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헤일리도 당했다… 정치인 위협하는 ‘위험한 장난전화’
경찰 출동… 무고한 일반인 사망도
AI 기술 발달 등 정치적 도구 악용
공직자·정치인 대상 공격 급증
“나는 사탄의 이름으로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총기를 난사할 것이다. 파이프 폭탄과 AR-15(돌격용 소총)를 들고 보이는 사람 모두를 죽이겠다.”
지난해 5월 12일 미국 플로리다주 세미놀 카운티 911 신고센터에 남부식 억양을 사용하는 신원 불명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무차별 총기 난사를 경고하는 이 전화는 실제 총격 소리가 들리며 끝났다. 당국은 즉각 현장에 경찰을 출동시켰지만 위협은 없었다. 워싱턴주 학교 20곳, 텍사스주 대학 4곳에 대해서도 같은 날 비슷한 형태의 위협 신고가 들어왔으나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추적 결과 이들 허위 신고는 모두 텔레그램 ‘톨스와츠’(Torswats) 채널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계정 운영자는 학교나 공공기관에 폭탄테러를 위협하는 가짜 신고 전화 ‘스와팅’(Swatting)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스와팅은 중무장한 경찰 특수기동대(SWAT)를 출동시키기 위해 강력사건 발생 등을 허위 신고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톨스와츠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만든 가짜 음성을 활용했고 일반 가정집에 대한 공격은 50달러, 학교를 폐쇄할 수준의 극단적 위협은 75달러에 판매했다고 IT 전문지 와이어드가 설명했다.
톨스와츠에 의한 공격은 지난 1년간 전국 단위로 이뤄졌다. 미국 전역의 학교, 법원, 종교시설, 정치인 자택 등에 대한 허위 신고 수백 건이 이곳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수사당국은 파악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5월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대응에 나섰고 최근 운영자 한 명을 특정해 체포했는데, 그는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17세 청소년이었다. FBI는 “역사상 가장 많은 스와팅 공격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위험한 장난 전화’ 스와팅 문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직자나 정치인을 상대로 한 위협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기술 발달과 정치 극단화가 맞물리면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쟁 중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도 최근 스와팅 피해자가 됐다.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지난해 12월 3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키아와섬에 있는 헤일리 전 대사 자택 주소를 대며 “여자친구를 집에서 총으로 쐈다”는 가짜 신고를 했다.
스와팅은 경찰력을 낭비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실제 위협이 되기도 한다. 헤일리 전 대사도 28일(현지시간) NBC방송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87세와 90세 부모님이 간병인과 함께 집에 있었다”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부모님을 향해 총을 겨눴다”고 말했다.
지난 25일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20회 넘게 스와팅 공격을 벌인 21세 남성 애쉬튼 가르시아가 기소됐다. 그는 특히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폭스뉴스 방송국에 대해 폭탄테러 위협을 가했다. 가르시아의 허위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서 아무런 관련 없는 일반인들을 체포했다.
매사추세츠주 댄버스의 한 경찰은 지난해 5월 스와팅 대응을 위해 현장에 나섰다가 실수로 무기를 발사했고, 미시간주 새기노 지역의 한 경찰은 지난해 2월 허위 신고 대응을 위해 학교로 들어가려고 출입문을 차량으로 들이받았다. 2017년엔 캔자스주 위치타 지역 경찰이 스와팅 대응 때 실수로 무고한 일반인에게 총을 쏴 사망케 한 사건도 발생했다.
스와팅 사건은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FBI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진 지난해 5월 이후에만 550건 이상의 스와팅 사건이 신고됐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2021년 19건, 2022년 59건 수준이던 스와팅 사건이 지난해에는 181건 발생했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안보·인프라보호청(CISA)의 젠 이스터리 국장도 지난 22일 자신의 집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스와팅 공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스와팅이 정치적 위협의 도구로 활용되는 일도 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정치인과 판검사, 선거 담당 공무원 등에 대한 스와팅 사건이 최소 27건 발생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련해선 그의 선거권 박탈을 결정한 셰나 벨로즈 메인주 국무장관, 대출 사기 사건을 담당한 아서 엔고론 판사, 대선 전복 시도 사건을 수사한 잭 스미스 특검과 해당 재판을 진행한 타냐 처칸 판사 등이 피해 대상이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 릭 스콧 상원의원 등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그룹도 같은 피해를 당했다. 공화당 서열 3위인 톰 에머 하원의원도 지난 27일 허위 신고로 무장 경찰이 자택으로 출동하는 일을 겪었다. 에머 의원은 “불법적이고 위험한 계획이 선출직 공무원을 표적으로 전국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바라 맥퀘이드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는 “스와팅은 이제 미국 정치의 혼란에 의한 증상이 됐다. 정치적 폭력이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징후”라며 “최근의 확산은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폭력을 일상화한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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