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세뇌당한 아이들의 최후
[장혜령 기자]
▲ 영화 <클럽 제로> 스틸컷 |
ⓒ 판씨네마㈜ |
여러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최고급 기숙사 시설,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에 영양교사 미스 노백(미아 와시코브시카)이 임용된다. 요즘 유행인 의식적 식사법을 실천하고 있다. 음식을 강요하는 폭력과 식욕을 억제하는 통제를 스스로 알아내야 하며, 매일 대기업과 식품 업계의 돈벌이에 일조하는 먹는 행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스 노백은 교장에게 주말 근무도 괜찮다며 영양 지도에 헌신적인 태도를 보인다. 출신이나 경력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떨친 인플루언서로 알려졌다. 겉으로는 차분한 카리스마로 압도하다가도 한없이 따뜻한 마음씨가 차고 넘친다. 온화한 미소 속의 위험한 꿍꿍이가 도사리고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며칠 후 학생들이 식사법에 조금씩 적응하자 한 가지의 음식만 먹는 모노 다이어트(채식)로 단계를 높였고, 결국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최종 단계까지 이른다. 한 학생이 식사법에 의문을 품자 모든 음식은 해롭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세상이 소화하기 힘든 음식을 먹도록 유도해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고 말이다.
허기도 느껴지지 않을 고통을 넘어선 육체, 정신적 고갈에 이르면 비로소 특별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다는 '클럽 제로'의 회원으로 초대된다고 믿는다.
▲ 영화 <클럽 제로> 스틸컷 |
ⓒ 판씨네마㈜ |
<클럽 제로>는 무엇을 따라야 할지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묻고 있다. 보디 호러 장르의 기괴함도 포함이다. 영양교사의 그릇된 가르침에 빠진 아이들의 충격적인 행동은 불편함을 선사한다. 환경, 다이어트, 외모 관리, 수명 연장에 도움 준다며 절식, 단식을 게임이나 유행처럼 즐기는 풍자도 포함이다. 한 번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섬뜩한 종교의 세뇌와 맹신도 등장한다.
절제된 표정과 냉소적인 연기로 섬뜩함은 배가 된다. 밥 한번 먹자는 인사가 일상인 한국의 대화법에서 바라보자니 꽤나 괴로운 소재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린 행동은 광기 그 자체다. 아이들이 음식을 줄이다 못해 아예 먹지 않자 부모와의 갈등도 깊어진다. 먹지 않는 자식의 완강한 행동을 본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 내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만 봐도 흐뭇한 한국 부모라면 감정이입은 더할 것 같다.
미스 노백의 가스라이팅은 교묘하고 체계적이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씹으면 음식을 덜먹게 된다며 다이어트를 유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먹지 않아야 더 건강한 이유를 들어 조종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결핍을 채워주며 신뢰와 애정을 쌓아갔다.
비싼 등록금 대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수업에 합류했던 벤(사무엘 D. 앤더슨)은 처음에는 의심하며 따르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에도 어머니는 잘 먹어야 공부도 잘할 수 있다고 음식으로 사랑을 주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룹에서 겉돌고 장학금 위기도 찾아오자 결국 그들과 같아지기로 마음먹는다. 음식을 챙겨주는 어머니를 등지고 완벽하게 그룹과 동화되어 버린다.
선천적 당뇨를 앓고 있는 발레리노 프레드(루크 바커)는 외국에 살고 있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다 미스 노백과 친해진다.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며 외로워했다. 트램펄린 선수인 라그나(플로렌스 베이커)는 학교 임원인 부모님의 간섭이 지겨웠다. 처음엔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는 척했지만 배고픔을 참지 못해 몇 번 실패한다. 자존감이 떨어지던 순간, 미스 노백의 격려로 회복할 수 있었다. 엘사(크세니나 데브리엔트)는 가부장적인 아빠와 섭식 장애가 있는 엄마를 보고 자라 음식을 긍정하지 않았다. 미스 노백을 만나 자기 통제와 의지력을 증명받자 노예가 되어 따르기 시작한다.
▲ 영화 <클럽 제로> 스틸컷 |
ⓒ 판씨네마㈜ |
영화는 행복의 껍데기만 좇는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어떤 삶을 사느냐는 본인 의지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에겐 부모나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유년 시절에는 누구와 관계 맺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진실을 왜곡하고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건 시간문제다.
미스 노백은 혼자 사는 여성이다. 학생들 말고는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는다. 오랜 외로움과 결핍을 추종에서 얻으려는 것이다.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또 다른 희생양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의 두려움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심리적 지배는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여전히 무리에 끼지 못하고 내쳐지는 소외감은 허기만큼 참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다.
<클럽 제로>는 예시카 하우즈너 감독의 전작 <리틀 조>에서 쓴 가스라이팅 소재를 재활용했다. <리틀 조>는 생식 능력을 잃어버린 식물이 인간을 매개로 쓰면서 벌어지는 공포물이다. 싱글맘과 아들 사이의 애착 관계와 연구원인 엄마와 직장동료의 서스펜스가 불안함을 유발했다. 인간의 욕심과 자연 파괴가 어떤 결과로 되돌아오는가를 식물을 통해 보여주었다.
감각적인 미장센과 색감에 신경 쓴 장기가 또다시 발휘되었다. 섭식 행위로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두 번이나 뜬다. 감독은 구전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영감 얻어 제작했으며 "도덕적 옳고 그름에 대해 관객들이 더 생각하고 토론할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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