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와 싸우는 대한체육회 회장... 왜?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2024. 1. 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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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인대회 열어 세몰이까지... 체육계 전체 이익보다는 3선 의식한 행보라는 비판도

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 <기자말>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이기홍 대한체육회장이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2027 충청권 하계유니버시아드 유치 경과 설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6.21
ⓒ 연합뉴스
 
요약: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극단적 갈등과 대립은 두 기관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대한체육회는 국가로부터 4000억 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민간단체이지만 일종의 상급기관인 문체부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체육회는 전문·생활스포츠 육성을 위한 실질적인 기구로 활동하고 있다. 한쪽은 통제하고 싶어하고, 다른 쪽은 자율성을 갖기를 원한다. 

역사적으로 정치는 체육을 수단(표)으로 활용해 왔고, 그 관성은 여전하다. 4월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부는 체육계와의 잡음이 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반면 이기흥 회장은 정치적 상황을 극한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기흥 회장은 체육회 추천 인사를 배제했다는 이유로 12월 출범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를 정면 비판했고, 1월에는 체육인들을 대거 동원한 집회를 통해 세를 과시했다.

체육이 정치에 휘둘려서는 안되지만, 체육이 정치를 역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체육회가 자기 목소리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재정 자립을 위한 노력, 체육인들의 자주의식 고취, 내부 민주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 이기흥 회장의 개인기에 의존한 싸움이 체육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유일한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이기흥 회장의 강경노선이 3선을 의식한 행보라는 의심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문체부와 체육회의 정체성과 상호 위상 재정립의 과제는 상호 간의 역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이기흥 회장의 일인 능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민주화, 자주화 등 체육계 내부 역량 강화다.

토론 참가자: 장익영 한국체대 교수,  오태규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한겨레신문 체육부장), 김완태 전 프로농구 엘지 단장, 사회 김창금 한겨레 기자.
 
지금은 거꾸로 체육회 회장이 정치를 역이용하고 있다

사회자: 최근 체육계 이슈는 단연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의 노골적인 반 문체부 강경 대응이다. 이기흥 회장의 행보는 그야말로 광폭이다. 지난해말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지만, 참가하지도 않은 채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주요 일간지에 체육단체 연명으로 성명서도 게재했다. 

스위스 로잔에 체육회 국제협력사무소 설치 문제를 두고 문체부와 대립했다가, 결국 자신의 뜻대로 관철하기도 했다. 1월 16일 서울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는 '2024 체육인대회'를 열어 세몰이를 했다. 문체부가 "산적한 문제나 풀라"며 반박하자, 발끈해서 성명까지 내며 확전을 마다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체육계의 많은 이들은 이기흥 회장과 문체부의 대결 양상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질주의 위험성 때문에 걱정하기도 한다.
 
 1월 16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24 체육인대회에서 행사장에 등장한 구호.
ⓒ 김창금
 
장익영 교수: 이기흥 회장과 문체부의 대립은 공교롭게도 과거 소수 대의원 투표가 아닌 다수의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서 회장이 선출되는 변화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일종의 민선 체육회장이 권력화하면서 부득이하게 대립이 발생한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나쁜 것도 아니고,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라는 거버넌스의 문제도 걸려 있다. 다만 이기흥 회장의 행보가 체육회장 3선 전략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갈등이 발생하는 요인 중 하나는 예산이다. 체육회 예산은 문체부를 통해 내려오는데, 수직적 관료적 측면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지원하니 관리·감독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전문·생활 체육을 운영하고 올림픽 대회 등에 선수단을 보내는 실질적인 주무기관인 대한체육회는 자율성을 강조한다. 

대한체육회와 국가올림픽위원회를 현행대로 통합한 형태로 두느냐, 분리하느냐의 문제도 두 기관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싸움은 매우 복잡한 양상이다. 결국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효율성, 책임성, 자율성 등의 의제를 체육회와 문체부 두 기관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루려 하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할 것 같다. 자정 능력이 부족하니 통제하겠다거나(문체부), 자율을 주장하면서 책임을 소홀히 한다는(체육회) 식으로 간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 체육'이다.

오태규 연구원: 정부와 정부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 사이에 갈등과 알력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사태는 '불건전한 갈등과 알력'이다. 그동안 한국 체육의 역사를 보면, 정치 권력의 힘이 체육단체보다 압도적으로 컸다. 정치는 각종 자원과 권력으로 체육계를 지지세력으로 활용·악용해 온 역사가 있다. 수평적이지 않고 건전하지도 않은 관계였다.

지금은 거꾸로 체육회 회장이 정치를 역이용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4월 선거라는 국면도 있는데, 체육회의 성명서 정치를 보면 매우 강경한 어조로 돼 있다. 이전과는 다른 매우 특수한 상황이다. 어떤 면에서는 (체육회장 3선) 욕심을 많이 내는 회장이 체육회를 사유화 해 자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싸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내가 95% 지원하는데, 나에게 대들어'라는 관성적 생각을 할 수 있다.

불건전한 갈등과 알력의 해법으로 체육계의 민주화, 자주화, 자생적 재정 독립 노력 등을 제안하고 싶다. 정부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에서 체육계가 자기 목소리만 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김완태 단장: 한국의 스포츠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체육이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이끌기도 한다. 한국 스포츠 단체 역시 시대의 흐름이나 이동을 알아채고 거기에 맞물려서 가야한다. 가령 정보통신 기술의 변화를 스포츠 일자리와 연결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현재 진행되는 체육회와 문체부의 갈등을 보면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체육회 내부 조직이 경기나 경기인 중심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스포츠도 부상하고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 체육회는 80~90살 분들이 포함된 원로회를 최근 구성했다. 저도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흐름에 적응도 잘 못하는 것 같고, 지식도 부족하다. 너무 엘리트 중심으로 가는 것 같은데, 그러면 스포츠 산업적인 관점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올림픽 금메달 몇 개를 획득했느냐 식으로 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체육회가 주도한 해병대 훈련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재직했을 때 이런 행사를 경험했는데, 당시에도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그땐 오래전이었다. 지금은 스포츠 과학 등을 통해서 해야 한다. 체육회가 문체부와 대립하는 것이 특정인의 정치화, 권력화와 연결돼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봉합은 되겠지만 현 상태로 봉합할 수는 없다. 전문가 집단의 공론화, 공개토론이 필요하다.
 
체육인 목소리는 없고, 체육회 기득권이 문체부와 아옹다옹

사회자: 이기흥 체육회장의 개인기보다는, 체육회 역량 등 구조적 측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저도 1월 16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2024 체육인대회 현장에 있었는데, 많은 체육인들이 동원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야외에서는 추운 날씨 탓에 임시 난방시설이 꽤 많이 가동됐는데, 청소년부터 성인들까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나오는 체육회장의 연설에는 관심이 없었다. 외형적 세몰이보다는 내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월16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24 체육인대회 행사장 외부 전경.
ⓒ 김창금
 

장익영: 체육의 민주화 자주화 문제가 나왔는데, 저는 가장 부족한 부분을 자주의 문제로 본다. 그동안 체육은 너무 종속적이었고, 정치 수단화됐다. 체육인들이 세를 과시할 게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각 영역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듯이 체육계도 내부 역량 강화를 해야 한다. 체육회를 보면 과연 얼마나 많은 체육 부문의 '정책통'이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는 왜 전문가를 키우지 못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이기흥 회장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는데, 만약 역량있는 체육인들이 많고, 내부 민주주의를 통해 그들의 쓴소리가 나왔다면 싸움의 수준이 달라졌을 것 같다. 그렇다고 문체부의 대응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태규: 지금은 총선을 앞두고 있어 권력이 조심스러워하지만, 한순간에 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체육회를 사유화한 수장의 목소리가 아니라, 풀뿌리에서 나오는 체육인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체육회와 문체부 사이에 성명서와 반박 글이 나오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은 그들만의 싸움이다. 체육계가 진짜 힘을 갖추려면 내부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 또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공개 토론, 전문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미디어도 병렬식 보도로 한쪽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사회자: 제가 볼 때는 이기흥 회장과 문체부의 대립은 감정싸움까지 치닫는 경향이 있다. 또 정부도 내부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이기흥 회장은 문체부가 체육인대회를 비판하자, 다음날 반박 성명을 냈는데, 성명 내용을 읽어보면 매우 민감한 부분이 나온다. (용산의) 고위 관계자와 협의를 통해 대규모 행사를 했고, 정부기관인 문체부 공익감사 청구서를 대통령 비서실 사회수석에 전달한 것도 미리 공유됐던 행사라고 썼다. 하지만 확인해 본 결과, 대통령 비서실 입장은 정반대였다. 체육회나 대통령실 양쪽 가운데 한쪽은 거짓말을 한 꼴이다. 다른 한편 정부의 조정기능이나 중재력이 상실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이기흥 회장의 독주를 더 자극하는 것 같다. 

장익영: 지금의 상황은 국가와 기타 공공기관인 체육회가 국민을 상대로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등에 업어야 한다. 이기흥 회장은 정치적 국면에서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 같다. 반면 민간기구와 협력을 통한 거버넌스를 이뤄야 하는 정부는 내부적으로 조율이 잘 안되는 것 같다. 정부 기구인 문체부를 감사하라는 체육회의 청구서를 대통령 비서실 사회수석이 접수하고, 대통령 비서실의 실무 당국자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오태규: 본질적인 것은 체육인들의 목소리는 없고, 체육회 상층부나 기득권이 문체부와 아옹다옹하는 것이라고 본다. 전체가 공감하는 대립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이나 야망에 복무하는 갈등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배우 이선균의 불행한 사망에 대해 영화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인사들이 모여 부당한 수사 관행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현재 체육회와 문체부의 대립에서도 진정성 있는 체육인들의 목소리는 없다. 그런 까닭에 권력지향적 체육회장의 행태는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과 달리 사익 추구처럼 보인다. 무조건 정부와 맞서면서 반사이익을 얻는다면 그 싸움은 박수를 받을 수 없다.

김완태: 결국 체육회의 내부 역량 강화와 민주화로 귀결되는 것 같다. 스포츠의 본질을 이해하고, 체육 발전의 보편적 가치에 동의한다면 체육을 사적 이익의 추구나 정치 도구화해서는 안된다. 

사회자: 체육회와 문체부의 갈등 상황은 한국 체육의 발전이라는 지상목표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설득할 때 정당성을 얻을 것 같다. 또 체육회와 문체부 모두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위상과 역할 정립을 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체육계가 목소리를 내려면 일인의 독주가 아니라, 내부 민주화와 역량 강화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기본 전제다. 이상으로 장시간 토론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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