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 임계점 넘어섰다” 소나무재선충 3차 공습 현실로

박상은 2024. 1. 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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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주민 한모(73)씨는 잿빛으로 변한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마음이 안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를 급속도로 말려 죽이는 해충이다.

소나무재선충 안전지대가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다.

소나무재선충 방제는 매개충이 번데기 형태로 나무 속에 머물고 있는 10~3월 겨울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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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재선충 끝나지 않은 싸움] ① 고사목 즐비한 포항 호미곶
[르포] 대구·포항·경주 돌아보니… ‘잿빛 무덤’ 현실화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포항 남구 임곡리 산지를 드론으로 항공 촬영한 모습. 대부분의 소나무가 메말라 잎이 황토색으로 변해있다. 오른쪽은 대구 달성군의 한 도로에서 촬영한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소나무. 주택가나 도로에서도 감염 소나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녹색연합 모니터링, 박상은 기자


“우리 젊을 때 저 소나무를 심었거든. 소나무가 파랗게 꽉 들어차 있었는데, 순식간에 죽어버리더라고. 병이 들어서 그렇다 하대요. 나무 안에 벌레가 들어서…”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주민 한모(73)씨는 잿빛으로 변한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마음이 안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청명한 바다와 어우러진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수십 년간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었던 호미곶의 소나무 군락지는 고작 2~3년 사이에 거대한 ‘나무 무덤’으로 변했다. 한씨는 “이 동네도 저 동네도, 살아있는 나무가 없다”고 했다. 치사율 100%의 불치병, 소나무재선충병이 일대를 휩쓴 결과다.

단풍 아닙니다… 붉은 소나무의 진실
대구 달성읍의 한 도로에서 보이는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소나무들. 초록색 소나무와 붉은 소나무가 뒤섞여 있다. 박상은 기자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대구 달성군 부곡리 일대. 녹색연합 모니터링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를 급속도로 말려 죽이는 해충이다. 특정 곤충의 몸을 타고 소나무를 옮겨 다닌다. 한국은 이미 2007년과 2014년 소나무 재선충 대확산을 경험했다. 그리고 재작년부터 지난해에 걸쳐 ‘3차 공습’이 시작됐다. 2021년 30만 그루까지 내려갔던 소나무재선충 피해 나무 수는 2022년 37만으로 증가했고, 지난해 4월 기준 106만5900그루로 폭증했다.

지난 24일 대구 달성군, 경북 성주군·고령군, 포항 남구, 경주 감포읍 등을 돌아본 결과 소나무재선충 피해는 ‘몇 그루’로 정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잎이 붉게 시들어가는데, 눈에 닿는 대부분의 산지에서 붉은 소나무가 발견됐다.

포항 남구 호미곶 해안도로 풍경.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완전히 메말라 죽은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박상은 기자
포항 남구 호미곶 일대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녹색연합 모니터링


포항에 가까워질수록 피해는 극심했다. 황토색이 된 잎을 완전히 떨구고 죽은 소나무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대표적인 피해 지역으로 꼽히는 호미곶은 해안가 소나무가 ‘전멸’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라 비틀어진 소나무가 주택가 쪽으로 위태롭게 기울어 있거나, 갈라지고 쓰러져 뒤엉킨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렇게 말라 죽은 소나무들은 재선충을 다시 확산시키는 ‘번식지’이기도 하지만, 산불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그 피해를 더욱 키울 수 있다.

방제가 확산 속도 못따라가…전국 감염 비상
지난 24일 경주 감포읍의 한 캠핑장에 심어진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돼 황토색으로 변해 있다. 박상은 기자

정부는 지난 11일 대구 달성, 안동 임하, 고령 다산, 성주 선남, 밀양 상남, 포항 호미곶 등 4만483ha를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소나무는 행정구역과 관계없이 분포하고, 소나무가 있는 곳에 재선충이 있다. 경주는 특별방제구역이 아니지만, 포항에서 연접해있는 경주 감포읍으로 넘어가자마자 붉은 소나무가 즐비했다. 소나무재선충이 발병하면 지정되는 ‘소나무류 반출 금지’ 구역은 지난달 기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5개 지역에 퍼져 있다. 소나무재선충 안전지대가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다.

소나무재선충 방제는 매개충이 번데기 형태로 나무 속에 머물고 있는 10~3월 겨울에 진행된다. 이 시기에 감염 나무를 제거해서 확산을 막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제 방법이다. 문제는 속도다. 정부는 감염 나무에 QR코드가 박힌 흰색 띠를 둘러 관리하지만, 나무를 베는 속도보다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르다. 소나무 한 그루에서 나오는 매개충은 수백 마리로, 한국에 자생하는 육송·해송은 재선충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재선충에 취약하다. 이런 소나무가 국내 산림의 25%다.

전문가들은 하루아침에 재선충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2014년 2차 확산을 잠재운 뒤 소극적으로 진행된 방제가 현재 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부 극심 지역은 ‘방제 임계점’을 넘어 손쓰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림재해 전문가인 정규원 산림기술사는 “방제 포기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을 책임질 주체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포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영덕, 영천, 청송 등으로 확장될 것이고, 대구 역시 확산 속도가 빨라 합천, 거창, 함양, 남원, 김천 등이 감염될 수 있다. 가야산 국립공원도 위험하다. 안동은 영양, 청송, 봉화 등의 임업적 활동을 저해 할 것이며 송이버섯 생산지의 파괴를 가져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소나무재선충이란?

소나무재선충은 크기 1㎜ 내외의 실 같은 구조를 가진 선충이다.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에 기생해 나무를 옮겨 다닌다. 소나무 안에 침투해 수분, 양분 이동통로를 막아 나무를 말라 죽게 만든다. 치료 약이 없어 치사율은 100%다. 막강한 번식력을 자랑하는데다 매개충이 바람을 타고 4㎞까지 이동해 섬 지역에도 재선충을 확산시키고 있다.

포항·경주·대구=글·사진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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