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영의 이상한 사무실
Q : 이번 화보는 사무실을 배경으로 강기영의 코믹하면서도 섹시한 모습을 담으려 했습니다. 몰입이 잘되던가요
A : ‘섹시미’는 제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단어입니다. 화보는 늘 자신과의 싸움이고요. 그래도 재미난 소품이 많아 덜 뻘쭘했던 것 같아요. 물론 작품에서는 섹시하게 바라봐주는 상대가 있으니까, 어쩌면 섹시할 수 있을지도요.
Q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또 한 번 변호사를 연기합니다. 〈끝내주는 해결사〉의 동기준은 정명석과 얼마나 다른 변호사인가요
A : 두 사람의 직업적 사명감은 비슷한데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명석은 법률에 충실하고 의뢰인이 잘못을 했을지언정 ‘의뢰인의 용병’이라는 역할을 기꺼이 따르는 변호사였다면, 검사 출신 동기준은 ‘해결사’에 가깝습니다. 합법과 편법을 오가죠. 이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함정에 빠진 사람도 많거든요. 동기준은 그런 면에서 정의를 추구한달까요.
Q : 마치 ‘히어로’ 같은 존재이군요
A : 사실 극중 사랑하는 여자가 어려움에 처하니 도와주려는 것 같아요.
Q : 알고 보니 그저 사랑꾼이었군요
A : 그럴지도요(웃음).
Q : 〈끝내주는 해결사〉는 이혼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연기하면서 꽤 흥미롭게 다가오는 구석도 많겠습니다. 이혼은 인간사 중에서 가장 다채롭고, 많은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니까요
A : 가끔 현실이 더 드라마 같을 때가 있죠. 본인 잘못이 아닌데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전개가 빠르고 통쾌해서 시청자도 속 시원하거나 대리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 변호사를 두 번 연기해 보니 어떻습니까. 이제 사무실과 수트에 익숙하겠네요
A : 공교롭게도 수트 입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사장 역할도, 검사 출신도, 변호사도 해봤죠.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팔자에도 없는 인물을 연기하게 된 건 신기합니다. 가끔 사람들이 “혹시 변호사님 아니세요?”라고 묻기도 하는데, 그럴 땐 “변호사는 아니고 배우입니다”라고 인사해요. 그렇게 스마트하고 지적인 인물로 봐줘서 감사할 따름이죠.
Q : 만약 배우가 아니었다면 강기영은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요
A :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회사원이 되는 건 제게 ‘무서운’ 꿈이었거든요. 물론 배우 세계에도 질서가 분명하지만, 질서 있는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달지.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배우로서, 광고 모델로서 돈을 계속 벌었어요. 생활이 풀리지 않았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봤겠지만, 다행히 15년간 생활비도 계속 벌고 어떨 때는 작품이 잘돼서 수입이 늘어나니까 굳이 다른 길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 전작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에서는 필광이라는 무자비한 빌런에 도전했습니다. 대부분 유쾌하고 인간적인 인물을 연기해 왔는데, 악역도 잘 맞던가요
A : 악역 자체는 매력적이었는데 외형을 표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마흔 넘어 운동하니 전보다 몸을 만드는 속도가 더뎠거든요! 또 나름 유쾌하고 재미난 이미지가 구축돼 있는데, 빌런을 연기하면서도 그런 모습이 새어 나올까 봐 좀 무서웠습니다. 놀림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기하면서는 짜릿했죠. 일상에서 전혀 뱉을 일 없는 대사를 뱉으면서요. “여기가 너희들 무덤이 될 것이다!”
Q : 이전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어요. 비일상적인 대사마저 코믹하기보다 살 떨렸거든요
A : 현장의 모두가 그런 대사를 뱉고 있으니 더 뻔뻔할 수 있었죠(웃음). 사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도 빌런을 연기한 적 있는데, 웃겨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편했던 기억이 나요.
Q : 코믹한 연기가 악한 연기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군요
A : 빌런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때보다 웃긴 걸 했는데 누구도 안 웃을 때가 훨씬 괴로워요. 하지만 여태까지 ‘좋은 사람’을 연기하며 쌓아온 데이터는 ‘이만큼’ 있는데 악인 데이터는 거의 없는 거예요. 그걸 쌓고 싶었어요. 제 배우 인생을 더 넓혀줄 거라고 믿었거든요. 팬층은 확실히 넓어졌어요. 그 작품을 어린 친구들이 많이 봐서 그런지 아파트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는데도 멀리서 ‘저건… 황필광?’ 이러면서 아이들이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냈거든요.
Q : 〈끝내주는 해결사〉에서는 자신에게 어떤 목표를 부여했나요
A : 로맨스 또한 소화 가능하다는 여부를 검증받고 싶은, 그런 소중한 목표가 있습니다.
Q : 정말 중요한 도전이네요(웃음)
A : 순정으로 상대방 곁에 존재하는 모습이 저도 낯설고, 연기해 보지 않은 감정선이라 두려움도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제가 아주 못할 건 아니구나,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네, 싶었어요. 하지만 ‘강기영의 로맨스’ 연기가 또 창피할까 봐 걱정입니다. 앞으로 제 필모그래피가 로맨스 계보를 이을 수 있을지. ‘남주’라는 존재에 대한 책임감도 큽니다.
Q : ‘창피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나요
A : 사실 무엇을 하든 창피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가장 커요. 연기할 때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크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창피하고 싶지 않거든요. 한때는 제가 나오는 드라마를 잘 못 봤어요. 상대 배우 눈을 똑바로 바라본 지도 몇 해 되지 않았죠.
Q : 의외네요. 코미디 연기의 달인이라 웃기려는 욕심이 클 것 같았는데
A : 그건 맞아요. 개그 욕심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한순간 가장 짧고 임팩트 있게 주목받을 수 있는 도구가 개그라고 생각하거든요. 액션에 즉각적인 반응이 오고요. 오디션에서도 재밌는 연기를 펼치고, 앞사람이 웃었을 때 이득을 많이 봤어요. 또 촬영장 분위기가 재밌어야 대중도 작품을 재밌게 볼 거라는 신념이 있어서 늘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Q : 친구와 지인 사이에서 강기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A : 미쳤다고 그러죠(웃음). 친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는 영양가 없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같이 웃고 떠드는 게 좋아요. 그래서 말을 많이 합니다. 늘 하면서도 걱정이에요.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Q : 연기를 좋아했지만 광고 모델로 먼저 얼굴을 알렸습니다. 15년 가까이 흐른 지금 배우로서 열망은 더 커지고 있나요
A : 그때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유명해지고 싶고 빨리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우선이었던 것 같은데, 작품을 하나씩 하면서 굉장히 어려운 직업이란 걸 느꼈어요. 지금은 연기만 잘했으면 좋겠어요. 한때 오만방자하게 연기를 테크닉이라고 생각했고, 그저 잘하는 것처럼 보이면 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이제는 그래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알죠. 세상에 정말 연기 잘하는 사람이 많단 걸 체감했고, 승부욕도 생겨요. 걱정도 되죠. 조연과 주연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위아래, 양옆에서 누르니까 내 영역이 좁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웃음).
Q : 괜한 걱정입니다. 어엿한 ‘로맨스 남주’인데요
A : 어엿한 건 아닙니다. 작품이 잘되면 그때 ‘어엿’을 붙여주세요!
Q : 어엿한 글로벌 스타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팬미팅을 무사히 치렀는데 올해도 계획이 있나요
A : 3월에 도쿄에서 진행합니다. 두 번째까지는 신나서 했는데, 세 번째는 부담이 되더라고요. 똑같은 형식으로 하면 성의가 없으니 제대로 춤이라도 춰야 되나 싶고. 지난 팬미팅 때 블랙핑크 지수의 ‘꽃’ 챌린지를 했던 게 참 재밌었어요. 걸 그룹 댄스를 1절이라도 춰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제가 박치는 아니지만, 교회 가서 리듬도 잘 못 타요. 근데 동작에 집중하니 기분 좋더라고요.
Q : 걸 그룹의 따끈따끈한 신곡을 ‘짠’ 하고 선보이면 되겠네요
A : 신곡은 안 돼요! 준비 기간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꽃’ 챌린지를 그정도 연습하는 데 일주일 반이 걸렸어요. 한참 전에 나온 곡을 지금부터 연습해야 기한에 맞출 수 있어요.
Q : 인터뷰를 준비하며 단역 시절 작품부터 찬찬히 돌이켜보니 당신은 사람 사는 곳 어디서든 존재하고 있더군요. 지금도 세상 어디든 존재할 법한 배우를 꿈꾸나요
A : 친근한 배우가 되려는 목표는 있었어요. 제가 배우로서 들었던 말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감사했던 말은 “너를 모르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너를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다”는 말이거든요. 편하게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에게 보답할 방법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편안함의 스펙트럼을 넓히려 해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그럼에도 보는 사람의 눈이 매번 즐거운 배우로. ‘그래도 저 친구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만 승부를 보는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 같아요. 또 작품이 아니면 움직일 결심이 선뜻 서지 않는 타입이라 ‘입금 전후’랄지, 동기부여가 확실해야 살을 빼든, 몸을 만들든 그 영역에 몸을 불사를 수 있는 것 같아요.
Q : 일상 속 강기영의 행복을 잘 지켜야 연기도 잘할 수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지금 강기영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A : 너무 좋아요. 가족들이 좋아해서 좋고요.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어요. 금전적 부분을 떠나 마음의 편안함이랄지. 예전에는 ‘얘가 잘하나 못하나’ 노심초사하면서 제 연기를 봤던 것 같아요. 자리를 꽉 잡은 배우는 아니었으니까 걱정과 불안함이 늘 있었죠. 하지만 이제 가족들도 마음 편히 제 드라마를 웃으며 보는 것 같아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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