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무전공, 4분의 1이 '컴공'…쏠림 현상 넘어야 성공한다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확신이 없는 친구들도 있죠. ‘4차 산업혁명’ 이런 이야기가 많이 들리니까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2021년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으로 입학했던 한 학생은 “전공을 선택할 때 ‘적성’도 중요하지만, ‘시류’도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화여대는 2018년부터 호크마교양대학을 통해 모집정원의 약 10%인 350여명을 무전공으로 선발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2학년 전공 선택 때 보건의료·사범계열을 제외하고 어느 전공이든 정원·성적 제한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최근 교육부가 확대 방침을 밝힌 무전공 입학 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롤모델’ 격인 이화여대 사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화여대는 올해로 7년째 무전공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쏠림’, ‘기초학문 붕괴’ 등의 논란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공, 18학번은 5.5%→22학번은 28%로
2022년 입학생은 28.7%가 컴퓨터공학을 선택했다. 당시 무전공 모집정원 359명 중 100여명이 컴퓨터공학과로 갔는데, 이는 수시 모집하는 컴퓨터공학 전공생(53명)의 약 2배였다. 경영학과(18.8%), 전자전기공학(9.3%), 화공신소재공학(8.3%), 커뮤니케이션미디어(6.5%) 학과가 뒤를 이었다. ‘문송(문과 죄송)합니다’로 표현되는 인문계열의 취업난과 AI·소프트웨어 관련 분야가 각광을 받는 시류가 무전공 입학생들의 학과 선택에도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무전공 입학해 컴공과에 진학한 21학번 황모씨는 “통합수능 전 문과로 수능을 봐 공학계열 학과에 진학하기 어려웠는데, 호크마는 공학 학과를 포함해 어디로든 진학할 수 있다고 해서 선택했다”고 했다. 2022학년도부터는 ‘문·이과 통합수능’으로 이과생의 ‘문과침공’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호크마교양대학 정원 중 일부를 문과계열로 선발하고 있지만, 선택과목 제한이 없어 이과생도 지원할 수 있다.
불가피한 쏠림과 미달, 해법은
이화여대 컴퓨터공학과 용환승 교수는 “학생 수가 늘어나면 강좌 수를 늘려야 하는데, 컴퓨터 분야는 교수는 물론 강사 구하기도 어렵다”며 “결국 한 수업에 들어가는 수강 인원을 늘리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1학기 전공을 선택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도 이런 쏠림 현상이 있었다. 156명 중 45명(28.8%)이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
반대로 ‘미달 현상’이 발생하는 학과도 있다. 2020년부터 인문사회·자연공학·예술 등 큰 계열별로 무전공 학생을 선발하는 덕성여대는 지난해 기준 독어독문 전공 재학생이 21명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하면 한 학년에 5명꼴이다.
기업들 “신입사원 67.5% 이공계열 뽑겠다”
통계청이 4년제 대졸자의 전공과 직업 선택 연관성을 조사했더니 34.5%가 “관계없다”(2022년)고 응답하기도 했다.
이화여대의 한 학생(컴공과 복수전공)은 “반도체, AI 관련 인재가 없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는데 당연히 그 분야로 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겠나”라며 “학과 벽 때문에 소프트웨어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왜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니까 큰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전공 입학이 기초학문 붕괴를 가져온다는 교수사회의 반대 목소리도 여전하다. 교수들의 불만에 비인기학과를 보호하는 장치도 생기고 있다. 신입생 전원을 무전공으로 모집하는 덕성여대는 선택 학생이 적은 전공의 폐강 기준을 대폭 완화해 1~2명의 수강생만 있어도 강의 개설이 가능하도록 했다. 기존 폐강 기준은 전공은 10명 이하, 교양은 20명 이하였다. 이화여대 백지연 호크마대학장은 “수시를 통해 기존 학과 정원의 80% 이상을 모집하는 등 학문 다양성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생 정원 붙잡는 방식의 학문 양성 고민해야”
경직된 학사 구조와 교수 사회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6년부터 무전공으로 학생을 선발해 온 한동대 관계자는 “비인기학과가 된 교수들은 학습법을 바꾸거나 다른 학문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고, 학생들의 선택을 받아왔다”며 “우리 학교에선 교수들도 다른 전공을 공부하는 게 익숙한 문화”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철학 강사는 “학부에 철학과를 유지해도 철학과 대학원생이 없는 상황이다. 학문 후속세대 양성은 학부생 정원을 붙잡는 게 아닌 다른 방식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송다정 인턴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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