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독립운동의 역사가 서려 있는 안일암
[정만진 기자]
▲ 조선국권회복단 창립지 대구 앞산 안일암 |
ⓒ 정만진 |
문화유산은 조선 시대 목조 석가여래좌상(대구시 유형문화재) 두 점과 신라시대 3층석탑(대구시 문화재자료)이 있다. 석가여래좌상은 안지랑골 안일암과 큰골 은적사에 각각 있고, 3층석탑은 고산골 법장사에 있다.
답사여행은 자연유산, 역사유산, 문화유산을 찾아서
역사유산으로는 927년 고려 태조 왕건이 동수대전 대패 후 후백제 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지냈던 안지랑골 안일사(왕굴)와 큰골 은적사(왕굴)가 있다. 안일사는 1915년 2월 28일 항일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이 결성되었던 독립운동 유적지이기도 하다.
▲ 조선국권회복단 창립 주역 중 한 사람인 이시영 순국 기념탑(앞산 큰골 소재) |
ⓒ 정만진 |
1915년 2월 28일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신상태, 남형우, 김재열, 홍주일, 박영모, 이영국, 김규, 정순영, 서병룡, 황병기 등 13인의 대구 청년들이 안일암에서 회동을 가졌다. 그들은 일제의 감시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시회(詩會)를 가장해 모였다.
당연히 시를 짓는 사람은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오랜 회의 끝에 부서별 책임자를 정했다. 외교부장 서상일, 교통부장 이시영과 박영모, 기밀부장 홍주일, 문서부장 이영국과 서병룡, 권유부장 김규, 유세부장 정순영, 결사부장 황병기가 선임되었다.
시회를 가장하고 모여 항일비밀결사 창립
▲ 조선국권회복단을 결성하기 위해 사전 비밀 모임을 가졌던 첨운재(윤상태 별서, 앞산 달비골 소재)와 통령 윤상태 지사 |
ⓒ 정만진 |
결성 행사는 수천 년 역사의 자랑스러운 나라를 한일병합으로 망하게 만들었다는 부끄러움을 단군 태황조(太皇祖)께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충격과, 놈들의 잔인무도한 무단정치에 짓눌려 우리 민족이 강력한 독립운동을 펼치려는 마음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결의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 다섯 항에 이르는 맹서에 서약도 했다.
첫째, 우리는 한국의 국권 회복에 앞장선다!
둘째, 매년 정월 15일 단군의 위패 앞에서 목적 수행을 위해 기도한다!
셋째, 단원은 결코 이 결사항일조직을 탈퇴하지 않는다!
넷째, 단원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만약 이를 위반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이 내리는 벌을 받을 것이다!
다섯째, 결사대를 조직해 일제와 친일 반민족 주구들을 살육한다!
창립을 마친 단원들은 각각 큰돈을 내놓아 그것을 상해임시정부와 만주로 보냈다. 회원 추가 모집과 모금 활동에도 나섰다. 회원들이 독립운동자금을 내놓는 행동도 훌륭한 일이지만 우리 민족 구성원들 다수가 십시일반 마음과 힘을 보태도록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는 판단에서였다.
창단 반 년 만인 8월 25일에는 경북 영주 풍기광복단 등 다른 여러 단체들과 합세해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단체(제5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 광복회도 결성했다.
1915년 8월 25일 광복회 결성으로 확대 개편
조선국권회복단은 김재열, 정순영, 이시영, 변상태, 정운일, 홍주일, 황병기, 박상진 등 강성 단원들을 광복회 지도부에 결합시켜 두 갈래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16년 5월 악명 높은 전라도 친일부호 서도현을 처단하고, 9월 4일 대구 부호 서우순의 집을 습격했다.
▲ 927년 왕건이 숨어 있었던 왕굴(안일암 뒤 앞산 정상부 턱밑) |
ⓒ 정만진 |
안일암 대웅전 오른쪽 앞에 조선국권회복단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설명문을 읽은 후 법당에 들어 참배한다. 불교신자가 아니므로 부처님께 빌 일은 없지만, 1915년 2월 28일 이 자리에 모여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했던 지사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다.
절을 한 다음 불상을 자세히 바라본다.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좌상이다. 문화재청 공식 설명에 따르면,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상호나 착의법 등에서 17세기 후반 목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복장유물에 들어 있는 유물) 중 '석가모니불 조성기'에 의하면 조각승 탁밀, 보웅 등에 의하여 1694년(숙종 20)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조각승, 제작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시대 불상 조성의 흐름과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 왕굴 가는 중에 만나는 거대한 돌탑 |
ⓒ 정만진 |
대구 앞산 안일암 답사의 마지막 여정은 왕건이 숨어 지냈던 왕굴을 찾는 일이다. 안일암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줄곧 직진하면 닿는다. 여기서 '오솔길'과 '직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오르던 중 왼쪽에 나타나는 돌길 계단으로 가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로 가면 전망대가 있고, 더 오르면 케이블카 승하차장이 나온다.
왕굴에 들어가서 쭈그리고 앉아 본다. '쭈구리고' 앉는 것은 높이가 얕아서 바로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깊이도 구석에 따르 약간 차이가 나지만 3-5m밖에 안 된다. 이런 곳에 한 나라의 왕이 숨을 죽이고 은신해 있었다니, 생각할수록 놀랍다.
어려움 극복법을 알려주는 왕굴의 역사성
사람이 살다보면 흔히 역경과 마주치게 된다. 대구 앞산 왕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인성교육 현장이 아닐까 싶다. 어렵고 고독할 때 대구 앞산 왕굴을 한번 찾아보십사 소개드린다. 임금도 곤욕을 참고 견뎠는데 보통 사람인 내가 어찌 이만한 어려움도 참지 못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1936년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 현진건은 <희생화><고향><신문지와 철창>에 대구를 언급했을 만큼 고향 대구를 사랑했습니다. 현진건을 연구하고 현창하기 위해 활동하는 현진건학교는 그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매주 토요일 대구여행을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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