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웨이-현빈의 '만추', 관객들 호불호 갈린 장면

양형석 2024. 1. 3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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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탕웨이-현빈 주연의 한미합작영화 <만추>

[양형석 기자]

박보영은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명랑하고 귀여운 미혼모 황정남을 연기하며 일약 '차세대 국민여동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보영은 <과속스캔들> 이후 <미확인 동영상>,<늑대소년>,<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에서 소심하고 조용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렇게 박보영의 귀여운 이미지가 지워지려 하던 2015년 여름, 그녀는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처녀귀신이 빙의한 나봉선 역을 맡아 다시 귀여운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다.

물론 안성기나 송강호, 박해일처럼 영화 외길인생을 걷는 배우들도 있지만(송강호는 올해 <삼식이 삼촌>을 통해 데뷔 후 첫 드라마 나들이에 나설 예정이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영화와 드라마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와 드라마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전혀 다른 경우도 적지 않은데 어느 한 쪽의 이미지에만 익숙한 대중들은 그 배우가 가진 다양한 매력에 적응하지 못해 혼란을 겪기도 한다.

2022년3월  손예진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스타배우 현빈은 2010년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스턴트 우먼 길라임(하지원 분)과 몸이 바뀌고 사랑에 빠지는 재벌3세 백화점사장 김주원 역을 맡아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현빈은 <시크릿가든>에 출연하기 전, 이 영화에서 색다른 연기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2011년 2월에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만추>였다.
 
 <만추>는 작년 11월 4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인정 받았다.
ⓒ (주)에이썸엔터테인먼트
 
데뷔 20년 간 다양한 캐릭터 연기한 배우

2003년 드라마 <보디가드>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연기활동을 시작한 현빈은 같은 해 <논스톱4>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초 현빈은 고정이 아닌 단역으로 짧게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방송 후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고정으로 캐스팅됐고 한예슬과의 애틋한 러브라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4년에는 영화 <돌려차기>에서 서브주인공 민규 역을 맡아 신화의 김동완과 연기호흡을 맞췄다.

2004년 <네 멋대로 해라>를 집필했던 인정옥 작가의 <아일랜드>에서 이나영이 연기한 이중아의 남편 강국을 연기한 현빈은 2005년 자신의 첫 번째 대표작을 만났다. 현진헌이라는 극 중 이름보다 '삼식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김선아의 상대역으로 시청률 50%에 기여한 현빈은 2006년 이연희와 함께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에 출연했다.

드라마 <눈의 여왕>,<그들이 사는 세상>,<친구, 우리들의 전설>에 출연하며 착실히 연기경력을 쌓던 현빈은 2010년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가든>을 통해 단숨에 대세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개봉날짜를 잡지 못하던 <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2011년 2월과 3월 차례로 개봉했다. 비록 두 작품 모두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군에 입대하는 배우가 출연한 영화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역 후 영화 <역린>에서 암살위협에 시달리는 정조를 연기한 현빈은 2017년 유해진과 호흡을 맞춘 <공조>를 통해 781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현빈은 2017년 11월에 개봉한 <꾼>에서도 악덕 검사를 속이는 사기꾼 황지성 역을 통해 4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배우로 떠올랐다. 생애 첫 악역연기에 도전했던 <협상>은 200만 관객에 살짝 미치지 못했지만 훗날 아내가 되는 손예진을 만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2018년 <협상>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현빈과 손예진은 2019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재회해 21.7%의 시청률로 <도깨비>를 뛰어넘는 tvN 역대 최고시청률을 견인했다(닐슨코리아 기준). 현빈은 2022년 유해진, 윤아에 다니엘 헤니까지 합류한 <공조2: 인터내셔날>을 통해 698만 관객을 동원하며 여전한 흥행파워를 과시했다. 현빈은 올해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할 예정이다.

탕웨이와 현빈의 절제되고 섬세한 멜로
 
 탕웨이(오른쪽)와 현빈은 정해진 시간에 사랑의 감정에 스며드는 섬세한 연기를 잘 표현했다.
ⓒ (주)에이썸엔터테인먼트
 
시애틀 올로케이션의 한미합작영화 <만추>는 이안 감독의 <색,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탕웨이와 한국의 스타배우 현빈의 출연으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만추> 캐스팅 당시 현빈은 <시크릿가든>에 출연하기 전이었다). 김태용 감독은 촬영장소 스케치를 위해 촬영 두 달 전 먼저 시애틀로 떠났는데 주연배우들도 김태용 감독과 함께 시애틀에 머무르며 캐릭터를 연구했을 정도로 감독과 배우 모두 정성을 들인 작품이다.

2010년 3월에 촬영을 마친 <만추>는 '늦가을'이라는 뜻을 가진 영화의 제목처럼 늦은 가을에 개봉하길 원했지만 배급문제로 난항을 겪으면서 개봉이 미뤄졌다. 하지만 그 해 겨울 현빈이 <시크릿가든>을 통해 대세스타로 급부상하면서 2011년 2월에 개봉이 확정됐다. 갑작스럽게 개봉이 결정되면서 입대를 준비하던 현빈은 <만추>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고 결국 <만추>는 전국 84만 관객으로 기대만큼 큰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만추>는 작년 11월 4K로 리마스터링돼 재개봉될 정도로 관객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김태용 감독은 미국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국적의 남녀가 영어로 소통하며 제한된 시간에 사랑에 빠지는 상황을 서정적인 영상과 잔잔한 감성으로 애잔하게 표현했다. 국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만추>는 중국에서 탕웨이와 현빈의 인기, 영화의 완성도가 더해지며 6480만 위안(약 110억 원)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만추>에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대표적인 장면은 애나와 훈이 범퍼카 밖에서 다투는 연인을 보며 더빙을 하는 장면이다. 가로등과 별이 떠 있는 푸른 밤하늘과 두 남녀의 공중부양 등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와 비슷하고 애나가 더빙한 금발여성의 대사들은 <헤어질 결심>에서 송서래와 장해준의 말다툼과 통화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만추>의 애나와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는 모두 탕웨이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다.

1990년대 인기배우 김서라의 깜짝출연
 
 1990년대 활발한 활동을 했던 김서라는 <만추>에서 옥자 역으로 깜짝출연했다.
ⓒ (주)에이썸엔터테인먼트
 
<만추>에서 현빈이 연기한 훈은 뚜렷한 연고 없이 여자들에게 돈을 받고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훈은 주로 결혼한 중년여성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젊은 남자를 원하는 여성도 있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 하는 여성들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서라가 연기했던 옥자였다. 미국인 남편을 두고 있는 옥자는 훈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지만 훈은 "자신과 같이 살자"는 옥자의 제안에도 선을 넘지 않았다. 

옥자를 연기한 배우 김서라는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을 영화화한 고 신상옥 감독의 1989년작 <마유미>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영화 <독재소공화국>과 <증발>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간 김서라는 1994년 이정국 감독의 <두 여자 이야기>를 통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1999년 재미사업가와 결혼한 후 한 동안 활동이 뜸했던 김서라는 200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만추>에서는 홍콩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2001년부터 배우활동을 시작했던 김준성이 애나의 옛 남자친구 왕징 역을 맡아 애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훈과 갈등을 빚는다. 애나와 함께 중국에서 왔다는 훈의 거짓말을 믿은 왕징의 아내(대니 랭 분)와 달리 훈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챈 왕징은 훈과 설전을 벌이다가 거친 몸싸움까지 한다. 그리고 이를 말린 애나는 왕징을 나무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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