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지만 결혼식은 가고 싶은 빌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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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현 기자]
며칠 전 청첩장을 받았다. 한때 함께 근무했던 직장동료의 결혼식이었다. 웨딩홀은 집에서 30분 거리였다. 축하와 덕담을 건네고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될 터였다. 그런데 청첩장을 받는 순간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고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대를 했는데 가는 게 도리겠지?'
'부조는 얼마나 하지? 요즘 4인 가족에 10만 원 내면 민폐라던데.'
'그냥 혼자 갈까?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도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할 텐데.'
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생활비가 이중으로 나간다. 평소보다 소비에 더 민감한 상황이라 발걸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1월 들어 경조사만 벌써 세 번째다. 평소 인간관계를 꽤나 중요시한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만 원에 휘청대는 모습이라니.
그래, 결심했다. 거리 두기가 한창인 코로나 때도 보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든 만났었는데, 좋은 일은 얼굴을 보고 축하를 해줘야지. 아내도 직장 동료들을 대부분 안다. 비 오는 주말 내내 놀고 싶다며 칭얼대는 아이들을 데리고 웨딩홀로 향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돌잔치 이후로 몇 년 만에 만난 동료의 자녀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팀원들은 대부분 4인 가족인데, 구성원 모두가 참석한 가정은 우리뿐이었다. 나와는 달리 2명(부모 1, 아이 1)만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조금 봉투에 이름 석자를 쓰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혼자서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아마 10만 원을 내겠지?'
2인 가족과 4인 가족이 같은 금액을 내는 상황이 뭔가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졌다.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에 비해 내가 준비한 부조금이 왠지 초라해 보였다.
▲ 부담이 아닌 축하하는 마음으로 결혼식에 가고 싶다. |
ⓒ 픽사베이 |
10년 전 4월 내 결혼식이 있었다.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 근처에 모여있던 친구들에게 까지 인사를 마치고 나니 늦은 밤이었다. 아내와 함께 하객들의 명단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부조금의 액수는 크게 3종류였다. 3만 원, 5만 원, 10만 원.
지금은 거의 없지만 당시만 해도 3만 원 봉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부조금이 내 주머니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금액의 크기와 상관없이 마음을 담아 축하해 준 지인들이 마음이 느껴졌다.
하객 중에는 당시 재학 중이던, 아마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 후배들도 있었다. 그들은 2명이서 한 봉투에 5만 원을 넣어 주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6살 이상 나는 어린 동생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당시 5만 원이면 대학생이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큰돈이었다.
교회 동생들은 그런 것(?) 도 없었다. 우르르 몰려와서 축하를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식사를 했다. 부조금은 예식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통행료라고 할 수 있다.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결혼식장에 프리패스로 입장했지만,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마음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사전에 따로 봉투를 준비해야 하는 하객들도 있었다.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교통비 정도는 따로 챙겨주는 것이 기본적인 배려이기 때문이다. 사실 장거리 결혼식은 몸이 아닌 돈만 오가는 게 서로에게 효율적이다. 불필요한 시간과 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비효율적인 선택을 해준 그들을 잊지 못한다. 이동시간만 한나절이 넘게 걸리는데, 1시간 남짓한 결혼식을 위해 먼 길을 한걸음에 와준 사람들. 그들의 진심 어린 축하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때와 다른 지금
내가 결혼했던 웨딩홀의 식대는 1인당 3만 원이었다. 별도 대관료는 없었다. 요즘은 수도권 기준 웨딩홀 식대가 인당 6만 원 정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청첩장을 받더라도 부조만 전달하거나, 예식에 참여하더라도 식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앞으로 내 인생에 경조사는 없다고 커밍아웃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인 압박을 받을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1년이면 최소 수십 만 원은 절약할 수 있을 터이니, 고물가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결혼식' 하면 떠오르는 느낌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새로운 가정과 함께하는 제2의 행복한 인생이 아닌, 대학-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인생 정규 과정'을 밟는 느낌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가족의 형태가 변하고,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면서 결혼식에 대한 시선이 빠르게 변함을 느낀다.
열일 제쳐두고 지인의 결혼식에 참여해 함께 축하해 주는 모습도 줄어들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참석하지 않는다. 약간의 찝찝함과 의무감에 부조금만 전달하거나 그마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할 때는 관계 자체를 정리하기도 한다.
▲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마음만은 진심입니다. |
ⓒ 픽사베이 |
이 와중에 지인에게 돌잔치 초대를 또 받았다. 한 달 만에 4번의 경조사라니, 가정 경제에 적신호가 켜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마음을 담아 축하를 해줄 생각이다.
팍팍한 현실이지만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넉넉한 마음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싶다. 눈에 보이는 선물도 좋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 또한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받았던 수많은 마음들이 그러했듯이.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개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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