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우승 명장 다음은 사커루, 클린스만의 운명 걸린 '데스매치'

이준목 2024. 1. 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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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 맞대결 펼치는 아시안컵 연봉 1,2위 감독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시안컵 16강전을 하루 앞둔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한국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왼쪽)과 사우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각각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만치니 감독의 연봉은 최대 435억으로 추정되며 감독 중 1위를 기록했다. 또한 한국의 클린스만 감독은 연봉 28억으로 감독 중 2위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일본을 피했다고 해서 꽃길은 없다. 어차피 누구에게든 한 경기만 져도 탈락하는 단판승부인 토너먼트에는, 한국축구가 꿈꾸는 '64년 만의 우승'은 물론이고 경질 위기에 몰린 클린스만의 '감독 목숨'도 걸려있다. 사실상 이제부터는 매 경기가 데스매치나 다름없다.

한국은 1월 31일 오전 1시(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중동의 난적'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을 치른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 1무를 기록하며 E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지금까지 행보만 놓고 보면 기대 이하다. 한국은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김민재 등 유럽 빅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들을 앞세워 '역대 최강의 전력'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바레인(3-1)에게만 겨우 이겼을 뿐, 한 수 아래로 꼽힌 요르단(2-2), 말레이시아(3-3)에 연이어 끌려다니다가 간신히 비겼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무려 6실점이나 내주며 수비력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조규성-이기제-박용우 등 믿었던 주축 선수들의 부진,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과 경기운영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조 1위를 놓치면서 16강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일본을 피하게 되어 전화위복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큰 의미는 없어졌다. 당장 사우디만 해도 한국이 무조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2010년대 이후 부침을 겪으며 주춤하기는 했지만 이사안컵 우승만 3회로 일본(4회)에 이은 역대 2위에다가 5회 연속(1984-2000) 결승진출 기록도 보유한 전통의 강호다.

또한 8강에 오르면 '사커루' 호주가 기다리고 있다. 유럽식 축구를 구사하는 호주는 2015년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결승에서 한국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으며, 16강전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를 네골 차로 완파하기도 했다. 호주는 한국-사우디전 승자보다 이틀을 더 쉰 채로 8강전을 치르기 때문에 체력면에서도 유리하다.

더구나 이번 아시안컵은 전력차와 상관없이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보다 더 강력한 우승후보 0순위로 꼽히던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이라크에 덜미를 잡혔다. 요르단은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비긴 데 이어 16강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한 이라크마저 격침시켰다.

이번 아시안컵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타지키스탄도 벤투가 이끄는 UAE를 물리치고 첫 본선 출전 만에 8강신화를 이뤄냈다. 아시아축구가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흐름속에서 피파랭킹이나 객관적인 전력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바꿔 말하면 어떤 상대를 만나든 '대진운'이 아니라 한국의 실력으로 상대할 제압할 준비가 되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토너먼트에서 한국축구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감독'이 될 전망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클린스만의 리더십이 좀처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우승을 위해서는 세계적인 명장들을 넘어서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는 23위의 한국이 56위의 사우디에 앞서고 있지만 양팀의 상대 전적은 5승 8무 5패로 팽팽하다. 특히 아시안컵 맞대결만 놓고보면 오히려 사우디가 1승 3무로 한국에 한 번도 지지않을 만큼 우위를 점하고 있다.

가장 최근 맞대결은 지난해 9월 유럽에서 열린 평가전으로 한국이 조규성의 선제골로 1-0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이 경기는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6경기 만에 거둔 첫 승이기도 했다. 한국은 사우디와 최근 5번의 A매치 맞대결에서 2승 3무로 앞섰다.

16강 상대인 사우디를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연봉만 약 2500만 유로(약 430억 원)에 이를 만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감독이다. 만치니 감독은 유럽 굴지의 명문클럽과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무수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명장이며, 특히 지난 유로 2020에서는 모국인 이탈리아를 정상으로 이끌기도 했다.

한국이 지난 9월 사우디를 꺾었을 당시는 만치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나서 불과 두 번째 A매치였다. 4개월 전과 지금의 사우디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만치니 감독은 사우디 대표팀을 맡은 후 한국전 패배를 포함해 4경기 연속 무승(1무 3패)을 거두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최근 6경기 무패행진(5승 1무)을 이어가고 있다. A매치 10경기에서 15골을 득점할 동안 실점은 10골만 내줬다.

사우디는 조별리그 F조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여유롭게 조 1위에 올랐다. 오만과 키르기스스탄을 각각 2-0, 2-1로 꺾으며 조기에 16강행을 확정했고, 마지막 태국전에서는 토너먼트를 대비하여 여유롭게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 0-0으로 비겼다. 유일한 1실점은 PK였고 필드골로는 아직 실점이 없다. 이탈리아 감독답게 단단한 수비와 중원을 바탕으로 '지지 않는 축구'에 누구보다 능하다는 평가다.

조별리그에서 8골을 넣었지만 정작 최전방 공격진의 득점력은 저조했던 한국이 과연 만치니의 사우디를 뜷어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다행히 황희찬과 김진수가 복귀하면서 조별리그에 비하여 완전체에 가까운 전력을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호재다.

무엇보다 클린스만에게 사우디전은 사실상 운명을 좌우할 단두대 매치가 될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한국이 만일 이번 대회에서 8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지난 2019년 대회의 벤투호(8강)를 뛰어넘어 아예 본선진출조차 실패했던 1992년 이후 아시안컵 역대 최악의 성적이 된다. 이미지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극심한 부진으로 인하여 클린스만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클린스만은 지난 조별리그 최종전 말레이시아전에서 실점하고 미소를 지은 장면을 두고, 16강에서 일본을 피해서 사우디를 만나게 된 것을 기뻐한 게 아니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만치니 감독도 이에 대하여 "클린스만이 웃는 것을 보고 나도 웃었다. 이상하지만, 축구에선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라고 뼈있는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클린스만은 사우디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미소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일본을 피하려고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조 1위를 원했다. 실점을 하고 웃은 이유는 그 장면(실점이 나올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레이시아전에서 많은 기회를 얻고도 추가득점을 하지 못했고, 축구에서는 그런 경우 막판에 실점을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클린스만은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존중한다. 사우디는 만치니라는 좋은 감독이 있고 매우 어려운 게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승리에 굶주려있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김영권 역시 "누굴 만나고 싶거나 피하고 싶다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며 다시한번 필승을 기약했다.

클린스만은 조별리그에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한 바 있다. 팬들은 이제 더이상 말뿐인 호언장담이 아닌 축구로 증명하는 결과를 원한다. 과연 사우디전이 끝난 이후에도 클린스만의 여유로운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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