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호수의 귀환, 그 장면 직접 보시죠

백종인 2024. 1. 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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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고 기괴한 세계적 자연유산 캘리포니아 데스벨리

[백종인 기자]

▲ 멘리호수로 변신한 배드워터 분지 잔잔한 물결 위로 높이 솟은 산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게다가 저물어 가는 태양까지 비추고 있어 어디가 호수이고 어디가 소금밭인지 분간하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 백종인
 15만 년 전, 빙하기라 불리는 시대 데스벨리에는 깊이 200m의 광대한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호수는 뜨거운 날씨에 건조되어 소금밭으로 변했으나 아주 드물게 발생하곤 하는 폭우로 고대 호수의 잔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호수가 나타나면 그 호수를 멘리호수(Lake Manly)라 부르고, 호수의 물이 말라붙어 소금밭이 되면 배드워터 분지(Badwater Basin)라 부른다.

1849년 캘리포니아의 금을 찾아 먼 길을 떠난 이주자들은 데스벨리에서 길을 잃었는데, 목마른 이주자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하얀 들판을 보고 힘겹게 다가갔으나 물이 아닌 소금임을 깨닫자 허탈감으로 '배드워터'라 불렀다고 한다. 멘리호수라는 명칭은 이들을 구조한 윌리엄 멘리의 이름에서 명명된 것이다.

2023년 8월 20일, 캘리포니아에서는 아주 드물게 열대성 폭풍 힐러리가 찾아와 데스벨리에 일 년 강수량보다 많은 5.6cm의 비를 퍼부었다. 그 비는 바위만으로 이루어진 협곡을 타고 내려와 거대한 바위산 사이 해발 85m 아래에 위치한 배드워터 분지에 고였고, 강이나 바다로 빠져나갈 수 없는 물은 그대로 호수가 되었다. 폭우가 쏟아진 뒤 24시간 만에 소금밭 배드워터 분지는 고대의 멘리호수로 변모했다. 
 
▲ 배드워터 분지 물이 있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배드워터 분지는 옅은 비취색을 띠고 있다
ⓒ 백종인
 지난 1월 18일, 데스벨리의 호수가 보고 싶어 엘에이에서 자동차로 5시간 이상 가야 하는 길을 나섰다. 여러 도로 사정으로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여 급한 마음으로 처음 찾은 곳은 배드워터 분지를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단테스 피크(Dante's Peak)였다. 과연 단테스 피크에서 내려다본 배드워터 분지는 예전의 소금밭이 아니었다. 물이 있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호수는 옅은 비취색을 띠고 있었다.
 
▲ 황량한 환경에 둘러싸인 멘리호수 산과 호수 사이의 하얀 경계선은 바다보다 염분 농도가 4배나 높은 호수물이 해안을 따라 마르면서 소금 띠를 이룬 것이다
ⓒ 백종인
 이튿날 오후, 직접 찾아간 배드워터 분지는 잔잔한 물결 위로 높이 솟은 산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게다가 저물어 가는 태양까지 비추고 있어 어디가 호수이고 어디가 소금밭인지 분간하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건너편 산과 호수 사이에는 하얀 경계선이 뚜렷이 보였는데, 이는 바다보다 염분 농도가 4배나 높은 호수의 소금물이 해안을 따라 마르면서 소금 띠를 이룬 것이었다. 황량하고 황량한 환경에 둘러싸인 멘리호수가 연출한 풍광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모습 자체였다. 

현재 멘리호수의 깊이는 5~6cm에 불과하나, 크기는 폭 3km, 길이 7km 정도로 광활하다. 호수의 물은 빠르게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있어 3월이 되면 다시 배드워터 분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데블스 골프코스 성벽처럼 보이는 갈색의 산만 없다면 영락없이 함박눈이 쌓인 들판이다
ⓒ 백종인
 배드워터 분지에서 호수의 경이로움에 간과되었던 소금밭은 사실 직전에 방문했던 데블스 골프코스(Devil's Golf Course)에서 이미 만끽했다. 너무나도 험한 코스라 악마들만이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이곳은 하얀 눈이 얼어붙은 눈밭으로 보였다.

지난해 평소보다 많이 내린 비 덕분에 이미 소금과 뭉쳐진 흙덩이 위에 다시 하얀 소금이 두껍게 쌓여 성벽처럼 보이는 갈색의 산만 없다면 영락없이 함박눈이 쌓인 들판이었다. 배드워터 분지의 소금밭이 녹기 시작한 질펀한 눈밭이라면 이곳은 쌓인 눈이 차가운 공기로 얼어붙은 딱딱하고 미끄러운 눈밭이라고나 할까.

데스벨리의 경관은 일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고 독특하다 못해 기괴하다. 멀리서 보면 강물처럼 보이는 반짝이는 그러나 황량한 소금밭, 뼈만 남은 벌거벗은 몸에 색색깔의 띠 문신을 새긴 듯한 높은 바위산, 움직이는 모래 언덕, 뒤틀린 협곡, 화산이 폭발했던 화산구 등 자동차가 아닌 우주선을 타고 몇 시간 만에 다른 행성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해발 85m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고 해발 3,366m 위로 오를 수도 있다. 인간의 힘이 닿을 수 없는 자연환경이기에 언제 찾아와도 거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 쟈브리스키 포인트 전경 노란색과 갈색, 그리고 붉고 검은색이 조화롭게 어울린 높고 낮은 언덕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데스밸리 바닥을 덮고 있는 소금 평야와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파나민트(Panamint) 산맥이 보인다
ⓒ 백종인
 2박 3일의 일정은 예전에 비해 여유로웠다. 첫날 단테스 피크에서 배드워터 분지의 호수를 확인하고 석양이 최고라는 쟈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로 급히 이동했으나 아쉽게도 흐린 날씨로 붉은 석양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400m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서니 노란색과 갈색, 그리고 붉고 검은색이 조화롭게 어울린 높고 낮은 언덕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데스밸리 바닥을 덮고 있는 소금 평야와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파나민트(Panamint) 산맥이 보이는 등 황무지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 골든캐넌 골든캐넌 트레일 입구에 들어서면 바위로 이루어진 성안에 갇힌 느낌이다
ⓒ 백종인
 둘째 날 오전에 오른 약 8.5km의 골든캐넌-가워걸치(Golden Caynon-Gower Gulch) 루프 트레일은 쟈브리스키 포인트에서 본 언덕의 뒤편을 두 발로 걷는 코스였다. 트레일 입구에 들어서자, 바위로 이루어진 성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벌거숭이 산이었으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붉은 바위 성과 각양각색의 바위 언덕과 봉우리에 넋을 잃었다. 그 바위 사이와 바위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길 또한 때로는 널찍하게 때로는 좁고 아슬아슬하게 조성되어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아티스트 팔레트 퇴적된 화산재와 여러 광물질이 오랜 세월 열과 물로 산화되고 변형되어 만들어 낸 자연의 예술품이다
ⓒ 백종인
 데스벨리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코스 중 하나는 아티스트 드라이브와 그 길에 있는 아티스트 팔레트(Artist Palette)다.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듯이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을 짜 놓은 것 같은 자연의 팔레트다. 퇴적된 화산재와 여러 광물질이 오랜 세월 열과 물로 산화되고 변형되어 만들어 낸 자연의 예술품인 셈이다. 그 오묘한 색감의 절정을 이룬 곳이 아티스트 팔레트다.
 
▲ 메스키트 플랫 샌드 듄스 이른 새벽 서서히 밝아지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래 언덕의 파노라마
ⓒ 백종인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 부지런히 찾아간 곳은 메스키트 플랫 샌드 듄스(Mesquite Flat Sand Dunes)였다. 기대했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보지 못하였으나 서서히 밝아지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래 언덕의 파노라마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발목까지 쑥쑥 빠지는 모래 언덕에 올라서면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바람이 만든 모래 물결을 발자국으로 흩트리며 몇 개의 모래 언덕을 오르내렸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고독하고 낯설어 <스타워즈>의 촬영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 우베히베 분화구 300년 전 화산이 폭발했던 자리
ⓒ 백종인
 데스벨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 중심지에서 멀리 있고 내려갔다 오르기가 너무 벅차 주로 마지막 여정이 되는 곳은 화산이 폭발했던 분화구인 우베히베 분화구(Ubehebe Crater)이다. 불과 300년 전에 만들어졌다 하니 데스밸리에서는 어린아이보다 더 어린 신생아인 셈이다.
반경 200m에 깊이가 150m인 엄청난 규모지만, 앞서 방문했던 두 번 모두 바닥까지 내려갔으니 스틱까지 준비해 온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뜻밖의 선물도 만났다. 평년보다 많이 내렸던 지난해의 비로 내려가는 길목과 화산구 밑바닥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녹색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야생화도 곳곳에 보였다.
 
▲ 우베히베 분화구 바닥의 모습 우베히베 분화구 바닥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나무들
ⓒ 백종인
 일반 세상과 동떨어진 독특하고 황량한 곳에 있어서인지 2박 3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고속도로의 차량과 빌딩이 낯설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불과 얼마 전의 그곳이 먼 옛 추억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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