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돈을 국정 통치 수단으로 삼는 '천박한' 정부
[이충재 기자]
▲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관련 사항을 브리핑하고 있다.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은 국회에서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 요구안을 의결했다. 2024.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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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신 배상 등 재정적 지원을 제시해 국정의 주요 갈등 현안을 돈으로 해결한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현재 벽에 부닥친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도 한일 역사문제를 한국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서 배상하는 방식으로 풀겠다는 의도였습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 탄압, 언론 장악에도 '돈줄 죄기' 전략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은 윤석열 정부가 뉴라이트에 기반한 권위주의 통치와 천민자본주의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정부는 30일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며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상금 지급이 핵심으로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조차 사전에 피해자나 유가족단체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태원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며 전날 참사 현장부터 대통령실까지 오체투지를 한 유족들은 윤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발표에 강하게 분노했습니다. "정부가 유족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입니다. 서울도심 한복판에서 무려 159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 책임을 분명히 가려달라는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그간 참사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검찰이 최근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지 371일 만에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뒤늦게 기소한 것만 봐도 정부가 책임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제3자 변제'도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피해자 배상으로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이태원 참사와 다를바 없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요구는 일본이 식민지배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인데 이를 철저히 외면한 처사입니다. 이런 일방적 양보는 한일관계를 둘러싼 과거사 현안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역사왜곡은 더 심해졌습니다. 최근 일본 군마현 당국의 강제동원 추모비 철거도 한국 정부의 저자세에서 기인한 측면이 큽니다.
급기야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재원마저 바닥나 제3자 변제 방식이 밑둥부터 흔들릴 처지에 놓였습니다.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속속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피고기업을 대신해 한국이 마련해놓은 돈으로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애초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한 대법원 판결이 갖는 의의를 폄훼하고 일본의 선의에 기대한 안이한 외교적 자세가 화근을 불렀습니다.
노동계·시민단체·언론, '돈줄죄기'로 통제
민감한 국정 현안을 금전적 지원으로 풀려는 것도 문제지만 비판 세력의 돈줄을 죄는 것도 수준 낮은 통치 방식이라는 점에서 맥락은 같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회계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노조에 조합비 세액공제를 해주지 않겠다고 압박한 것은 노조길들이기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노조비 세액공제의 대상은 노조가 아닌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라는 점에서 논란이 컸지만 밀어붙였습니다. 정부가 비우호적인 시민단체들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대폭 축소한 것도 전형적인 돈줄 죄기 전략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합동으로 시민단체 길들이기에 나선 셈입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부는 지난해 공영방송 KBS에 대한 수신료 분리 징수를 강행해 돈줄 죄기에 나섰습니다. 공영방송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일을 사회적 논의없이 속도전 치르듯 밀어붙인 것은 방송 장악 의도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현재 KBS 보도가 친정부적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TBS도 여권이 편파보도를 이유로 재정지원을 중단해 고사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돈줄을 쥐고 언론을 옥죄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전문가들은 돈을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는 것 자체가 윤석열 정부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재난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정권이 책임회피를 위해 보상 문제를 꺼냈다는 얘깁니다. 국정 주요 현안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입니다. 현 정부 요직에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포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토대가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라는 점에서 이런 통치 방식은 예정된 것이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유는 돈과 힘을 가졌거나 자기편에게만 통용되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은 돈, 성장, 경쟁,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은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은 가장 천박한 정권의 국정 운영 방식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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