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진도와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어느 날 갑자기 개가 생겼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부모님이 전원주택 생활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아직 집 공사도 마치지 않았고 사람이 들어가 살기도 전인데, 심지어 우리 가족은 개를 키워본 적도 없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개를 데려와 ‘턱’ 맡겼다. 시골 생활을 하려면 마당 개 한 마리쯤 있어야 한다면서. 그렇게 집에 온 것이 코커스패니얼인 뽕띠와 백구 소리였다.
2010년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이미 부모님이 계신 천안을 떠나 서울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강아지들이 얼마나 쑥쑥 자라는지는 엄마아빠가 보내주는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띄엄띄엄 주말에만 얼굴을 비추는 나를 개들은 처음부터 환영해 줬다. ‘집에 개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군!’ 함께 산책을 하면서 낯선 동네와 빠르게 친해지고, 강아지들의 속도에 맞춰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기도 했다. 개들의 실외 배변과 산책을 담당한 아빠가 뒷산으로 산책 다니며 운동량이 늘어난 것도 내심 안심되는 일이었다. 마당에 지은 개장은 번듯했고, 초록색 페인트로 예쁘게 칠한 개집은 여느 시골 개들의 집과는 조금 달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기준이 축적돼 있던 내 눈에 마뜩잖은 구석이 있었다. 아빠가 포대째 사오는 사료는 ‘로얄캐닌’이나 ‘내추럴발란스’같이 내가 알던 브랜드에 비하면 저렴해도 너무 저렴했다. 과연 영양소가 존재하긴 할까? 반려동물은 구강 관리와 염분 관리가 중요한데, 아빠는 자꾸 소리에게 사람 음식을 줬다. 과일만 먹는 뽕띠와 달리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소리를 보면 ‘누가 똥개 아니랄까 봐’ 싶어 어쩐지 속이 터졌다. 산 밑에 자리한 전원주택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꽁꽁 언 밤이면 두 마리는 각자의 집이 아닌 한집에 들어가 꼭 붙어 잤다. 부모님은 둘의 우애가 좋다며 기특해했지만, 나는 뜨뜻한 온돌방에서 노곤노곤 늘어진 우리 집 고양이를 떠올렸다. 그러나 대도시 반려동물의 삶 혹은 전문가와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상식과 다소 다르다고 해서 이토록 해맑은 얼굴로 반려인을 따르는 뽕띠와 소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었다. 매일 개 두 마리를 돌보고 함께하는 건 부모님이므로 끽해야 한 달에 두세 번 얼굴을 비치는 게 전부인 내가 한 마디를 얹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결국 충돌의 시간이 다가왔다. 의제는 다름 아닌 중성화 수술. 지금은 각종 생식기 질환 예방을 비롯한 중성화 수술의 장점이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고, 정부에서도 유기견과 길고양이들의 개체수 조절 및 원활한 공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중성화 사업을 지원하는 모양새지만 2010년대 초반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추운 날씨가 조금씩 수그러들던 봄의 초입, 수컷인 소리가 암컷인 뽕띠에게 마운팅하는 것을 발견한 나는 초조해졌다. 진도 믹스와 코커스패니얼의 교배 가능성 여부보다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이 계속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결국 중성화 수술 여부를 두고 아빠와 나 사이에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친척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은 거실 한복판에서 울먹이며 “이 세상에는 이미 태어난 생명이 너무 많다고!”라는 애니메이션 대사 같은 외마디를 외쳤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결국 두 마리는 순차적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 일은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뽕띠는 2022년에 세상을 떠났다. 12년 동안 짖는 소리 한 번 들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순하디순한, 집 지키는 마당견으로는 형편없었던 강아지였다. 소리에게 다른 강아지 친구는 없었지만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소리에게는 아빠가 있었으니까. 다만 겨울밤 뽕띠와 몸을 꼭 붙이고 웅크려 자던 모습이 떠올라 그해 겨울 소리에게 남색 패딩 재킷을 선물했다. 어색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소리는 난생처음 입는 옷에 곧바로 적응했다. 자태도 제법 의젓해서 치아 스케일링을 위해 시내 동물병원에 데려가던 날에도 조끼를 입혔다. 단지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리를 좀 더 상냥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진도 믹스를 비롯한 대형견을 도시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이 아이도 사랑받는 반려견임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옷이나 장식에 신경 쓴다’고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올해 소리는 14살이 됐다. 14세의 대형견은 사람으로 치면 아흔 살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지난해 소리는 구강질환으로 인해 결국 몇 개를 발치했고, 뒷다리 관절이 안 좋아져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저앉아 거의 들다시피 해서 돌아와야 했다. 항상 똑똑하게 해냈던 배변 습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매일 아침 소리에게 관절약을 먹이고, 배변을 치우고, 각종 죽을 끓여 먹이는 것은 아빠의 몫이었다.
소리를 만난 뒤 소리를 닮은 개들을 각별하게 보게 됐다. 덩치와 꼬리가 말린 모양만 조금씩 다른, 주로 식당이나 집 앞에 묶여 있는 진도 믹스들. 유기견 센터나 보호소, 심지어 개 농장 사진을 봐도 소리를 닮은 개들이 너무 많아서 ‘이 속에 소리가 있다면 과연 내가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좌절도 했다. ‘복날만 되면 개 도둑들이 개를 훔쳐간다’는 우려를 할 만한 동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까이에서 본 시골 개들의 삶은 내가 알던 상식과 많이 달랐다. 주인이 옆 동네로 이사 가면서 예전 집에 두고 간 멍멍이. 1주일에 한 번씩 오는 주인이 부어두고 가는 사료와 물은 여름이면 썩고, 겨울이면 꽁꽁 얼었다. 결국 그 개는 어느 여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뭘 잘못 먹었는지 윗집 개가 며칠을 아팠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아픈 개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 자체를 유별나거나 돈 아까운 일로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아랫집 풍산개는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는데, 아빠가 누구였는지 새끼들 생김새가 중구난방이었다. 명절마다 SNS에서 인기를 끄는, 시골 친척집을 찾은 사람들이 ‘역시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이 제일 귀엽다’며 찍어 올린 사진 속 강아지들과 꼭 닮았던 그 강아지들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떤 집은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장성한 백구 두 마리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상심한 아내를 위해 그 집 아저씨가 ‘50만 원이나 주고 진짜 진도를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생각했다.
시골 개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된 이후 아파트 단지나 산책로에서 예쁘게 미용한 채 배변봉투를 든 주인과 나란히 걷는 개들을 마주치면 조금은 심란해진다. 물론 품종견과 소형견도 버려지며, 이왕 태어난 개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도심과 도심이 아닌 곳에서 마주하는 개들의 생김새와 종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나뉘는 현상은 분명히 부자연스럽다.
학대, 무관심, 애정과 책임감, 과도한 자아 의탁…. 인간이 아닌 종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태도는 그 편차가 극심해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과도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 최저선과 보편적 기준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결국 제도의 힘일 것이다. 지난 1월 9일 개 식용을 목적으로 사육 · 도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분명히 어떤 개들에게 다른 미래를 살게 될 가능성이 열린 것처럼 말이다. 애초에 ‘전원주택에 살려면 집 지키는 개가 있어야지’라는 생각 때문에 뽕띠와 소리가 우리 집에 왔던 것처럼. 내 외로움을 채워주니까, 기쁨을 주니까, 아이의 정서 발달에 좋다니까 같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동물을 데려오는 일이 과연 당연한 일인지 또한 돌아볼 문제이다. 동물을 버리는 것도, 반려동물을 둘러싼 공고하고 거대한 산업이 유지되는 것도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새로 주문한 소리의 패딩 조끼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카키색. 난데없이 낯선 집에 와 팔자에도 없는 옷을 입고 어쩌면 사람 나이로 100세까지 살게 될지도 모르는 소리가 원하는 견생은 무엇이었을지 영영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보이는 소리의 짧고 가지런한 하얀색 속눈썹처럼, 소리 덕분에 내가 좀 더 세심하게 보게 된 세상이 있다. 그러니 어쩌다 당신이 개와 함께하게 됐다면 지금 옆에 있는 생명을 통해 다른 생명의 애틋함 또한 상상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그런 배움과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이 충직한 존재들이 기꺼이 우리 옆에 머무르는 이유를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인간중심적 사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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