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 시대, 소득 보장이 필요한 이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기자말>
[성찰과성장]
▲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
ⓒ 성찰과성장 |
고상한 일에 시간 쓸 여유
▲ ▲ 생계 노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도 공동선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
ⓒ 성찰과성장 |
성찰과성장은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새로운 경제체제 구상에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생계를 위해 온종일 일하고 주말에는 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사회(공동선)를 위해 논의하고 고민해보자는 권유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서는 이러한 제안이 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한 외침으로 여겨질 수 있다. 생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공동선에 대한 고민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생계 걱정이 해소되어야만,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위한 고민을 할 여유가 생긴다.
실제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나 주민자치회 참여자를 보면 상대적으로 개인 시간이 많은 가정주부나 은퇴한 장년이 많으며 생활 전선에 있는 청년이나 중년 남성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전국 960개 주민자치회 위원의 평균 연령은 58세이며, 20대 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자치회는 839개, 무려 87%(!)에 이른다(2021 이은주 의원).
지난 23년 11월,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경제 침체 국면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힘들었던 것 같지만, 질적, 양적 데이터는 우리나라의 엄청난 성장을 입증했다(2021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그런데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이제 경제 '둔화'를 넘어 경제 '침체'에 들어섰다고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3년 3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 기준 1분위(하위 20%)의 소득은 전년동기대비 감소하였으며, 2~3분위의 소득은 증가하였으나 소득증가율이 물가 상승률(3.1%)을 밑돌았다. 이는 가계소득 하위 60%의 실질소득이 감소하였음을 의미한다.
▲ ▲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의 만남이 필요하다. |
ⓒ ⓒ성찰과성장 |
공화주의는 공허한 이상이 아니다. 우리 삶에 맞닿을 때 공동체의 운영 원칙으로서 힘이 생긴다. 이 원칙을 현실화시키는 힘은 다양한 계층 간의 만남과 대화에서 나온다. 이러한 계층은 기득권층 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상에서 분투하는 직장인, 자영업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장애인, 여성, 노인, 아동, 이민자, 저소득층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계층이 어떻게 만날 수 있냐고? 방법은 간단하다. 이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건을 만들어 주면 된다.
하지만 재정적 부담이 덜한 부유층과 달리 소시민에게는 재정적 지원이 필수다. 구성원이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재정적 자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경제적 여유를 통해 시간적 여유까지 함께 제공함으로써, 공동선을 향한 참여와 이바지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적 노동을 인정하는 참여소득 그리고 그 너머를 상상하며
사회 기여를 위한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참여소득'이다. 기본소득이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하여 사회적 최저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라면, 참여소득은 교육 참여, 봉사, 돌봄, 직업 훈련과 같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1990년대 영국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Anthony Barnes Atkinson)이 처음 제안한 참여소득은 사회적 기여와 의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록 금액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참여소득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공동선을 위한 회의 참여 시 지급되는 회의참석비(예: 청년네트워크, 주민자치회, 참여예산위원)이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월 30만 원 정도의 '훈련 장려금'과 훈련비가 지급된다.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는 최대 20만 원의 가정양육수당과 최대 70만 원의 부모급여가 제공된다. 사회적 기업・마을기업・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각종 지원금,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공공일자리도 역시 참여소득의 일환이다.
참여소득 제도는 시민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공동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 단계에서 참여소득은 여전히 보조적인 수입원에 불과하다. 마치 봉사활동을 하고 소정의 교통비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 ▲ 부유층과 빈곤층의 투표 참여 의향은 3배에 달한다. |
ⓒ 성찰과성장 |
2018년 한겨레 신문의 지방선거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상황에 따른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 간 투표 의향 차이를 살펴보니 최대 3배 격차를 보였다. 이는 경제적 여유가 정치 참여도에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해당 조사는 투표율 향상의 장애물로 주거 불안정성과 경제적 불평등을 지목했다. 경제적 여건이 열악할수록 선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지역 사회 내 네트워크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17대부터 21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한 손낙구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통해 부유한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 ▲ 각자도생 사회에도 희망은 있다. |
ⓒ 성찰과성장 |
과도한 경쟁, 불안정한 노동 시장, 예고된 장기 경제 불황,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적이지도, 공화적이지도 않은 각자도생 사회로 무너지는 걸 경험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노동 시장의 변혁을 몸소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침체와 함께 고용 축소라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글 작성 및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참고자료
-이상준, "한국은 이미 참여소득 강국, 그러나…", 프레시안, 2020.12.02.
-이상민, "2023년 윤 정부 재정위기…'눈 떠보니 후진국'", 한겨레, 23. 11. 5.
-정의정책연구소, "참여소득, 기본소득으로의 단계인가 사회적 경제의 실현인가", 2020. 12. 01.
-이은주, 전국 주민자치회 현황 전수 조사, 2021
-통계청, '2023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2023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성찰과성장', '캠페인즈'에 함께 송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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