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나침반]'여론조작' 위험에 노출된 여론조사

나주석 2024. 1. 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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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관련 여론조사 있을 때마다 지지자 대량 문자
여론조사 시기 유사 여론조사 등도 의구심 키워

정당 공천에서 여론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조작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대비해 지지자들을 총동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이외에도 공천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의심되는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등 공천을 둘러싼 여론조사 환경이 ‘혼탁’한 양상을 보인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시스템 공천을 표방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관련 여론조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거나 마쳤다. 국민의힘은 12개 여론조사 회사에 의뢰해 전화면접조사로, 민주당은 6개 여론조사 회사에 의뢰해 자동응답방식(ARS)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국민의힘은 지난주 컷오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는 현역의원 교체지수에 40% 반영되는데, 국민의힘은 이외에도 당무감사 30%, 기여도 20%, 면접 10% 등을 통해 교체지수를 만들어, 이 평가에서 하위 10% 이하 해당자에 대해서는 공천을 원천 배제하기로 했다. 또한 교체지수 하위 10%~30% 이하는 20%의 감산을 적용하는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역 7명은 아예 공천에서 배제되고, 18명이 감점을 받게 된다. 본 경선이 시작되면 역시나 여론조사 등이 이뤄지는데 50~80%가량의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도 여론조사가 40% 반영되는 공천적합도조사를 진행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정체성(15%)·기여도(10%)·의정활동능력(10%)·도덕성(15%)·면접(10%) 등과 함께 예비 후보자들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경선 여부가 결정되는 식이다. 민주당은 이후 경선에서도 여론조사를 50% 반영해 후보자를 결정한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1차 회의에서 안경을 만지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문제는 민의를 파악하기 위한 여론조사 방식이 조작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당 차원의 여론조사가 시작된 것 같다는 소식이 당내에서 들리거나, 지지자들이 전화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총선 후보자들은 ‘02-XXX-XXXX로 시작되는 전화를 받아달라’며 번호를 특정하거나 아니면 ‘02 또는 070으로 오는 전화는 받아달라’고 지지자들에게 문자 메시지 등을 보내 당부한다.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해달라’, ‘응답이 마칠 때까지 전화를 끊지 말아달라’는 식으로 안내하는 후보자도 있다. 여기엔 여론조사 시작 시기를 얼마나 빨리 파악하는지, 얼마나 많은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지 등이 관건이다.

정치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여론조사 응답률이 낮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동원된 지지자들이 실제 여론을 과대 대표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전체 모집단 숫자와 비교했을 때 개별 후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지지자는 한계가 있어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김봉신 메타보이스 이사는 "적합도 조사의 경우에는 조직력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지방에서는 02 등으로 오는 번호를 받으면 많이 끊을 수 있는데, 이런 식의 연락을 받으면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특히 (응답률이 저조한) ARS 여론조사의 경우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전무는 "일반적인 여론조사의 경우 유권자 전체 숫자 등을 고려할 때 큰 영향이 없겠지만, 당내 경선 등에서는 조사 참여 비율을 높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런 안내 문자 외에 여론조사도 논란거리다. 당내 적합도 시기 등과 비슷한 시기에 여론조작을 목적으로 여론조사가 시행된다는 의심이다.

최근 국민의힘 한 선거캠프는 지역번호로 걸려 오는 여론조사를 두고서 설왕설래가 오갔다. 현역 의원의 적합도를 묻는 문항으로 채워진 이 여론조사가 과연 공관위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인지, 경쟁 후보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의뢰자 등을 파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현재까지 출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물론 이런 통화는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시뮬레이션‘ 차원에서 지역별 여론을 파악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 후보 입장에서는 당내 조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가령 전화 응답을 기다렸던 경쟁 후보 지지자들을 당 여론조사에 응답했다고 착각하도록 해 방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현역 의원에 대한 노출 빈도를 높이려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혹도 제기된다.

공직선거법 등에 따르면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 사전에 여론조사 개시 2일 전에 관할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다만 정당이나 정당 부설 정책연구소, 언론 등의 경우에는 사전 신고 의무가 면제된다. 후보 등이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서면으로 신고하면 되는데, 여론조사 사전 신고 내역 등은 공개되지 않다 보니 누가 어떤 의도로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일반인은 파악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응답자들은 걸려 오는 이 전화가 어떤 의도를 가진 전화인지 알 수가 없다.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정치 현안 관련 여론조사의 경우 조사 목적을 공개할 이유도, 의뢰자 정보를 밝힐 필요도 없다"며 "오히려 이를 공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전화인지 알 수 없는 셈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모종의 여론조작이 있더라도 유권자는 무방비 상황인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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