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총사령 동상의 수난…7년째 곰팡이 핀 창고에 갇혔다 [영상]

김윤호 2024. 1. 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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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의사 동상과 추모비가 울산의 한 재활용센터에 방치 중이다. 오는 2029년까지 현재 상태로 창고신세를 질 상황이다. 김윤호 기자

대한광복회 초대 총사령을 지낸 고헌 박상진(1884~1921) 의사 동상과 추모비가 울산의 한 변두리 재활용품 창고에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동상과 추모비 관리를 맡은 울산 중구는 "임시 보관한 것일 뿐 방치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박 의사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파란색·회색 비닐로 덮어둬


박상진 의사 동상과 추모비가 울산의 한 재활용센터에 방치됐다. 오는 2029년까지 현재 상태로 창고신세를 질 상황이다. 김윤호 기자
지난 23일 울산시 중구 한 재활용센터. 폐 현수막 같은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센터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 한편 쓰레기통 옆에 파란색·회색 비닐로 덮힌 커다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비닐을 들춰보니 파란 비닐 안엔 높이 3m쯤 되는 화강석으로 만든 동상 장식과 경계석이, 회색 비닐 안엔 거북이 모양 받침대로 꾸며진 박상진 의사 추모비가 있었다. 마당 옆 조립식 판넬 창고 안엔 높이 2m쯤 되는 회색 비닐 상자가 놓여있었다. 비닐 상자엔 박 의사 동상이 먼지가 잔뜩 쌓인 채 놓여있었다. 오랫동안 습한 창고에 방치된 탓인지 일부에 녹이 슬고 있었다. 지하실 '곰팡이' 냄새도 코를 찔렀다.

2017년부터 창고 신세 중


박상진 의사 동상과 추모비가 울산의 한 재활용센터에 방치 중이다. 오는 2029년까지 현재 상태로 창고신세를 질 상황이다. 김윤호 기자
박상진 의사 동상과 추모비가 울산의 한 재활용센터에 방치 중이다. 오는 2029년까지 현재 상태로 창고신세를 질 상황이다. 김윤호 기자
박 의사 동상·추모비는 1982년 울산청년회의소가 제작해 울산 중구에 있던 'JC동산'에 세웠다. 그러다 도로 개발 사업으로 1997년 다시 인근 북정공원으로 한차례 옮겼다. 그런데 또 몇 년 후 북정공원이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터에 포함되면서 2017년 11월 이 재활용센터로 옮겼다.

이에 대해 울산 중구 관계자는 "2017년 당시 역사문화공원을 금방 새로 지을 계획이어서, 재활용센터에 임시로 보관했다"면서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2029년은 돼야 공원이 조성될 것 같다"고 말했다. 즉, 2029년 공원이 새로 지어질 때까지 5년 이상 더 창고 신세를 져야 한다는 뜻이다.


"작은 공원에 우선 전시해야"


박상진 의사 동상과 추모비가 울산의 한 재활용센터에 방치됐다. 오는 2029년까지 현재 상태로 창고신세를 질 상황이다. 김윤호 기자
이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상진 의사 증손 중훈씨는 "시민 염원으로 만든 동상을 10년 이상 창고에 두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면서 "도시 곳곳에 작은 공원이 많지 않은가. 우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그런 장소에 전시한 뒤 새로 옮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재활용창고 바로 옆엔 소공원이 있다.

직장인 안동주(40·울산 동구)씨는 "지역 출신인 박 의사 알리기 캠페인이 열리고, 그의 업적을 기억할만한 추모비 같은 전시물은 현충시설로 지정한다"며 "독립운동가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기 때문에 창고에 10년 이상 계속 방치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울산 출신인 박 의사는 1902년 상경해 국내외 정세를 배운 뒤 의병 신돌석, 김좌진 장군과 의형제를 맺었고,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에서도 활동했다.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에 발령받았지만 “독립운동가를 내 손으로 단죄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박상진 의사. 뉴스1

박 의사는 이어 1910년대 전국 규모 항일 비밀결사인 광복회 총사령을 지냈다. 광복회는 1915년 8월 대구에서 창설돼 친일부호 처단, 일제 세금 탈취, 조선총독 암살 시도 등 항일활동을 했다. 1918년 체포된 박 의사는 1921년 38세 나이로 대구감옥에서 순국했다.

박 의사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여류시인 다카무레 이쓰에(1894~1964)는 추모시 ‘오수시의 제국의 도읍(午睡時の帝都)’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에는 항일투사가 살인·강도·방화 등 엉뚱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데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일제의 잔혹함이 잘 드러나 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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