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50년 후 사라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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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올해 3세반 모집이 예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며 울상을 지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50대가 되는 2070년쯤이면 "예전에는 부모님 재산을 서로 많이 가지려고 재판을 했었대!"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속 분쟁이 어려워도 더 열심히 조정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사건은 내가 조정안을 보내 서로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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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올해 3세반 모집이 예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출산율이 0.7명으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피부에 와닿는다. 그러고 보면 요즘 넘쳐나는 형제들 간 상속 싸움도 앞으로는 희귀한 사건이 될지 모른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50대가 되는 2070년쯤이면 “예전에는 부모님 재산을 서로 많이 가지려고 재판을 했었대!”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키우는 애완동물과 상속 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상속 분쟁이 어려워도 더 열심히 조정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여덟 명의 형제와 조카 한 명이 조정실에 찾아왔다. 형제들은 선친이 남겨주신 부동산을 팔아 돈을 똑같이 나눠 갖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동산을 관리해 온 장남이 그동안 쓴 비용을 더 받아야겠다고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나머지 형제들은 조정실에서 엑셀 표가 프린트된 커다란 서류를 불쑥 내밀었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들고 깨알 같은 숫자들의 의미를 물어가며, 그동안 형제들 간에 오고간 이야기들을 추적해 나갔다. “그럼 여기 서명하신 부분까지 합의가 된 거네요. 그리고 여기 3000만원은 추후 협의하자고 적혀 있네요. 그럼 오늘 이 3000만원 중에 서로 절충해서 합의하고 가시지요.”
아, 그런데 형제들끼리 채무 관계가 있어서 정산해야 된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 채무 관계란 것이 여덟 명의 형제마다 다 다르다. “네? 아니, 꿔주신 돈이 각자 얼마 정도 되는데요? 그것까지 다 해결하려면 오늘 중에 안 끝날 것 같은데…. 그럼 일단 부동산값에서 받을 돈이 얼마인지까지만 확인하고 나머지 채무 관계는 형제분들이 따로 계산하시기로 할까요?”
그런데 사실 장남이 부동산 계약금을 이미 받아갔단다. “네? 얼마를 받아가셨는데요?” 나는 대답을 들으며 얼른 옆에 있는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마침 받아가신 돈이 받으셔야 할 돈 정도로 계산이 맞아떨어지네요. 그럼 부동산 관련해선 이제 깔끔하게 서로 주고받을 것이 없다고 하면 어떠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장남이 그 계약금 받은 돈은 공인중개사 수수료로 다 줘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미리 얘기도 안 하고 준 돈, 인정 못 하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쯤 되니 그냥 포기하고 재판으로 넘겨버리고 싶다. 그 순간 맨 앞에 조용히 앉아 있던 조카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열 번도 넘게 모시고 얘기하고, 엑셀 표로 정리하고 서명받고 했어요. 그런데 알았다고 하시고선, 나중에 또 얘기하시고, 또 얘기하시고 그러세요.”
“아이고 네, 조카님이 총대를 메신 김에 조금만 더 고생해 주시면 어떨까요. 큰아버님이 그간 부동산을 관리하느라 고생하신 공을 인정 못 받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있으신 것 같아요. 오늘은 오랜만에 모이셨으니 함께 점심이라도 드시면서 위로해 드리면 좋겠어요. 제가 조정안을 보내드릴 테니까 양측 잘 생각해 보시고요.”
결국 이 사건은 내가 조정안을 보내 서로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마무리했다. 법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아까 조정실에서 만났던 조카가 다리가 불편한 큰아버지를 부축하고 식당으로 들어선다. 가벼운 눈인사를 하면서 이 사건은 재판까지 가지 않고 조정이 잘 되겠구나 생각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그 바람 들 가지마저 찾기 어려워질 세상을 앞두고 있지 않은가. 그날은 다투다가도 서로 의지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마치 옛 영화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안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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