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 LG디스플레이, 적자 멈췄지만…
실적 부진에 허덕이던 LG디스플레이가 6개 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멈추고 7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했다. LG디스플레이는 경쟁사 대비 액정표시장치(LCD) 비중이 높은 데다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부진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올해는 정철동 사장 지휘 아래 재무 구조 개선에 주력하는 가운데 중소형 OLED 투자에도 속도를 낸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애플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 강도도 치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4분기 ‘깜짝 흑자’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확대
LG디스플레이가 7개 분기 만에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LG디스플레이 영업이익은 1317억원으로 2022년 2분기 이후 7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영업이익 규모도 시장 기대치(1206억원)를 소폭 웃돈다. 지난해 4분기 흑자전환은 계절적 성수기 효과로 TV와 IT용 패널 등 중대형 제품군 수요가 늘어난 데다 스마트폰용 OLED 공급량이 확대된 덕분이다. 다만,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손실은 2조5102억원으로 전년(2조850억원)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이 기간 매출은 21조3308억원으로 18.4% 줄었다.
깜짝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LG디스플레이는 사업 포트폴리오 무게중심을 LCD에서 OLED로 옮기는 재편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0년대 들어 LCD 산업은 중국 BOE 등에 견줘 원가 경쟁력에서 열위에 놓여 한국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생산량을 감축해오다 2021년 완전 철수했다. 상대적으로 사업 구조 재편이 늦었던 LG디스플레이는 코로나 국면에서 IT 기기 수요 확대로 LCD를 팔아 재미를 봤지만 엔데믹 이후 부메랑으로 돌변했다. 유동성발 수요 거품이 꺼지면서 LCD 가격이 급락했고 고금리에 따른 구매 심리 위축으로 대형 OLED 시장도 기대만큼 크지 못했다.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는 새 먹거리로 중소형 OLED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설비 투자도 대형 OLED보단 중소형 OLED에 무게중심을 싣는다. 최근 디스플레이 산업은 구매 심리 위축으로 TV 수요가 주춤한 가운데 IT 기기와 자동차 디스플레이용 OLED 수요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애플 공급망 물량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최근 유상증자와 신디케이트론으로 약 2조원 조달을 결정한 것도 중소형 OLED 설비 투자 확대를 두고 핵심 고객인 애플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녹아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디스플레이업계와 자본 시장에서는 2조원 실탄 마련이 애플 공급용 중소형 OLED 투자 확대를 위한 차원으로 보고 있다. 중소형 OLED에서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 의존도가 높아 LG와 중국 BOE 등을 밀어주고 경쟁 관계를 조성해 가격 협상력을 키우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 BOE와 LG 모두 수율(收率·정상품 비율) 안정화에 애를 먹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중간재 산업으로 최종 고객사 수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애플은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박막트랜지스터(TFT) 기술력 기반 OLED를 공급받기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LTPO TFT는 기존 저온다결정실리콘(LTPS)과 산화물(Oxide) TFT 장점을 결합한 것으로 패널 전력 효율을 높여준다. 문제는 관련 공정 구현을 위한 장비 가격이 비싸 투자 비용이 대폭 늘어난다는 데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장기간 적자로 곳간 사정이 빠듯하다. 2023년 3분기 기준 현금은 3조원 정도로 8세대급 OLED 공장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LG디스플레이가 관련 설비 투자를 확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중국 광저우 LCD 공장을 매각하거나 그룹 차원에서 현금을 지원해주는 것. 최근 증자에 LG전자가 5000억원가량 참여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금이 아쉬운 현 상황에서 광저우 공장 매각은 ‘계륵’인 상황이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공급망 다각화 등을 명분으로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LCD 구매 문의가 늘고 있고 감가상각도 거의 다 끝나간다”며 “공장 입지도 좋다 보니 막상 매각하기 아까운 상황일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정황은 LG디스플레이 실적 콘퍼런스콜에서도 엿보인다. 2023년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LG디스플레이는 “최근 미중 무역 갈등으로 고객들이 공급망 안정화 측면에서 전략 변화를 원하는 상황으로 LG디스플레이에 공급 요청이 늘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광저우 공장 가동률은 당분간 높아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물론 LG디스플레이 역시 중장기적으로는 LCD 시장 완전 철수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의 유상증자 관련 증권신고서를 보면 ‘향후 LCD 패널 사업 완전 철수 등 당사 사업 포트폴리오에 중대한 변동이 발생할 경우 이에 따른 손상차손 추가 인식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LCD 시장에서 완전 철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LG디스플레이는 LCD 비중을 해마다 줄이고 있다. 2022년 말부턴 국내 LCD TV 패널 생산을 중단했다.
경쟁사는 속도 경쟁
산업계와 시장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8세대급 OLED 투자다. IT 기기,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으로 OLED 수요가 다변화하면서 주요 디스플레이 제조사는 기존 6세대급에서 8세대급으로 생산설비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6세대와 8세대 등 세대 구분은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에 쓰이는 유리 원장 크기를 기반으로 한다. 패널은 유리 원장에서 생산되는데, 원장 크기가 클수록 단일 원장에서 생산 가능한 패널 개수가 증가해 ‘면취효율’이 증가한다. 면취효율은 원장에서 패널로 만들 수 있는 비율을 뜻한다. 면취효율이 높다는 건 버려지는 유리 원장 면적이 적다는 의미다. 패널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전 세대보다 높은 수준의 원감 절감과 생산효율 달성을 기대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13인치 OLED의 경우 6세대와 8.6세대 원장 생산량이 각각 42장과 92장으로 격차가 50장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효율성이 높아지는 대신 공정 난도가 높아 수율 안정화가 간단치 않다.
경쟁사 삼성디스플레이와 중국 BOE가 8세대급 투자 속도 경쟁을 벌이는 것에 비춰 LG디스플레이는 현재까지 매우 소극적인 투자 스탠스를 보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6년까지 4조1000억원을 투자해 8.6세대 라인을 꾸리기로 했다. 중국 BOE는 지난해 11월 관련 시설 투자에 약 1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오랜 적자로 곳간 사정이 빠듯한 LG디스플레이는 8세대급 투자 검토 중 이를 접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8.6세대 OLED 투자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애플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LG디스플레이가 처한 딜레마다. LG디스플레이는 2023년 3분기 기준 1조2100억원가량 장기 선수금을 잡았다. 시장에서는 선수금의 대부분이 애플로부터 나왔을 것으로 본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공동 투자 등의 명목으로 조 단위 선수금을 밀어준 애플 입장에서 수율은커녕 설비 투자에도 소극적인 LG디스플레이가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수율 전문가이자 ‘애플통’으로 꼽히는 정철동 사장이 구원 투수로 투입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런 이유로 증권가에서는 분기 영업이익 흑자전환에도 불구하고 LG디스플레이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 올 1분기 계절적 비수기와 스마트폰 업체 재고 조정 영향으로 다시 적자전환이 유력하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4분기와 달리 올 1분기 다시 실적 부진이 예상되는 만큼 보수적인 투자가 바람직하다”고 귀띔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5호 (2024.01.31~2024.0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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