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정부 "국민 분열 심화 우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하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재의 요구를 시작으로 임기 중 9번째 거부권 행사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가결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피해자 보상대책과 함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정부와 여당은 '참사의 정쟁화'를 거부 이유로 들었고, 야당은 “유가족을 외면했다”고 반발했다.
재의요구안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날 오전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한 총리는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경찰에서 500명이 넘는 인원으로 특별수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국회 국정조사도 성실히 임했다”며 진상규명 노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총리는 “특조위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위원회를 구성하는 11명의 위원을 임명하는 절차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검·경 수사결과에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근거 없이 특조위를 설치하는 것은 자칫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법안에 따르면 특조위는 법원의 영장 없는 동행명령과 단순 자료제출 요구 거부에도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11명의 특조위원 구성은 여당(4명), 야당(4명), 국회의장(3명)이 추천하게 돼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향후 2년간 특조위 인건비로 96억원이 소요될 것이라 추산하고 있다.
국무회의가 열리는 시간 윤 대통령은 판교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 참석했고, 이날 오후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별도의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거부권 행사와 동시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종합 지원 대책을 발표하며 거부권의 파장을 최소화하려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법안의 위헌적 내용이 문제일 뿐,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의지”라고 말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국무회의 직후 피해지원 종합대책 브리핑을 통해 ▶총리실 산하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 설치 ▶민·형사 확정판결 전 조기 배상 ▶영구 추모시설 건립 ▶지원금 확대 등의 대책을 공개했다. 방 실장은 “정부는 일관되게 정쟁 대신 실질을 지향해 왔다. 그것이 변치 않은 충심”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SNS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특별법 거부 서명은 대한민국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각자도생 사회라는 공식 선포다”며 “비정하고 비상식적인 정권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오후 시청 앞에 마련된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만난 뒤 “윤 대통령은 유가족 손을 한 번도 잡지 않고, 기어코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참 비정하다”며 “유감을 넘어 분노한다. 차라리 진실을 숨기고 책임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당일 112신고 녹취록 전문을 국민께 낱낱이 공개하라고 지시한 것이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중진 의원도 “수백억 원의 예산을 쓴 세월호 특조위가 새로 밝혀낸 것은 무엇이 있었느냐”며 “이태원 참사 특조위도 야당 운동권 인사들의 일자리 특별법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4월 총선이 임박한 시기에 재표결에 부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최소 2월 말쯤은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재의요구한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법률로 공포된다.
박태인·김정재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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