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는 또 다른 프리미엄”… ‘중고 명품’ 전성시대
희소성 이유 새 것보다 비싼 값
중고 명품이 새 제품보다 더 잘 팔리는 시대다. 단순히 고가 사치품으로만 여겨졌던 명품이 ‘경험적 소비’의 대상이 되면서다. 새 제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과거의 유행을 현재로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빈티지’는 프리미엄의 다른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가 지난해 패션 행사 ‘멧 갈라(Met gala)’에서 입은 샤넬 드레스는 여전히 회자된다. 1990년대 드레스를 본떠 만들어 ‘빈티지 드레스’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29일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중고 명품 시장은 450억 유로(약 65조원) 규모를 기록했다. 2017년과 비교하면 6년 만에 125% 성장했다. 같은 기간 중고가 아닌 명품 시장이 43% 증가한 데 비해 성장 속도가 더 가파르다. 중고 명품은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비싸게 거래된다. 새 제품보다 가격이 더 붙는 경우는 흔하다. 명품이 ‘재테크’로 여겨지는 이유다. 에르메스는 새 제품보다 중고 제품이 25% 더 비싸고, 롤렉스와 파텍필립은 각각 20%, 39%의 프리미엄이 붙어 판매된다. 미국 시장에서 새 제품이 1만 달러(약 1300만원)에 판매되는 에르메스 버킨백은 중고로 2만4000달러(약 3200만원) 수준에 거래된다. 롤렉스 ‘데이토나’ 모델은 새 제품이 1만5100달러(약 2000만원)인 데 반해 중고는 3만7000달러(약 5000만원) 이상 가격으로 거래된다.
해외 중고 시장은 국내보다 더 일찍 거래 플랫폼이 형성됐다. 온라인으로 명품 시계를 거래하는 플랫폼 워치박스는 지난해 오프라인 업체들과 합병해 ‘The 1916 company’로 출범했다. 이 업체의 중고 명품 시계 재고 규모는 2억 달러(약 27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연간 매출은 5억 달러(약 67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명품 의류와 가방 등을 파는 온라인 플랫폼 ‘더 리얼리얼’은 나스닥에 상장해 최근 1년 동안 주가가 30% 올랐다. 더 리얼리얼을 이용하는 연간 활성 구매자는 95만명이 넘는다.
국내 시장은 유통과 IT의 결합으로 성장세를 키우고 있다. 네이버의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은 중고 명품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중고 명품 ‘시크’를 운영하는 ‘팹’을 인수해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북미 중고거래 플랫폼 ‘포시마크’와 일본 ‘소다’를 인수했고, 스페인과 태국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2021년 중고나라를 인수한 사모펀드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하며 중고 시장에 진출했고, 신세계그룹은 벤처캐피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통해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에 스니커즈 리셀 매장 브그즈트랩(BGZT LAB)을 운영하고 있다.
명품 시장 성장은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신제품에서 중고 명품으로의 시장 전환도 활발하다. 2030년에는 Z세대가 명품 시장 구매자의 25~30%를 차지하고, 밀레니얼 세대는 50~55%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명품 구매자 중 85%가 MZ세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보고서에서 명품 중고 시장 성장세가 연간 20~30%를 기록할 것이며, 중고 거래 시장에서 MZ세대가 주도적으로 소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경험적 소비 선호 현상은 명품 시장 내 중고 거래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있어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따르면 MZ세대 중 35%가 중고 명품을 구입한 적이 있고, 26%는 명품을 대여한 적이 있다. 보고서는 “명품 브랜드들은 MZ세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으로 MZ세대의 충성도를 높여야 한다”면서 “젊은 층을 확보하는 동시에 고령 소비자를 위한 접근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MZ세대는 커뮤니티를 중시하고, 고령층은 전문가를 신뢰하는 만큼 명품 판매의 접근법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고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MZ세대는 주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고 명품을 사고팔고, 고령층은 오프라인 플랫폼을 선호한다.
다만 중고 명품의 가품이나 품질 문제는 시장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검수를 강조하는 이유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은 가품 판매 게시글을 관리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했다. 당근이 도입한 AI는 가품 판매 게시글의 패턴을 학습해 가품 판매 업자, 공장 등이 사용하는 은어를 지속 업데이트해가며 모니터링을 진행한다. 번개장터는 ‘번개 CARE 서비스’로 명품 검수 등 인증 서비스와 클리닝, 폴리싱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신사 자회사인 SLDT가 운영하는 솔드아웃은 전문 검수 인력을 통한 검수 서비스를 하고 있다.
오세범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명품 시장에서 중고 명품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한 자릿수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높은 가격의 명품을 거래하는 경우에는 가품과 품질 등 제품 관련 우려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중고 명품 시장 성장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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