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작가가 청소 노동자가 된 이유
[김준모 기자]
▲ <두 세계 사이에서> 포스터 |
ⓒ 디오시네마 |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으로 불리는 르포르타주(reportage)는 실제의 사건을 보고하는 문학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 그 세계에 들어가지만 체험의 단계에 머문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두 세계 사이에 작가가 위치한 장르라 볼 수 있다. 국제 문제 전문 기자 플로랑스 오브나의 르포르타주 소설 <위스트르앙 부두>를 원작으로 한 <두 세계 사이에서>는 이 사이의 간극을 통해 감정적인 격화를 유발해내는 영화다.
마리안은 노동문제를 다룬 작품들로 잘 알려진 저명한 작가다. 청소 노동자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는 그녀는 직접 현장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23년 경력단절의 스펙 하나 없는 이혼한 여성으로 위장해 취업시장에 뛰어든다. 노동문제에 대한 수많은 자료가 있음에도 르포르타주를 결정한 이유는 고용불안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간 노동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현장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지 못했던 그녀는 체험을 시도한다.
▲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
ⓒ 디오시네마 |
이들은 지갑은 가난해도 마음은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텔, 마릴루 등 마리안과 함께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미소를 잃지 않고자 한다. 빈곤과 불안 속에서 불행을 먹고 살아가는 게 아닌, 비록 부푼 청운을 그릴 순 없지만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에 마리안은 감정적인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진정한 우정을 천천히 쌓아간다.
<두 세계 사이에서>는 런닝타임 내내 한 가지 의문을 남겼던 영화다. <슬픔의 삼각형>처럼 계급과 계층이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그리면서 이 차이를 통한 묘미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나 노동계층의 삶에 익숙해 보이는 마리안의 모습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이 지점이 전환되는 건 그 정체가 드러나는 시점에서다. 작품은 르포르타주가 지닌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의 영역을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
ⓒ 디오시네마 |
이때 마리안의 눈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진정한 우정을 느끼면서 얻게 된 행복, 이 행복과 우정이 자신이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다. 만약 이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갈등의 봉합과 화해라는 따뜻함을 보여줬을 것이다. 시크하고 시니컬한 프랑스에서 온 만큼 다소 차갑게 르포르타주를 위해 다른 세계에 정체를 숨기고 온 마리안의 관계 변화를 조명한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을 생각해 보라.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라는 작품 속 문구처럼 자신들에게는 흉터인 빈곤을 훈장처럼 경험했고 이해한다고 말하는 부자의 오만은 기만처럼 느껴질 것이다. 누군가는 마리안의 르포르타주를 관심이자 호의로 여기며 감사하는 반면, 가장 절친하다 여겼던 크리스텔이 기만과 분노를 느끼는 모습을 담아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가장 밑바닥 인생을 연기한 <퐁네프의 연인들>부터 기품 있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랑을 카피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까지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줄리엣 비노쉬는 두 세계 사이에 속한 마리안이란 캐릭터를 심도 있게 연기하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몰입을 선사한다. 여기에 '문학의 천재'로 불리며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약 중인 엠마뉘엘 카레르 감독이 선보인 르포르타주에 감정을 부여하는 방식은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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