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며 "싸래기 닷되 콩 닷되" 외친 이유

강등학 2024. 1. 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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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축원이 담긴 구전동요 널뛰기 노래

[강등학 기자]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예전 정초에는 여성들이 널 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참여층은 어린 소녀로부터 젊은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었지만, 널뛰기는 연령대와 무관하게 설과 정초에 여성들이 선호하던 놀이다. 특히 소녀들은 설빔을 입고 널뛰기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다가오는 설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널뛰기는 역동적이다. 널판을 굴러 솟구치는 순간 말 그대로 몸을 날아오르게 한다. 구전동요 '허누자 척실누'는 널뛰기의 이 같은 역동적 광경과 느낌을 다음처럼 생동감 있게 형상했다.

허누자 척실누
네머리 흔-들
내다리 삽-짝
허누자 척실누
네댕기 팔-랑
내치마 나-풀
허누자 척실누
네눈이 휘-휘
내발이 알-알
- 김소운, <조선구전민요>, 1933, 함경남도 함흥.

"허누자 척실누"는 '겨누자 닭수리'의 와전이다. '닭수리'는 '닭스루'라고도 하며 솔개를 뜻한다. 그러므로 '겨누자 닭수리'는 솔개를 겨누어 그만한 높이로 솟구쳐보자는 말이다. 1930년대 일간지에 실린 동요 '널뛰기'도 같은 발상으로 끝을 맺었다.

(앞 부분 생략)
좀더 좀더 굴러라
힘껏 쿵넝쿵 굴러라
하늘에 닿게 굴러라
솔개 잡게 굴러라
- 송완돈, '널뛰기-유녀의 노래', <조선일보>, 1930. 2. 11.

다시 '허누자 척실누'를 보자. 널판을 굴러 올라가면 머리가 흔들거리고, 댕기가 펄렁인다. 그리고 눈이 휘휘 돌아간다. 반대로 널판으로 내려오는 느낌은 먼저 다리가 반응한다. 허공으로 올렸던 다리를 내려 세우면 열었던 삽짝문(사립문)을 닫는 듯하고, 치마가 나풀거린다. 이어서 발이 널판에 닿으며 알알한 느낌이 온다.
 
▲ 1920년대 소녀들의 널뛰기 모습 널판을 구르니 몸이 지붕까지 오른다.(1920년대에 발행한 엽서의 그림), 공유마당 제공 이미지.
ⓒ 부경근대사료연구소
 
널뛰기는 동심을 자유롭게 한다. 기분은 어느덧 솔개가 되어 하늘을 난다. 비상하며 지상의 온갖 얽매임을 떨쳐내는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여기에 설이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설날 널뛰기의 비상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늘은 모든 신성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연초에 몸을 솟구쳐 하늘만큼 올랐다 내려오는 것은 그간의 삶에 쌓여 있던 부정한 것들을 날려버리고, 신성을 접해 몸을 새롭게 정화하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초의 널뛰기는 본원적으로 한 해 동안 삶의 안녕을 꾀하는 축원적 행위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구전동요 널뛰기 노래 중 곡식이나 먹거리를 화제로 삼은 것이 여럿인 점도 정초의 널뛰기가 본원적으로 단순한 몸놀림 놀이 이상의 그 무엇, 곧 축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싸래기닷되 콩닷되
싸래기닷되 콩닷되
- 강원도, <강원의 민요Ⅰ>, 2001, 강원도 인제.

널을 뛰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부른다. 노래할 때는 자기 치마를 잡고 펼치면서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 여기서 치마를 넓게 펼치며 외치는 소리가 '싸래기 닷되 콩 닷되'인 점은 예사롭지 않다.

싸래기를 얻기 위해서는 방아를 찧어 까불어야 하고, 콩을 얻기 위해서는 도구로 두드려서 떨어내고 검불을 바람에 날려야 한다.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널 뛰는 모습을 바람에 등겨나 검불을 날려 곡물 추스르는 작업으로 연상하여 노래 부를 때 치마를 펼치고 곡물 받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널뛰기 차례를 기다리며 하필 뜬금없이 곡물 받는 시늉을 하는 것일까? 곡물 취득은 먹거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널뛰기와 곡물 취득 연행의 본원적 성격은 일년 내내 곡식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곧 한 해의 풍요를 축원하는 의례적 행위가 된다. 내용은 달라도 다음의 노래에도 같은 발상이 담겨 있다.

문열어라
상들어간다
문열어라
상들어간다
- 강원도, <강원의 민요Ⅰ>, 2001, 강원도 횡성.

이 노래는 널 뛰는 사람이 직접 부른다. 올라가는 사람이 "문열어라"를 외치면, 내려오는 사람이 "상들어간다"를 외친다. 또 올라가는 사람이 "상들어간다"를 외치면, 내려오는 사람이 "문열어라"를 외친다. 정초에 문을 열어 밥상을 들이는 것은 먹거리를 확보해 한 해의 풍요를 이루는 일이다.

설도 요즘은 예전과 다르다. 설에 설빔을 차려입고 널뛰기 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설은 여전히 우리의 명절이며, 또 우리는 설을 민속적 감성으로 맞이하여 새로운 시작을 기린다. 살아갈 한 해가 안녕하며 풍요롭기를 바라며 세배와 함께 덕담도 나눈다.

지금은 특별히 이벤트 하는 곳이 아니라면 설에 널뛰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그래도 다가오는 설에 널뛰기 동요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마음으로나마 널을 높이 높이 뛰어보면 좋겠다. 어느덧 솔개가 되어 거침없는 해방감을 느껴보면 좋겠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올 설에 설빔 입고 널을 뛰던 동심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들어와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고 새로운 에너지를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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