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잊혀져선 안될 납북자…"물망초 패션쇼로 북에 알릴 것"
"남한 사람들 모두가 '이 문제'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에 강력히 전하고 싶습니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은 정부 최초의 상징물인 '세 송이의 물망초'를 활용해 의상을 제작하는 국내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얼킨(ULKIN)의 이성동 대표는 25일 중앙일보와 만나 이처럼 말했다. 얼킨이 제작한 10여점의 의상은 다음 달 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의 런웨이에 오른다. 통일부는 지난 18일 물망초를 상징물로 선정했다고 밝혔고, 패션위크 직전 상징물 실물을 공개할 예정이다.
평소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민을 담은 패션을 선보였던 얼킨은 이번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기 위해 통일부와 '콜라보'하기로 했다. 이산가족 3세이기도 한 이 대표는 "북한에 억류된 이들 모두 '잊혀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와 닿아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지닌 물망초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의 상징물이 됐다. 디자인적으로는 어떤가.
A : 패션 쪽으로 봤을 때 '너무 잘 맞다'는 생각을 했다. 물망초 세 송이로 이뤄진 상징물인데 각각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를 뜻한다고 한다. 워낙 예쁘게 만들어져서 작업하기 정말 좋은 디자인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부합한다. '물망초 라인'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브랜드에도 활발히 활용될 수 있다.
이 대표는 "패션쇼는 의류, 음악, 모델, 관객이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이라며 물망초를 활용해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에 전달할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쇼에선 송환을 기원하는 음악적 장치 중 하나로 '모스 부호'를 활용할 계획이다.
Q :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상징이 패션쇼 무대에 오르게 된 계기는
A : 이번 서울패션위크 콘셉트를 '더 메신저'(The Messenger·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로 잡았는데, 마치 운명처럼 지난해 12월에 통일부에서 먼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관련 상징물을 서울패션위크에 올릴 수 있겠냐는 제안이 왔다. 당초 한두 벌을 요청했는데 아예 10여점을 올려 하나의 파트를 만들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작업을 맡게 된 이후 경기도 파주시의 국립 6.25 전쟁 납북자기념관도 직접 방문해 전시 납북 관련 사료와 전시물을 직접 살펴봤다. 전시된 내용 중 가족이 납북된 당시부터 매일 일기를 쓰셨던 분의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나
A :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를 비롯해 세상엔 잊혀지는 존재가 아주 많은데 이들 모두 '잊혀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많지 않다. 이번 쇼를 접한 분들이 한 번이라도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를 검색해 과연 어떤 일이 있었고, 북한이 그간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 3월 공개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는 한국인 전시납북자 10만명, 전후 납치·실종자 516명, 미송환 국군포로 5만명이라는 수치가 명시됐다. 정부는 미송환 국군포로의 경우 6만명까지도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별개로 현재 북한에는 한국 국적의 선교사 3명과 탈북민 3명이 억류돼 있다. 2013년 10월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와 그리고 이듬해 10월과 12월에 각각 억류된 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이다. 북한은 이들을 "남한 간첩들", "테러분자들"이라는 이유를 대 억류한 뒤 한국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이외에도 북한에 억류된 6명 중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민 출신 3명도 포함돼 있다. 비슷한 죄목으로 억류된 한국계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이미 석방·송환됐지만, 이들을 풀어달라는 요청에 북한은 제대로 응답조차 않고 있다.
그간 북한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생사 확인에도 응하지 않았다. 억류된 이들에 대해 "공화국 북반부로 자진해 들어온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남측을 향해선 "괴뢰들이 전시납북자라고 날조한다"고 반발해왔다.
Q : 패션으로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나
A : 사회적 이슈를 패션의 영역에서 슬로건화하면 여론을 환기하는 '걸어다니는 광고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전쟁 등 국제적 현안을 모티브로 쇼를 올린다. 물망초도 최대한 자주 노출하고 한 명의 눈에라도 더 띄게 하면 대중은 자연스럽게 '그게 뭐야' 하며 호기심을 갖게 되고,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특히 K-패션이 국제적으로 '핫'한 만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파급력도 크다.
이 대표는 "매출 등 숫자뿐 아니라 유의미한 가치를 발굴해 창작 에너지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한다"고도 말했다.
Q : 이산가족 3세라는 점도 작업 참여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A : 할아버지가 북측 강원도에서 온 분이다. (남북 간)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산가족이든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가족이든 모두 허탈한 기분이다. 앞으로 (헤어진 가족 관련) 소식을 들을 일이 더 없을 것만 같아서다. 자꾸만 (문제 해결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Q : 북한이 이번 쇼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A : 남한 사람 전부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여론이 확실히 형성되면, 이 문제를 줄곧 부정하는 북한의 입장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균열을 북한이 느끼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절대 이 문제를 잊지 않도록 계속 공론화해야 한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는 북한이 저지른 폭력 아닌가. 계속 우리가 요구하는 게 맞다.
Q : 대통령 등 고위공무원이 국제무대에서 물망초 의상 등 상징물을 착용하는 모습도 가능할까. 일본 총리도 납북자의 상징으로 '블루 리본'을 자주 착용한다.
A :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공적인 자리에 어울리는 정장뿐 아니라 편한 자리에서 입을 니트웨어, 티셔츠, 맨투맨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주변국 정상이 모두 각자의 상징물을 착용하고 있다면 북한에 그 자체로 눈치를 주고 압박을 가하는 효과가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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