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자존감이 높은 아이

2024. 1. 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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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남학생 Y는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도 잘했다.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선 선생님들도 Y는 참 상상력이 뛰어나고, 예술적인 재능과 영리한 머리를 가진 아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따라서 자존감을 높여 준다고 '너는 영리해' '너는 상상력이 풍부해' 하는 식이 아닌, 유연한 행동을 하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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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행동 하도록 도와야

중학교 2학년 남학생 Y는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도 잘했다. 그림도 잘 그려 상을 많이 타곤 했다. 부모는 Y의 이런 장점을 부각해 칭찬을 많이 했다.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선 선생님들도 Y는 참 상상력이 뛰어나고, 예술적인 재능과 영리한 머리를 가진 아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중학생이 된 이후로 Y는 공부도 하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을 멀리하며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했다.

왜 그랬을까? Y는 두렵다고 했다.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중학생이 되니 공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잘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멍청한 아이’로 평가될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게임으로 회피하여 평가를 피하고 싶었던 거다. 자녀를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소망일 거다. Y의 부모처럼. 그런데 왜 Y는 도전하기보다 회피하는 아이가 되었을까?

자존감, 자기개념은 범주에서의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라는 대동소이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 이전까지는 ‘자존감’ ‘자기개념’과 같은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1960년대 중반에 자존감 개념은 확고히 자리 잡았다. ‘자존감 높이는 양육, 긍정적 자기개념 훈련’ 등이 서양에서 유행처럼 확산했다. 하지만 그동안 연구 결과는 그것의 효과가 오히려 부정적이다. 1960년대 이후 자기애적 인격장애는 오히려 약 200%가량 증가했다. 청소년들의 물질 소유에 대한 기대는 약 150% 증가했다. 아이들의 사회공헌 영역의 직업 선호도는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중심적이며, 이타성이 감소하였다. 또 Y처럼 ‘영리하다’고 격려되었던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나는 영리하다는 평가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도전보다는 회피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존감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존감을 높인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다. ‘행동’에 뒤따르는 자기개념으로 유동적이다. 하늘에 구름의 모양이 순간순간 변화하듯이 자기개념은 어떤 행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정의될 때 자존감은 변화 가능한 것이 된다. 또 행동이란 ‘좋은 행동’ ‘나쁜 행동’이 정해져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서 효용성이 있는 행동과 효용성 없는 행동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존감이라는 말에 갇혀서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고 어떤 행동은 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자존감을 높이려는 노력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유연한 자기개념’을 갖는 것이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해’라는 말을 완전히 믿느냐, 아니면 하늘의 구름처럼 자기의 부분적인 특징으로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거다. 긍정적인 자기개념도 느슨하게 받아들이면 도움이 되지만 100% 자신과 동일시한다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부정적인 결과가 두려워 회피해 버릴 수도 있다. 말에 갇혀서 경직된 방식으로 행동하느냐, 아니면 자신에 대한 평가, 자기개념을 그저 ‘하나의 평가, 생각’으로 바라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효용성이 있는 행동을 어떻게 유연하게 선택 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따라서 자존감을 높여 준다고 ‘너는 영리해’ ‘너는 상상력이 풍부해’ 하는 식이 아닌, 유연한 행동을 하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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