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마중 나오는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
홍기표 2024. 1. 30. 14:12
[홍기표 기자]
겨울의 태국은 내 기억 한켠에 남아 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나무마다 잎은 조금 말라 있었고 공기가 품고 있던 습함과 특유의 냄새는 없었다. 그러하기에 카오야이(Khao Yai) 국립 공원을 거닐었을 때, 땡볕에 흠뻑 젖는 대신에 선선한 가을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 카오야이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저멀리까지 맑게 환히 보인다. |
ⓒ 홍기표 |
카오야이 공원은 1962년에 개장한 태국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2005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평방 2167km다. 그야말로 광활하다. 그 안에는 식물 3천여 종, 포유류 60여 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위키디피아). 방콕에서 차로 3시간 가량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다.
공원 입구에는 군복을 입은 남자가 매표를 하고 있었다. 영어와 현지어로 쓰인 가격표가 있는데, 외국인의 가격에는 '0'이 하나 더 붙는다.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 가격이 한 사람 당 한국 돈으로 1만5천 원 정도라 크게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다. 매표소로부터 20여 분 들어가니 국립공원 센터가 나왔다.
▲ 카오야이 공원 센터에서 마주친 원숭이 |
ⓒ 홍기표 |
주차 구역에는 원숭이들이 빨간 엉덩이를 내밀며 무심하게 들어오는 차를 바라보았다. 원숭이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익숙한 듯 그저 훌쩍 나무에 오르거나 차 지붕을 놀이터 삼아 논다. 안내판에 원숭이의 공격을 조심하라는 문구에 스스로 거리를 두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화장실에 가니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원숭이가 많이 날뛰기도 하나보다. 혹성탈출처럼 무리지어 사람을 공격하거나 괴롭히는 상상을 했는데, 평온한 주변 모습을 보니 별로 현실성이 없는 것 같았다. 공원 안에는 식당이 별로 없는데 그 이유가 원숭이 때문일 거라고 추측해 본다.
국립공원은 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코스가 있었다. 그중 4여 개의 폭포가 유명해보였고, 최근 인스타그램의 성지로 불리는 곳도 있었다. 작은 호수 주변으로 울창한 숲이 뒤를 받치고 있다. 그곳에서 차로 오며가며 근사하게 차려입은 현지인들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작은 폭포와 코끼리들이 가끔 물을 마시러 온다는 호수가 있는 '코끼리 전망대'에 들렀다. 모두 차로 이동한 다음 주차를 하고, 20여 분 정도 걸어가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혹시나 코끼리나 야생동물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 카오야이 나이트 사파리. 해가 지면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사슴, 여우, 호저 등 야생동물을 볼 수 있지만, 쉽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
ⓒ 홍기표 |
이곳에 사는 야생동물은 야행성이 많은지 야간에 차량을 타면서 플래시를 비추는 나이트 사파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사파리가 시작하는 저녁 7시가 되자 공원 센터는 우리나라로 따지만 수련회에 온 것 같은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영어를 쓰는 거 보니 인근의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같았다. 설렘과 기대로 흥이 한껏 오른 아이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우리도 차 한 대에 올랐다.
차는 레인저 차량을 개조해 승객용으로 만든 거였다. 가이드로 보이는 현지 여성이 올라 타 플래쉬를 잡았다. 차가 출발하고 플래시로 공원 구석구석을 비추며 동물을 찾았다. 동물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약 1시간 가량 차가 이동하는데, 사슴 몇 마리와 여우 그리고 부엉이로 보이는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차는 공원을 돌아 센터로 다시 도착했는데 그때 신기하게 생긴 왕도마뱀이 어슬렁 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 나이트 사파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만난 호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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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깜깜한 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가는 중 갑자기 호저 두 마리가 앞에 나타났다. 급정거를 했고 두 녀석은 놀랐는지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러다가 곧 한 마리는 앞으로 가고, 남은 녀석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왔던 길을 돌아간 녀석은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등에 있는 가시를 곧추세우고는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모양새로 서 있었다. 놀라운 우연이었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 보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달래던 중이었는데 잊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되어 기뻤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자연 그 자체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상복을 입고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혼자 또는 여럿이 묵묵히 걸었다. 하루종일 걷는 것 같았다. 자연이 품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곳까지 와서 걷고 있을까. 각자의 사연이 그렇게 광활한 자연 속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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