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특별법 거부권' 하루 앞둔 유가족들, 대통령실까지 오체투지... "희망 앗아가지 말라"
[김성욱, 이정민 기자]
▲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 4대종교인들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앞에서 대통령실까지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즉각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30일 국무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진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멈추고 즉각 공포할 것을 촉구했다.
ⓒ 이정민
▲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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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 이곳 이태원 참사 현장에 섰습니다..."
29일 오후 1시 59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457일 전 이곳에서 159명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폭 3.2미터의 좁은 언덕 앞에서 온몸을 땅에 던지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압사가 일어난 골목을 제대로 올려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흐느꼈다. 유가족들은 한겨울 언 땅에 두 무릎을 꿇고, 두 팔과 이마까지 완전히 아스팔트 바닥에 닿도록 절을 했다. 그렇게 참사 현장에서 1400m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까지 2시간을 기었다. 이르면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4대 종교 교인, 시민 50여 명은 이날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했다. 지난 2022년 10월 29일 참사가 일어났던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길부터 용산 대통령실까지였다. 오체투지를 시작한 오후 1시 59분은 희생자 159명을 뜻했다.
▲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대통령실까지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즉각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 및 기자회견'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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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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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정도 지나자 유가족들의 무릎이 눈에 띄게 휘청이고 호흡이 가빠졌다. 이마엔 검은 자국이 패였다. 눈가는 땀과 눈물 범벅이었다. 겉에 입은 회색 방진복 겨드랑이가 찢어지기도 했다.
가족들은 참사 현장에서 불과 490m 떨어진 용산구청 앞을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 대통령실까지 향했다. 용산구청뿐만 아니라 이태원 파출소는 참사 현장에서 불과 130m, 용산소방서 119안전센터는 참사 현장에서 불과 26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급하게 마련한 용산 대통령실도 참사 현장에서 걸어서 20여 분이면 닿는 거리지만, 오체투지로는 꼬박 2시간이 걸렸다.
현재 진행 중인 이태원 참사 재판에 나온 수사자료에 따르면,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알고 있긴 했을 테지만, 업무 집중을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쪽으로 좀 더 집중하지 않았나 한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오체투지 끝 울부짖은 가족들 "사람인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즉각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 및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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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윤 대통령을 향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거듭 촉구했다. 최근 대통령실에서 특별법 거부 의사를 밝히는 동시에 제시한 '유가족 지원책'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유가족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공포하는 것만이 유가족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지원책"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참사 발생 437일만인 지난 9일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특별법은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구성하자는 내용으로, 정부·여당의 반발을 우려해 특조위 개시 시점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고 특검 요구 권한까지 없앴다.
그럼에도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이르면 내일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거론한 상태다. 여권에선 이미 수사를 마친 사안에 대해 별도의 특조위를 가동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지만, 실무 선에 그친 수사는 '꼬리 자르기'였다는 비판이 크고 아직까지 경찰·용산구청·소방 등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자 처벌도 이뤄진 바 없다.
▲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 4대종교인들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즉각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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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오체투지 행렬은 대통령실을 지키는 경찰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2시간여 만에 대통령실 앞에 선 희생자 고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57)씨는 경찰이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붙잡고 "사람인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한참을 울었다. 유가족들은 대통령실을 향해 서서 "윤석열 대통령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즉각 공포하십시오.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염원입니다"라고 소리쳤다.
희생자 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62)씨는 "윤석열 대통령님, 우리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희망을 앗아가지 마십시오. 외면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 이정민
▲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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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 4대종교인들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즉각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마친 뒤 피켓을 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