한 시간에 운동을 하곤 한다. 

결석 한 번 없는 열정들... 샤워기 이용팁 일러주기 

나이는 많아도 운동하는 열정만은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생업 때문에 자주 빠지는 모습이지만 노인들은 결석하는 법이 없다. 아파도 운동을 한다고 할 정도다.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저녁식사 전후에 운동하고 있다. 운동은 샤워를 포함해 보통 한 시간 정도. 이 시간에는 운동하는 사람도 적어 혼자 운동하기에는 제격이다. 

운동 후 샤워는 필수 코스, 샤워실은 내가 특히 선호하는 곳이다. 집에서 하는 샤워와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여럿이 샤워를 하면 왜인지 더 활기찬 것 같다. 과거 동네 '대중목욕탕' 시절 향수를 느낀다고 할까.

작년 말 운동 후 샤워실에 들어설 때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 한 노인이 내게 말했다. "저기 샤워기가 물줄기가 세고 물도 따뜻해요." 그는 6개 샤워기 중에 좋은 것이 따로 있다고 일러줬다. 

한편 나와 비슷한 시기에 운동을 시작한 한 노인과 나는 서로 얼굴은 알지만, 이제껏 마주하고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5년 이상 같이 운동하면서 서로 인사하지 않고 지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몇달 전 그분이 내게 처음 말을 걸었고, 이후 우리는 만나면 서로 '목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한 달이 흘렀다. 며칠 전에는 샤워를 하면서 노인은 내게 "나는 80이 조금 넘었습니다, 반갑습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순간 나는 당황하면서 "네, 저 보다 손 위이신데 반갑습니다"라며 공손히 인사했다. 발가벗은 상태에서 인사를 주고 받다니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애써 참았다. 

그날 이후 노인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상대에게 자기 정체성을 솔직히 드러내고 인정받았다는 얼굴이다. 마치 용서를 구한 사람이 떳떳하고 당당한 것 같았달까.

사실은 나도 그랬다. 그간 오래 같이 운동하면서도 인사를 먼저 건네지 못한 뻘쭘한 상태를 깨끗이 벗어난 느낌같아서 후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사를 하는 일이 여전히 이렇게 부끄럽고 쑥스러울 줄이야.

5년 만에 벗은 채(?)로 인사 나눈 한 어르신
 
 샤워장에서의 인사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사실 우리 세대들은 처음 보는 사람과 '통성명'하는 버릇이 있다. 관행처럼 굳어진 것이지만 인사가 '소통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업무상 제외하고는 상대의 나이와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다. 나 자신을 특별히 밝히는 것도 삼가는 편이다. 자칫 상대에게 '결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 손을 내밀며 인사를 먼저 하는 것이 현명하다. 인사 잘하는 사람들이 호감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리라. 

그 어르신은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면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거리낌 없이 내게 자신을 선뜻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는 대단한 분 같게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나는 소심하고 타인에게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인사를 나눴던 장면은 한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노인을 통해 인사의 필요성을 새삼 깨우쳤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알면서도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어제도 우리는 샤워실에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나눴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의 성과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 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은 '어르신'이다. 

어쨌든 우리는 5년 만에 샤워실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다. 세상 살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어 혼자 피식 웃게 된다. 이제는 헬스장에 갈 때마다 내가 어르신을 찾아가 먼저 인사를 하고 있다.

인사는 '타이밍'이다. 제때 인사하지 않으면 후회막급이다. 새삼스레 뒤늦게 인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러니 인사는 빨리 하는 쪽이 마음 편하다. 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인사는 조금 과해도 결코 나쁘지 않다"라며 배우면서 자랐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인사하는 법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대인관계가 좁아지면서 감각이 무뎌진 탓도 있다.

나이 70이 다 된 지금에도 '인사예절'로 고민하고 있다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나이 들수록 인사를 받기보다 상대에게 먼저 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는 주말이 '입춘'이라는 사실도 그 어르신이 가르쳐주었다. 하루하루 조급하게 살다 보니 다가오는 시간도 모르고 있었다. 헬스장은 운동만 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배우는 곳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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