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비례의 원칙 벗어난 마약 피고인 휴대전화 몰수 위법"

최석진 2024. 1. 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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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연관성 등을 고려할 때 비례의 원칙에 반해 범죄에 직접 사용되지 않은 마약 피고인의 휴대전화를 몰수하라고 판결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몰래카메라 촬영 등 범죄에서처럼 휴대전화가 직접 범행도구로 사용된 것이 아닌 데다가, 이미 휴대전화 통화기록이나 문자메시지 등 범죄 입증에 필요한 증거가 다 확보돼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한 상태에서 굳이 휴대전화를 몰수할 필요가 없는 반면, 몰수로 인해 피고인이 입게 될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면 비례의 원칙상 몰수가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대마와 필로폰을 수수하거나 흡연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기소된 박모씨(40)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휴대전화 몰수와 40만원의 추징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휴대전화가 형법 제48조 1항 1호의 '범죄행위에 제공한 물건'에 해당된다고 봐 몰수를 명한 제1심 판결을 유지한 원심의 판단에는 비례의 원칙을 비롯한 몰수의 실질적 요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라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박씨는 2020년 3월 대마를, 같은 해 6월 필로폰을 A씨로부터 공짜로 받아 각각 흡연·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법원은 박씨에게 징역 1년과 40만원의 추징 명령과 함께 박씨가 A씨와 연락할 때 사용한 아이폰 1대의 몰수를 명령했다.

박씨는 형이 무겁다고 항소하면서 "범행에 직접 제공하거나 사용한 물건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휴대전화 몰수 명령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범행 수행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물건"이라며 1심 법원의 휴대전화 몰수 명령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몰수의 대상을 규정한 형법 제48조 1항은 '범인 외의 자의 소유에 속하지 아니하거나 범죄 후 범인 외의 자가 사정을 알면서 취득한 다음 각 호의 물건은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라면서 ▲범죄행위에 제공하였거나 제공하려고 한 물건(1호)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겼거나 취득한 물건(2호) ▲제1호 또는 제2호의 대가로 취득한 물건을 몰수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정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박씨가 마약 제공자 A씨와 통화한 휴대전화를 형법 제48조 1항 1호의 '범죄행위에 제공한 물건'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형법 제48조 1항 1호의 '범죄행위에 제공한 물건'이라 함은, 가령 살인행위에 사용한 칼 등 범죄의 실행행위 자체에 사용한 물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실행행위의 착수 전의 행위 또는 실행행위의 종료 후의 행위에 사용한 물건이더라도 그것이 범죄행위의 수행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인정되는 한 위 법조 소정의 제공된 물건에 포함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즉 휴대전화가 직접 마약 범죄에 사용된 도구는 아니더라도, 마약 제공자인 A씨와의 연락수단이 된 만큼 범행에 기여한 물건으로서 몰수 대상이 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씨가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메신저로 A씨에게 '우편으로 대마를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수차례 보내고, 대마를 수수하기 전날 A씨로부터 '대마를 보냈다'는 메시지를 수신한 점 ▲필로폰을 수수하기 직전 휴대전화로 A씨와 통화를 한 점 등을 근거로 들며 "이 사건 휴대전화는 공소사실 범행 수행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 물건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박씨의 '양형부당'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고 박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몰수는 임의적인 것이어서 그 요건에 해당되더라도 실제로 이를 몰수할 것인지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맡겨져 있지만 형벌 일반에 적용되는 비례의 원칙에 따른 제한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몰수 대상 물건이 범죄 실행에 사용된 정도와 범위 및 범행에서의 중요성 ▲물건의 소유자가 범죄 실행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책임의 정도 ▲범죄 실행으로 인한 법익 침해의 정도 ▲범죄 실행의 동기 ▲범죄로 얻은 수익 ▲물건 중 범죄 실행과 관련된 부분의 별도 분리 가능성 ▲물건의 실질적 가치와 범죄와의 상관성 및 균형성 ▲물건이 행위자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인지 여부 ▲몰수되지 않을 경우 행위자가 그 물건을 이용해 다시 동종 범죄를 실행할 위험성 유무 및 그 정도 등을 몰수가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휴대전화는 비록 최초 압수 당시에는 몰수 요건에 형식적으로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후 수사 및 재판 진행 경과와 이를 통해 밝혀진 사실관계에 비춰 이 사건 범죄 수행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밝혀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피고인이 할머니 명의로 전화를 개통한 경위는 과거 형사처벌 전력 때문에 형 집행 과정에서 신용불량자가 돼 자기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없었기 때문인 점 ▲피고인이 범죄사실과 관련해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은 A씨와 문자메시지를 몇 차례 주고받은 것과, 한 차례 통화한 것이 전부이므로 마약 등의 수수 및 흡연(투약)을 본질로 하는 이 사건 범죄의 실행행위 자체 또는 범행의 직접적 도구로 사용된 것은 아닌 점 ▲피고인이 범행이나 신분 등을 은폐하기 위한 부정한 목적으로 타인 명의로 개통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범죄와의 상관성이 매우 낮은 편이어서, 이를 몰수하지 않으면 다시 이를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범행의 목적·수단·도구로 이용해 동종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나 위험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이 사건 휴대전화 압수 조치는 범죄사실의 각 범행일시 특정을 위해 문자메시지와 통화내역 등에 관한 확인이 필요해 이뤄진 것으로 보이나,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있어 압수를 계속할 필요성이 보이지 않고, 동종 범행 예방 차원에서 피고인의 점유 내지 소유권을 박탈할 필요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점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아내와 딸과 휴대전화로 중국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취하는 것으로 보여, 이 사건 휴대전화는 단순히 금전적·경제적 가치를 넘어 피고인이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자, 연락처·금융거래 및 각종 계정 등 다수의 개인정보와 전자정보가 저장된 장치로서 피고인에게는 일상생활과 경제활동 등에 필수불가결한 물건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나아가 이 사건 범죄 실행에 사용된 정도·범위·횟수·중요성 등 범죄와의 상관성·관련성에 비춰, 범죄와 무관한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 인격적 법익에 관한 모든 것이 저장돼 있는 사적 정보저장매체로서의 이 사건 휴대전화가 갖는 인격적 가치·기능이 이를 현저히 초과한다고 볼 수 있어, 몰수로 인해 피고인에게 미치는 불이익의 정도가 지나치게 큰 편이라는 점에서도 비례의 원칙상 몰수가 제한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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