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와 결혼했다"던 그녀, "실수는 곧 죽음…고객 니즈 살펴라"

강희종 2024. 1. 3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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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BNW 부사장 인터뷰
삼성서 첫 여성엔지니어 부사장
배터리 글로벌 1위 달성 공로
"중국은 만만한 상대 아냐…
지금은 가격경쟁력 중요해진 시점"

"이차전지 시장에서 실수는 곧 죽음입니다. 굉장히 터프한 산업이죠."

지난 23일 기자가 만난 김유미 BNW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한국 배터리 업계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삼성SDI 재직 시절이던 2015년 여성 엔지니어로는 처음으로 삼성 그룹에서 부사장에 올랐다. 삼성SDI가 소형 배터리 분야 글로벌 1위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삼성에서 그는 '배터리와 결혼한 여자'로 통했다. 김 부사장과 배터리의 인연은 퇴직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현재 BNW에서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성장 잠재력이 있는 벤처 기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충남대학교 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1982년 한국화학연구소와 표준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1996년 삼성전관(현재 삼성SDI)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배터리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는 1991년 소니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처음 상용화한 이후 일본 기업들이 하나둘씩 관련 제품을 내놓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니켈수소 전지가 이차전지의 주류였고 리튬이온배터리는 태동 단계였다. 아직 시장에 뚜렷한 선두기업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기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전지는 어려운 사업이니까 하지 말라"고 뜯어말렸다. 잠재적 경쟁자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이 말은 사실이었다. 김 부사장은 배터리 시장에 대해 "실수하면 죽는다"는 섬뜩한 표현을 썼다.

실제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전지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기업들 중 현재까지 10위권 안에 남아 있는 기업은 파나소닉 한 곳밖에 없다. 소니는 노트북PC 발화 사고가 터지며 시장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했다. 배터리 산업의 주도권도 수시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넘어왔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언제든지 뒤처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일본, 중국 기업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 부사장은 특히 "중국 기업들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며 경계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의 엔지니어가 500명이 있다면 중국 기업들은 1만명이 있고 라인 개수도 10배, 100배나 많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기술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고객의 요구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삼성SDI가 2010년 세계 1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열정과 패기로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시장이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0년대를 전후해 정보통신(IT) 기기의 소형화, 모바일화가 급격히 진행됐고 시장에서는 고용량 배터리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에 삼성SDI는 1998년 당시 범용이었던 1400밀리암페어시(mAh)를 뛰어넘는 1650mAh 원통형 배터리를 최초로 선보였다. 이후 1년 만인 1999년 다시 1800mAh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면서 빠르게 선두 업체를 따라잡았다.

김 부사장은 "고용량 기술 개발과 함께 원통형, 각형, 폴리머 등 고객사들이 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개발해 주요 글로벌 기업들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며 소형 배터리 1위의 비결을 설명했다. 삼성SDI는 이후 니켈 함량을 늘려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하이니켈 배터리를 개발해 전동공구 분야로 시장을 넓혀 나갔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것과 관련, 김 부사장은 지금 배터리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각국 정부의 강력한 환경 규제와 보조금 정책이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다"며 "전기차 제조사 입장에서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배터리값을 내리는 게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요구에 맞춰 배터리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김 부사장은 "리튬이온 배터리는 제가 죽을 때까지는 안 없어질 것 같다"며 계속 시장의 주류로 남아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활물질을 계속 바꿔가며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라고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나 리튬금속 배터리도 결국 '리튬이온' 배터리라는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고속 성장하던 배터리 시장은 전기차 성장세가 주춤하며 부정적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큰 폭으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하지만 김 부사장은 "지금 전 세계는 넷제로(탄소중립)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2035년까지는 이차전지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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