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태원특별법 재협상해 합의로 처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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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거부권 불가피했어도 민심은 되새겨야
민주당, 정략 버리고 논란 조항 제거 협조하길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해당 법안을 단독 처리했을 때부터 예고됐던 수순이다.
한덕수 총리는 거부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특별조사위원회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 11명의 특조위원을 임명하는 절차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한 총리의 지적처럼 이태원특별법에 논란거리가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가령 특별법은 특조위원 11명 중 국민의힘이 4명, 민주당이 4명, 민주당 출신인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하도록 규정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친야 성향의 특조위가 꾸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탄생한 특조위에 압수수색·동행명령, 고발권 행사, 출국금지 요청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할 경우 “조사 활동을 빙자한 정치공세가 우려된다”는 여당의 걱정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불송치됐거나 수사가 중지된 사건 기록까지 특조위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과도한 권한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여권에선 “이태원특별법이 운동권 일자리 마련 법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과거 세월호 참사 때 특조위·사참위에 진보단체 인사가 대거 들어가 활동한 전례가 있다. 이들이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8년간 7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쓰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유의미한 업적을 남겼는지는 아리송하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런 이유들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다만 여권도 거부권 행사를 끝으로 이태원특별법 문제를 마무리하려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민심이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이 159명이나 죽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냐”는 상식적 여론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누구까지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하냐는 문제는 결론짓기가 애매할 수 있다. 하지만 사법적 책임 이전에 관련 당국자가 정치적·도의적 책임이라도 지면서 국민 감정을 누그러뜨렸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조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정부의 무신경한 모습에 불만 여론이 팽배하면서 민주당의 ‘특별법 공세’가 가능해진 것이다. 앞으로 이태원특별법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 재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여야는 이제라도 다시 협의를 시작해 특별법의 위헌적 하자를 제거하고 합의 처리하길 바란다. 국민의힘이 국민 여론에 보다 겸손히 귀 기울이고, 민주당이 참사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만 버린다면 합의가 어려울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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