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명품백이 국정의 블랙홀이 돼서는 안 된다
외면하고 방치하면 민심 악화
명품백, ‘대통령선물’은 아냐
공작에 걸려든 건 맞지만
김영란법에 어긋난 행동
더 심각한 건 인사개입 의혹
허위주장이라면 명예훼손
사실이면 국정농단 비화
모든 의혹 해소 하려면
특별감찰관이 진위 가려야
이 일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윤석열정부의 발목을 잡을 일인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동영상이 공개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저급한 마타도어 수준의 정치 공작으로 보였지만 여권의 미숙한 대응과 맞물려 모든 정치적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커졌다. 4월 총선을 앞둔 여권의 큰 악재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부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엊그제 윤석열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갈등을 봉합하는 모양새를 연출했으나 정작 충돌의 원인이었던 명품백의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이달 중 KBS와 대담을 갖고 직접 설명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1월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다. 특정 언론사만 상대하는 방식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소통 방식과 시기를 재조정하느라 설 연휴 직전으로 미뤄졌다는 얘기가 들리는 걸 보면 아직 대통령실의 입장 정리가 덜 된 모양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하든 진솔한 해명과 상응한 조치가 따라야 한다. 시기를 늦출수록 손해다.
대통령실은 당초 이 동영상을 무시하려고 한 것 같다. ‘입장이 없다’는 게 초기 대응이었다. 동영상을 공개한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 측은 몰래카메라 방식으로 취재한 것이라고 털어놓아 취재 윤리 논란이 일었다. 300만원짜리 명품백을 선물한다면 김 여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떠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서울의소리는 대선을 앞두고 소속 기자가 김 여사와 나눈 통화 내용을 공개한 뒤 손해배상소송을 당해 1, 2심 모두 패소했다. 이 사건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걸 감안하면 보복성 취재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선물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는 북한을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조사를 받은 사람이다. 이 매체의 주장에 진실성이 떨어진다고 폄하할 수 있다. 그러나 동영상을 보면 취재윤리보다 김 여사의 처신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말로는 상대방을 타박하면서도 김 여사는 고가의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한 번에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는 걸 금지하고 있다. 배우자의 금품수수 사실을 알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는 처벌 대상이다. 선물을 준 사람도 처벌받고, 선물은 몰수된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김 여사가 김영란법을 몰랐을 리 없다. 즉석에서 거절하기가 민망해서 받았는지 모르지만 돌려주려는 시도나 의사 표시 없이 1년 이상 갖고 있었다면 단순 부주의로 설명하기 어렵다. 김 여사의 해명이 필요하다. 법 위반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다른 공직자나 배우자들의 김영란법 위반을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 김정숙 여사가 걸친 1000만원대 샤넬 재킷에 비하면 300만원짜리 디올백은 별 것 아니라는 식의 대응은 저급하다. 도긴개긴이라는 건가. 윤석열정부 역시 문재인정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이 이 명품백을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로 규정한 것은 실수다. 돌려주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 해석이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선물을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받은 것으로 국가적 보존가치가 있는 선물’로 규정하고 있다. 김 여사가 운영하는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서 오간 디올백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더 심각한 것은 인사개입 주장이다. 최 목사는 지난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동영상을 제작한 배경을 밝혔다. 윤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은 지 한 달쯤 지난 2022년 6월 김 여사가 누군가로부터 인사청탁 전화를 받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몰래카메라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김 여사가 마치 고위직 인사를 주무르는 인사권자인 것처럼 행동하더라고 폭로했다. 김 여사가 받은 전화 내용이 실제 인사청탁이었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인사청탁이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김 여사가 이를 아무에게도 전달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위 주장이라면 최 목사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김 여사가 정부 인사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국정농단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특별감찰관법은 대통령 배우자의 인사 개입을 비위행위 중 하나로 열거하고 있다.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진위를 가려야 한다. 대통령실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최 목사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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