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스님의 마음 읽기]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남는다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은 1월 어느 날! 동안거 중에 한 번은 꼭 해야 하는 포살(출가자들의 송계참회의식)에 참여했다. 스님들이 조계사 법당 안에 가득 모였다. 아는 스님, 모르는 스님, 알 듯 말 듯 낯익은 스님들이다. 반갑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한 눈인사를 나누며, 나는 어서 빨리 포살이 시작되기만을 바랐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섞인 날에는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과 혹여 먼 발치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금세 마음이 흔들린다.
이윽고 염불이 시작되었다. 분위기가 엄중하다. 그러나 마음은 혼탁한 기억을 더듬느라 돌아올 줄 모른다. 산란한 마음을 과거에 버려둔 채 큰스님의 넉넉한 음성을 눈으로 따라 읽었다. 평소의 나는 망상이 별로 없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을 대하듯 어딘가 어색하여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머리까지 멍했다.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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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기억은 내가 만든 업보
고통스러운 인연도 나의 몫
본분 지키며 지혜롭게 살고싶어
」
이처럼 하루하루 살면서 우리는 자주 자신을 놓친다. 몸은 여기 있으면서 마음은 딴 곳에 머물러 있다. 그 헛된 시간이 삶의 상당 부분을 채워가는 것 같아 나는 너무 아깝다. 마음이 ‘지금 여기’ 없다면,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자리에서 깨어 있으려면 과거나 미래를 떠도는 마음을 현재의 나에게로 데려와야 한다.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어야만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고통, 가난, 절망을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의 실패나 좌절한 경험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히려 힘을 얻고 훨씬 성장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기도 하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바벰바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데는 매우 독특한 ‘재판의 전통’ 덕분이라고 한다. 내용은 이러하다. 마을에서 죄를 지은 이가 생기면 마을의 광장 한복판에 잘못한 이를 세워두고 사람들이 에워싸게 한다. 그런 다음, 마을 사람들이 잘못한 이에게 한 마디씩 하도록 한다. 이때 죄인을 탓하여 돌을 던지거나 잘못을 힐난해서는 안 된다. 잘못한 이가 과거에 행했던 착한 일이나 그가 가진 장점들, 아름다웠던 이야기나 전에 감사했던 기억들을 꺼내어 한마디씩 하면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넌 원래 착한 사람이잖아”부터 “지난번 비 왔을 때 우리 집 지붕 고쳐줘서 고마워”, “덕분에 일이 잘 풀렸어”라며 기억을 더듬어 칭찬과 감사의 말을 쏟아낸다. 그런 얘기가 끊이지 않게 되면 죄를 지은 사람 눈에서 어느덧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죄를 뉘우치는 듯 절정의 순간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한 사람씩 다가가 그를 꼭 안아준다. 곱고 아름다운 언어와 사랑으로 잘못한 이를 용서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용서와 화합으로 물든 평화의 재판에는 그 어떤 원망도 비난의 욕설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 동안 자신을 둘러싼 칭찬 릴레이가 계속되고 나면,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게 된다고 한다. 나아가 많은 이들의 사랑과 격려에 보답하고자 앞으로는 더 바르게 살 것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 누가복음 6장 37절에 이리 설하지 않으셨던가.
이 스토리의 포인트는 죄를 지은 이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태도에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다른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과거 행실을 낱낱이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모든 것이 남는구나, 내가 아니어도 남이 나를 기억하는구나’ 싶었다. 제아무리 자신이 잊고 싶고 버리고 싶어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까지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난감한 일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지난 삶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시각과 행동을 좌우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내가 만든다. 걸핏하면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도 결국엔 다 내가 만든 나의 업보일 뿐이다. 어릴 적 추억에서부터 부모나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름답거나 지우고 싶은 추억들도 모두 자신이 직접 쌓아온 본인의 생애다. 내 안에 있는 고통과 연결된 여러 인연조차도 내가 엮은 나의 몫인 것이다.
『중아함경』3권에 보면 “고의로 짓는 업의 과보는 현세나 후세에 반드시 받는다”고 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과보로 남는다는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사소한 행실일지라도 본분을 지켜가며 지혜롭게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 나는 그런 인생길을 걷고 싶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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