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과연 '온리 원' 도시가 될 수 있을까?

김은남 2024. 1. 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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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주 '입도 3년차' 이주민이 읽은 <도시x리브랜딩>

[김은남 기자]

 제주를 성공적으로 리브랜딩하기 위해서는 제주만의 '온리 원'을 찾아야 한다. 사진은 제주올레 1코스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 (사)제주올레
제주로 이주한 지 3년이 지났다. 이곳 방식으로 표현하면 '입도 3년차'다.

서울은 분기에 한번 갈까 말까 하는 곳이 되었다. 30년 넘게 살았던 도시가 낯설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즘에는 약속을 위해 서울 시내에 나갈 때마다 '서울 체크인'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외국여행을 떠난 듯 신기한 것투성이다. 광화문 지하도를 가득 메운 사람의 물결에 입이 떡 벌어지고(그 안에 있을 때는 왜 몰랐을까?), 힙하기 이를 데 없는 을지로 거리 풍경, 성수동 팝업 스토어를 구경하며 동공이 절로 커진다.

문득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외국에 처음 나간 1990년대 초반이 생각난다. 그때는 도심 한가운데 초록 허파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센트럴파크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뉴요커들이, 오밀조밀한 노천카페에서 끝도 없이 수다를 떠는 파리지엔들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이런 곳이 바로 선진국이구나' 느꼈던, 막연했던 그 감정을 새로 나온 책 <도시X리브랜딩>(박상희·이한기·이광호 지음, 오마이북 펴냄)은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이것이 바로 도시 브랜드의 힘이라고.

우리는 흔히 브랜드라고 하면 나이키의 'Just Do It'이나 애플의 'Think Different'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기업 말고 도시라면 <도시X리브랜딩>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는 뉴욕의 'I♥NY' 정도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브랜드일 듯하다. 그런데 저자들은 말한다. 이것들은 브랜드가 아니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슬로건일 뿐이라고. 진짜 브랜드는 슬로건이 아니라 나이키·애플이라는 기업 그 자체, 뉴욕이라는 도시 그 자체라고 말이다.

저자들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나이키나 애플에 열광하는 것은 슬로건이 그럴싸해서가 아니다. 실제 혁신적인 기술과 '실행력(Just Do It)'으로 '세상을 바꿔나가겠다(Think Different)'는 자신들의 경영철학을 남들이 따라하기 힘든 탁월한 성과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뉴욕 또한 마찬가지다. 'I♥NY' 캠페인에 걸맞는 사회적 재투자와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인 끝에 빈곤과 범죄로 얼룩졌던 '고담시티' 뉴욕을 세계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도시, 투자자들이 비즈니스 하기 좋은 도시,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살기 좋은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이로써 나이키, 애플, 뉴욕은 '최고의 브랜드(베스트 원)'를 넘어 다른 기업 또는 도시가 흉내낼 수 없는 '유일한 브랜드(온리 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SEOUL♡ MY! SOUL, 서울시 도시 브랜드 슬로건 어색했던 이유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서울 신규 브랜드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베스트 원'에서 '온리 원'으로. 이는 책 전체를 통틀어 저자들이 반복해 강조하는 도시 (리)브랜딩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떨까? 평소라면 생각지 않았을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이유이자 즐거움일테다. 서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베스트 원' 도시라는 데는 크게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서울은 인구 1000만 명에 이르는 초거대 도시이며,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1125만 명 남짓 방문하는 세계 11위 도시다(2019 글로벌행선지도시지수). 엔데믹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올해부터는 방문객 숫자가 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오세훈 서울시장은 K-컬처 등을 활용한 관광 총력전을 펼쳐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서울은 과연 '온리 원' 도시이기도 한 것일까? 최근 서울에 가 광화문 거리를 걷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이라는 문구였다. 뭔가 싶어 찾아보니 서울시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 바뀐 것이라 했다. '아이서울유(I·SEOUL·U)' 시절을 살았던 '전 서울시민'으로서 낯설고 어리둥절했다. 

'서울(Seoul)'과 '소울(Soul)'의 라임 효과를 노린 것인지, 'I♥NY'처럼 세련된 디자인 효과를 노린 것인지, 전임 시장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새 슬로건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였을까? '아이서울유(I·SEOUL·U)'라는 옛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어법상 어색했고, 입에 영 붙질 않았다. 그런데 새 슬로건은 또 다른 의미에서 불편했다. <도시X리브랜딩>을 읽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 안에 시민이 빠져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도시 브랜딩은 해당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도시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곧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해당 도시만의 매력을 잘 부각시킴으로써 다른 지역 사람들이 여행이나 투자를 위해 찾아오게 만드는 한편,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부심과 강한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도시 브랜드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마이 소울'의 도시, 서울의 비관적인 지표들
 
 브랜드 런칭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울의 도시브랜드 슬로건 'I·SEOUL·U'.
ⓒ 사진자료
그런데 서울은 과연 그런 도시 브랜드인가? K-컬처에 열광하는 외국인 관광객만큼 서울에 살고 있는 시민들 또한 서울을 '마이 소울'의 도시, 내 마음에 공감해주는 애착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나?

드러난 지표들을 보면 비관적이다. 서울시 합계 출산율은 0.59로, 세계 인구학자들을 경악시키고 있다는 대한민국 전체 합계 출산율(0.78)을 크게 밑돈다. 서울시 성인 인구의 52.5%는 1개 이상의 정신건강 문제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를 진단한다(<서울시민 정신건강 실태와 정책 방향>, 서울연구원, 2023).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33.8%), 우울(26.2%), 불면증(19.0%), 불안(16.8%), 알코올 사용 장애(16.5%), 극단적 선택 생각(13.7%) 순이다. 

특히, 청년층과 1인가구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응답자가 많다. 안타까운 것은, 이를 개선하려는 정책적 의지나 역량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청년 정책은 널을 뛴다. "도시 브랜드를 평가할 때는 도시의 실체를 잘 드러내고, 도시의 정책을 잘 담아냈는지가 중요"하다고 책의 공동 저자중 한 명인 박상희(경희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말한다.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사실, 이렇게 서울을 돌려까기 하기에는 내 코가 석 자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제주 관광객은 매달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지만 내국인 관광객의 빈 자리를 메울 수준은 아니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지역사회는 타격이 크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 또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센터가 위치한 서귀포 원도심 유동인구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제주올레 길을 걷는 도보여행자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어 주변 상가에 비해서는 상황이 낫다지만 지역 전체가 받는 타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조랑말 모양의 조형물은 제주올레 길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간세'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제주의 자연과 마을, 사람을 연결하는 올레길에 매료되어 제주 이주를 결심한 필자는 길 또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사)제주올레
 
그래서 더 밑줄 쳐 가며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선택받지 못하면 브랜드가 사라지듯이 선택받지 못한 도시는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같은 대목에서는 한숨을 쉬며 밑줄을 두 개씩 그었다.

알고 있다. 바가지 상혼을 들먹이며 제주를 비난하는 댓글에 맞서 "제주에 비싼 식당만 있는 건 아니에요"라고 변명하는 게 답은 아니라는 걸. 결국 제주가 위기에 처한 것은 '왜, 꼭 제주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도시X리브랜딩>의 표현대로라면 도시 브랜딩에 실패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낙담은 하지 않으려 한다. 저자들이 힘 주어 강조하는대로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정책 입안자나 디자이너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지만 제주에는 대체 불가능한 오름과 해안, 돌담, 곶자왈이 있고, 그것을 사랑하며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걷기라는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사람과 마을, 자연을 잇는 제주올레 길 또한 나 같은 사람들을 제주로 이끈 매력의 원천이다. 

이런 고유함과 특별함을 지켜나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브랜드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겠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수확이다. 서울, 제주, 다른 로컬 어느 도시라도 좋다. 소멸 위기 대신 지속가능성의 해법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김은남은 걷기와 로컬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든 예비 사회적기업 ㈜간세의 대표입니다. 대한민국 최남단 서귀포 원도심에서 제주올레여행자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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