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한이 제1의 적"…경찰, 북한 해외공작 막을 수 있나 [윤봉한이 소리내다]

윤봉한 2024. 1. 3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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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올해 들어 경찰이 전담하면서 안보수사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새해가 시작되면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 활동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정치사찰과 비민주성을 이유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수사 권한을 경찰에 독점시켰다. 국민 대다수는 국정원을 ‘간첩 잡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국민 73.9%가 올해부터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지난해 여론 조사(자유민주연구원 등)가 있었다. 60.9%가 간첩수사는 국정원이 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이 몰랐다는 것은 전 정부에서 정치적 암산(暗算)에 따라 국가 안보 생태계를 무너뜨렸다는 의미다.


국민 다수 "간첩 수사 국정원이 해야"


1990년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대소(對蘇) 정보담당자가 옛 소련의 정보기관인 KGB의 첩자로 활동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알드리치 에임즈란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십수년간 KGB 첩자로 암약하면서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CIA의 모스크바 내부 협조자 10여 명을 밀고하고, 비밀공작 200여건을 와해시켰다. 정보 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이 사건은 오히려 CIA 해외 공작 기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참혹한 9ㆍ11 사건도 정보활동 관련 법령을 강화하고,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며 안보체계를 강화했다. 그래서 CIA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 될 수 있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가 발끈하며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상반된다.

많은 국민이 경찰이 과연 국가안보 수사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를 우려하고 있다. 국정원에 상응하는 전문성과 지식과 기술을 구비하고 있는지 걱정한다, 북한-해외-국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수사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 염려한다. 올해 내 인력을 증원하고 기구를 개편하겠다고 하지만 조직의 내재적 한계상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과 달리 경찰청은 행정안전부 산하 외청 기관으로 국회, 언론, 시민단체의 개입에 큰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높은 정치 지향적 특성으로 정치권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셋째, 낮은 보안성이다. 간첩 및 안보 위해 사범 수사에 가장 필수적인 기밀성 유지가 힘들다. 넷째, 안보수사에 무관심하거나 냉대하는 분위기다. 그 예로 대공수사권 유예 3년 동안 조직이나 인력 개선이 전혀 없었다. 다섯째, 국정원과 원활한 공조 협력이 어렵다. 출처를 보호해야 하는 국정원 업무 특성이나 다층적 업무구조가 이를 어렵게 한다.

경찰청 및 시·도청 안보수사팀장 및 책임안보수사관 지원자들이 지난해 6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안보수사 지휘역량 평가시험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경찰 안보수사 전문성과 활동기법 한계

현재 경찰의 안보수사 능력에서 나타나는 한계도 있다. 경찰은 간첩과 안보 사범 수사에만 전념할 수 없다. 탈북자 관리, 산업스파이, 테러 사범 및 남북교류업무 지원까지 감당해야 한다. 전문성과 활동기법도 부족하다. 채용과 동시 대공수사로 특화되는 국정원이 가진 고도의 수사기법과 오랜 세월 축적한 경륜과 전문성은 경찰이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

해외활동 여건 역시 미비하다. 중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글로벌화하는 북한 대남 공작에 대응한 경찰의 해외 활동은 사법 주권 침해와 외교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해외 정보기관과 협력하는 것이 어렵고, 과학 및 사이버 수사가 취약하다. 이에 반해 국정원은 인간정보(HUMINT)를 중심으로 신호정보(SIGINT), 계측정보(MASINT)와 통신정보(COMMINT)를 비롯한 기술정보(TECHINT)까지 결합하는 정보를 지원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국정원과 같은 수사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안보사범 검거 4분의 1로 떨어져


문재인 정부 집권 5년 동안 검거한 안보 사범 건수는 이전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정원이 ‘ㅎㄱㅎ 조직’ 등 일련의 사건에 수사 권한을 행사한 것이 단장을 끊는 듯한 몸부림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잘못”이라며 “경찰의 대공수사권 전담은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간첩사건은 충격적 안보위협” “종북 주사파는 반국가, 반헌법 세력”이라며 단호한 척결 의지를 밝혀 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김정은이 최근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선언하면서 윤 대통령의 안보 의지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여당 일부에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압승해 대공수사권을 복원시키자고 한다. 하지만 다수당의 위력으로 복원하게 되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안보의 미래는 국민적 지지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안보기능정상화위원회(가칭)’ 같은 기구가 구성돼야 한다. 정부, 국회, 국정원을 비롯한 경찰 등 관계기관을 고루 참여시켜 전략과 이론을 개발하고, 국민 인식을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헨리 키신저는 “국가는 안전보장과 국민안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궁극적 포부와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주체”라고 했다. 국정원은 이를 위한 국가 핵심 조직이다. 변화하는 안보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국정원의 대공수사 권한 복원이 꼭 필요하다. 국정원이 가진 안보위협 예방과 저지 기능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국정원의 역할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수주대토(守株待兎·되지도 않을 일을 기다림)하다가는 치유 불가능한 ‘말기 안보 암(癌)’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윤봉한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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