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당근책만으로 주가 저평가 해소될까
올해 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주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되는 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무성하다. 제시되는 해법의 한 갈래는 주식 투자를 꺼리게 하는 금융투자소득세, 기업승계를 막는 과도한 상속세를 손보고 자본시장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갈래는 대주주의 이익 편취행위를 막고 일반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방안은 주로 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고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하겠다고 했다. 지난 17일에는 가업 승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과도한 상속세를 저평가 원인으로 지적했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현상이 이런 당근책만으로 해소될 것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국내 중견 상장사의 성장성을 믿고 장기투자해 온 어느 외국계 펀드가 2년 전에 당한 일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미국의 가치투자펀드인 테톤캐피털파트너스는 ㈜한샘에 13년간 장기투자하면서 1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대주주인 창업주 일가가 27.7%의 지분과 경영권을 당시 주가의 두 배 가격인 주당 22만원에 한 사모펀드에 전격 매각했다. 한샘은 이 과정에서 분기 영업적자를 감수하며 임직원들에게 수백억원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했고, 회삿돈으로 매입한 28%에 달하는 자사주는 이러한 경영권 매각을 가능하게 하는 지렛대로 쓰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테톤을 비롯한 일반 주주들은 철저히 소외되었고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미국에서라면 이사회가 전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이렇게 대주주만 과도한 프리미엄을 독차지하는 경영권 매각에 협조할 수 없다. 그랬다간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기 때문이다. 대주주만 독점하는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면에 해당한다. 대주주가 일부 지분만으로 회사의 이익을 독점할 수 있으니 나머지 소액주주들의 주식은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니 어느 누가 한국시장에서 장기투자를 하겠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관해 최근 영국의 대표적인 연기금 허미스가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은 뼈 아플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이 보고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수준 이하의 법률과 규정 덕분에 한국 대주주들은 자기 자신에게 많은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반면 소수 주주들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본시장을 공정하게 작동시키는 법치주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 대주주들이 회사 이익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방법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주주들이 고율의 상속세를 내지 않고자 주가를 낮추려 일부러 배당을 적게 하며, 대신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를 통해 현금을 빼내가며,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서 소각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우호적인 자에게 매각하여 경영권을 방어한다. 급기야는 주식교환이나, 교부금합병, 소수주식 강제매수를 통해 대주주에게 주식을 싸게 팔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사회가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아 대주주만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차지하고, 일반 주주들은 오히려 주가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경영권 매각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자본시장 발전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선 자본시장에서 공정과 상식이 통할 수 있도록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이사들의 전체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소액주주들이 헐값에 축출당하지 않도록 주식교환, 합병, 소수주식 강제매수 시 소액주주들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반영하는 공정가격으로 보상받도록 해야 한다. 물적분할 후 중복 상장하는 것과 같은 행태가 없어지도록 지주회사 규제를 다시 개편해야 한다.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당근책은 기득권만 강화할 뿐이다.
김주영 변호사·법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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