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1위' 자선곡의 탄생, 스타들의 고집과 헌신
[김상화 기자]
▲ 넷플릭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포스터 |
ⓒ 넷플릭스 |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84년, 아프리카의 빈민국 에티오피아는 기아에 허덕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들을 돕기 위해 음악계 최고 스타들이 속속 힘을 모았고 그 결과 밥 겔도프 주도하에 밴드 에이드(Band Aid)라는 이름으로 모인 영국 아티스트들은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발표했다. 당연히 이 노래는 세계 각국 인기 순위를 석권했고 엄청난 구호 기금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도 비슷한 기획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바로 1985년 공개된 USA For Africa('United Support of Artists')의 싱글 'We Are The World'가 그 주인공이었다.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의 공동 작곡, 퀸시 존스의 프로듀싱으로 1980년대 인기 가수 40여 명의 목소리를 담은 이 노래는 이듬해 그래미를 석권했고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뒀다.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는 같은 해 밴드 에이드와 손잡고 역대급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지금까지 자선 단체곡 발표의 기원이자 모범 답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초단기간에 완성된 작업은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여곡절이 존재했다. 지난 1월 29일 글로벌 OTT플랫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은 그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양한 자료 화면과 증언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 넷플릭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1984년 당시 뉴스를 통해 에티오피아의 참상이 미국에도 소개되었고 이를 지켜봤던 음악계 거물 매니저 켄 크레이건은 그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당시 그는 인기 스타 라이오넬 리치의 매니저였고 이 기획을 들은 라이오넬은 "백인이 흑인을 돕는 일은 있었지만 흑인들이 흑인을 돕는 일은 없었다"면서 기꺼이 승낙했다.
라이오넬은 모타운 레이블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와 합작해 곡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스티비는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다.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다보니 전화 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마이클과는 연결되면서 곧바로 곡 작업이 진행되었다. 만약 스티비가 단숨에 전화를 받았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곡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이 기획을 완성할 프로듀서로는 역시 마이클과 더불어 음악계를 평정한 퀸시 존스가 선택되었다. 이때까지의 과정만 본다면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이뤄진 듯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누구를 섭외하느냐를 비롯해서 어디에서 언제 녹음하느냐 등등 해결해야 할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각자 녹음한 파일을 주고 받아 완성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작업의 난이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 넷플릭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참여 가수 후보군을 선정했지만 섭외가 쉽게 이뤄질 리 만무했다. 국내외 순회 공연 때문에 따로 일정을 빼기 어려운 사람이 적지 않았고 실무진 사이에서도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대해 난상토론이 이뤄졌다. 당시 라이오넬 리치는 1985년 1월 28일 아메리칸뮤직어워드의 MC를 맡을 예정이었는데 매니저 켄은 행사가 끝난 당일 밤 녹음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외엔 스타들을 한자리에 모을 기회는 전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녹음 일주일 전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던 곡이 어렵게 만들어졌고 마이클과 라이오넬이 직접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만들고 각 아티스트들에게 가사, 감사 편지를 담아 전달하는 등 요즘 시점에서 보기 드문 방식이 동원되었다. 시상식 당일 긴급 섭외도 시도했다. 당시 마이클과 라이벌로 손꼽혔던 프린스를 참여시키려고 했지만 그는 녹음실 참석을 거절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레이 찰스, 밥 딜런, 빌리 조엘, 휴이 루이스, 케니 로저스, 신디 로퍼, 다이아나 로스, 스모키 로빈슨 등 그 시절 음악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가수들이 LA에 위치한 A & M 스튜디오에 모였지만 돌발 상황이 다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결국 마음을 바꾸긴 했지만 신디 로퍼는 컨디션 난조로 참석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스티비 원더는 뜬금없이 스와힐리어로 한 부분을 녹음하자고 제안해 일부 가수 및 제작진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 넷플릭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의 한 장면. 라이오넬 리치,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이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 넷플릭스 |
어렵게 완성된 'We Are The World'는 그해 세계 각국의 라디오를 통해 울려 퍼졌고 라이브 에이드라는 역대급 콘서트로도 이어졌다. 당시 프로듀서 퀸시 존스는 스튜디오 앞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붙여놨다고 한다.
"자존심은 문 앞에 두고 와라."
일부 가수의 몽니가 없진 않았지만 각자의 체면, 자존심을 내려 놓은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각자 최고의 명성, 인기를 지닌 인물들이었지만 솔로 파트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기꺼이 코러스도 마다하지 않았던 스타들의 헌신은 다행히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제작자이면서 'We Are The Word' 탄생의 주역 라이오넬 리치는 당시의 녹음실 인터뷰 도중 함께 참여했던 가수들이 서 있던 자리를 일일이 짚어주면서 그때의 벅찬 감동을 회상했다.
'We Are The World'의 파급력은 참여 가수들조차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했다. 영어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마음의 편안함을 선사한 아름다운 멜로디는 그 시절 세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예술인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만한 프로젝트, 과연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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