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업가치 개선 공시의무…코스피 전사·코스닥150 대상 검토
후진적 지배구조, 기업 자율개선 유도
한국거래소, 세부안 2월 말 공개 예정
정부가 유가증권(코스피)시장 전체 상장사와 코스닥 상장사 150개사를 대상으로 기업가치 개선계획을 공시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올해 추진하는 지배구조(거버넌스) 개혁 정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1000여개 상장사가 우선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증시 환경이 다르다는 점에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촘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강제성 부여 위해 명단 공개도 검토
30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기업가치 재편 방안 공시 대상을 코스피 전체 상장사와 코스닥 상장사 150개사로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시행 회사와 미시행 회사를 구분해 명단을 발표하는 방향도 고민 중이다. '공개적인 망신주기'인 네임 앤드 셰임(Name & Shame) 전략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현재 코스피 상장사는 840개사로, 코스닥 상장사 150개사까지 합치면 약 1000개(990개사)사가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주범으로 꼽혔던 후진적 지배구조를 기업 자율적으로 개선하고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게끔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정책 골자는 ▲상장사 주요 투자지표(주가순자산비율(PBR)·자기자본이익률(ROE) 등)를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 공시하고 ▲상장사의 기업가치 개선계획 공표를 권고하는 것이다. 당국은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코리아 프리미엄 지수(가칭)'를 개발하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 개발도 유도할 계획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 간담회에서 "기업 스스로가 자사가 저평가된 이유를 분석해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적극 설명·소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식과 대상은 한국거래소가 상장사와 협의를 거쳐 2월 말 공개한다. 향후 ETF 개발 과정에서 국내 자산운용사 업계의 협조도 필요할 것으로 점쳐진다.
금융당국은 이번 개선책을 마련하면서 최근 일본 증시 원동력으로 꼽히는 강력한 부양책을 주요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25일 투자은행(IB) 업계 고위급 관계자 모임인 '서울 IB 포럼'에 강연자로 등장해 "일본 사례를 많이 벤치마킹했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일본 정부와 일본거래소그룹(JPX)은 도쿄증권거래소(TSE)의 상장사 중 PBR가 1배 이하인 기업에 경영개선 방안을 강력히 요청했다. JPX는 이 같은 기업은 상장폐지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또 기업들에 지배구조 보고서도 발간하게 하고, 우수기업만 모아 벤치마크(BM)지수인 'JPX 프라임 150지수'도 만들었다. 엔저 효과 등으로 인한 일본 기업들의 호실적과 함께 '가치투자 대가' 워런 버핏이 5대 상사에 투자했다고 알려지면서 투자심리는 크게 개선됐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에게는 주주회사로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되고, 기업들에는 페널티를 줌으로써 평가에 신경 쓰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일시적 주가 부양 효과보다도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들의 문제 개선 노력이 동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국 차이 고려…실효성 부족 비판도
다만 일각에선 일본·한국 간 경영환경·지배구조 차이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금처럼 권고사항으로 하면 기업들이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며 "일본이 증시 리그를 재편한 것처럼 단순 체급 차이로 분류한 코스피와 코스닥을 세분화하는 등 기업들이 실제 압박을 느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TSE는 2022년 4월 글로벌 기업 중심의 '프라임', 중견기업 중심의 '스탠더드', 신흥기업 중심의 '그로스' 등 3개로 시장을 재편했다.
한일 양국의 기업 소유구조가 달라 일본의 정책을 답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상훈 경북대 교수는 "일본의 경우 '재벌'이라는 개념이 없고 금융기관이 기업 대주주인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개인이 소유주인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정책 어젠다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본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똑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후 단계인 공시 시스템을 손보는 것보다 사전에 문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앞단에서 막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상법 제382조3항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까지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금융당국은 거버넌스 개혁 차원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함께 소액주주의 주주총회 참석을 늘리기 위한 온라인 전자주주총회 제도화 등을 추진한다. 자사주 제도 개선 등도 함께 추진한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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