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행동주의 펀드는 구원자일까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에게 이익을 더 적극적으로 환원하라고 기업들을 압박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투자한 상장사는 2021년 34개였지만 지난해 상반기 동안에만 50곳으로 늘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올해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때 ‘기업 사냥꾼’ 소리를 듣던 이들에 대한 평가는 요즘 꽤 호의적이다. 소액주주들을 대변하는 ‘확성기’나 ‘구원자’라는 거다. 2019년 한진칼(대한항공 지주사)을 뒤흔든 KCGI,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진과 이사회를 모두 바꾼 얼라인파트너스 같은 사례가 쌓인 효과다.
사실 이들의 말엔 틀린 게 별로 없었다. 창업자나 총수 개인회사로 수익을 몰아주는 후진적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니 명분에서 밀릴 게 없고, 주가가 오르니 주주들도 반겼다. 지난해 SM엔터 사례가 그랬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에 이어 카카오·하이브의 인수 경쟁까지 얽힌 드라마는 흥행에 성공했고, 주가는 폭등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차익을 실현했을 뿐 아니라 이사회에서 감사 등 두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돈엔 여러 얼굴이 있다. 이들은 애초 제기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일정 수익률을 확보하면 지분을 팔고 나왔다. 당장 잡히는 펀드 수익률과 시간이 걸리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사이에서 그들의 합리적 선택은 전자였다. 오스템이나 DB하이텍 지분을 판 KCGI에 소액 주주들이 씁쓸해하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행동주의 투자자가 이사회에 들어가서도 약속한 제 역할을 못 한다는 것이다. 다시 SM엔터. 이 회사 일부 경영진이 자신의 개인회사 혹은 지인의 회사를 과도하게 비싸게 사줘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본사인 카카오가 감사에 나섰다. 의아한 일이다. 지난해 SM엔터 이사회에 대거 들어갔던 행동주의 펀드 출신 이사들은 뭘 했을까. 주주의 편에 서서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던 이사들 말의 유효기간은 이익 실현으로 끝난 것일까. 요즘 SM주가는 지난해 공개매수가(15만원)의 절반, 2년 전 주주 행동주의 운동 초기 수준으로 회귀했다.
요즘처럼 대통령과 정부가 주주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뛸 때가 있었을까 싶다. 상당수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상속세 개편, 저평가 상장사 가치 제고 등 그동안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주장해온 내용이다. 그러나 칭찬은 여기까지. 이제는 그동안 뿌려놓은 말빚의 무게를 느낄 때다. 행동주의 투자가 기업 성과를 단기에 빼먹으려는 ‘기업 사냥꾼’으로 전락한다면, 모처럼 찾은 주주 이익 확대의 길도 다시 멀어질지 모른다.
박수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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