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해외 캠핑, 아들과 캠핑카 안에 갇힐 줄이야
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오영식 기자]
- 지난 기사 '대륙 끝 호카곶, 아들은 개다리춤을 추며 뛰어다녔다'(링크)에서 이어집니다.
▲ 스페인 톨레도 전망대에서 보는 동화같은 톨레도 전경 |
ⓒ 오영식 |
포르투갈에서 나와 스페인 톨레도에 도착해 예약해 둔 캠핑카로 찾아갔다. 톨레도 성이 보이는 공공주차장에 들어서니 한쪽에 주차된 큰 트럭이 보였다. 옆에 주차한 후 주인을 만나서 시설에 대한 안내를 받고 열쇠를 건네받았다.
나는 아들과 침대에 누워 보고 이것저것 열어 보며 캠핑카를 구경했다. 우린 살짝 신나있었다.
"아빠, 난 2층에서 잘래."
"그래, 아빠는 1층에서 잘게."
아들과 캠핑카 주변 공원을 둘러보고 저녁으로 먹을 치킨을 포장해 캠핑카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가 지자, 날씨가 쌀쌀해져 안에서 출입문을 닫았다. 그런데 다시 문을 열려고 하자 자동으로 잠긴 문이 열리지 않았다. 조금 전 주인에게 받은 열쇠를 돌려 봤지만, 열쇠는 헛돌기만 하고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해서 주인에게 전화하려 했더니 이번엔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아 전화 연결을 할 수 없었다.
"태풍아, 큰일 났어! 여기 문이 안 열려."
"진짜? 아빠 거짓말하지 마!"
"진짜야. 열쇠도 돌려봤는데 문이 안 열려."
3톤쯤 되는 트럭을 개조해 만든 캠핑카는 뒤편으로 출입문이 있고, 양쪽 옆에는 좁은 창문이 4개 정도 있었지만,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문은 뒤쪽의 출입문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여기에서 나가려면 주인이 열쇠를 가져다줘야만 안에서 열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주인과 전화통화가 불가능하다는 점. 내일 정오까지는 영락없이 갇힌 채 기다려야 할 신세가 돼버렸다.
▲ 톨레도에서 이용한 캠핑카 톨레도 성을 볼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숙소이기도 했다. |
ⓒ 오영식 |
"아, 진짜 어떡하지. 큰일이네."
"아빠, 내가 창문으로 밖에 나갈까? 나가서 아빠를 구해 줄게."
화장실 걱정으로 아빠는 심각한 표정인데도 아들은 재밌어한다. 그런 아들을 보니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너만 나가서 아빠한테 먹을 거 넣어 주게?"
"응, 내가 아빠를 꿀꿀이(돼지)처럼 밖에서 먹이 주면서 살려 줄게."
이런 상황에도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아들을 보니 웃음이 나서 한참을 웃다가 순간 머릿속에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에 주인이 캠핑카에 관해 설명할 때였다. 시설에 관해 설명할 게 많아 주인이 속사포처럼 말할 때, 스쳐가듯 분명히 들었던 정보 하나가 있었다.
"이 열쇠는 캠핑카에서 떠날 때 밖에서 잠그는 거고요, 여기 안에서 잠그는 열쇠는 싱크대 옆에 걸어 놓을게요. 문에 꽂아 놓으면 애들이 장난 치다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나한테 준 열쇠는 밖에서 잠그는 열쇠고, 문을 안에서 여는 열쇠는 싱크대 옆에 있다고 했지!'
싱크대 선반을 보니 정말로 작은 열쇠 하나가 걸려 있었고, 문에 꽂아 돌려보니 그제야 문이 열렸다.
"태풍아, 네가 살렸다. 네가 웃겨줘서 열쇠가 어디 있는지 갑자기 생각났어."
"진짜? 아빠, 그래서 돼지는 원숭이랑 같이 다녀야 하는 거야! 원숭이도 도움이 될 때가 있지?"
"하하! 그래, 우리 원숭이, 돼지아빠랑 꼭 붙어서 같이 다니자~ 고마워."
동화 속 도시같았던 톨레도
▲ 톨레도성 2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톨레도 |
ⓒ 오영식 |
우선 세르반테스 거리부터 골목길을 따라 톨레도 대성당으로 갔다. 800여 년 전부터 지어진 톨레도 대성당은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그 규모에 놀랐고 다음은 내부의 벽화와 유물들로 인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오래된 성당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를 누군가 꾸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린 아들만 아니라면 하루 종일 오디오 안내를 들으며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었지만, 아빠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아들은 빨리 나가서 성당 앞에 있던 회전목마를 타자고 졸라댔다.
"아빠, 빨리 나와~ 저거 이제 끝나면 어떡해?"
"아…. 알았어. 그래, 가자."
▲ 톨레도 대성당과 회전목마 아들은 800년의 역사가 있는 톨레도 대성당보다는 회전목마를 좋아했다 |
ⓒ 오영식 |
바르셀로나에서 안전한 주차장 찾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였다. 숙소에서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워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들이 다가와 말했다.
"아빠, 나…."
"왜? 게임 하자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아빠한테 하나 숨긴 거 있어."
"뭔데?"
"사실은 나 이빨이랑 귀가 아픈 거 같아."
"근데 왜 말 안 했어? 아빠가 어디 아프면 바로바로 말하랬잖아."
"외국에서 병원 가면 더 무서울 거 같아서 참았어. 미안해."
그동안 아프면 참지 말고 바로 말하라고 여러 번 말했었다. 하지만, 아홉 살밖에 안 된 아들은 말도 안 통하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더 아플 거 같아 그동안 아픈 곳을 참았다고 말했다.
급하게 이곳저곳 인근 병원에 찾아갔지만, 한국 병원과 달리 조금씩 치료해서인지 현지 이비인후과에서는 간단해 보이는 아들의 중이염 치료를 1주일에 한 번씩 4주씩이나 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에서 나와 유럽에 체류한 지 60일이 넘어 솅겐 조약에 따른 유럽 내 최대 체류 일수인 90일이 다 채워져 가는 상황에서, 네덜란드에 4주씩이나 더 머물기는 힘들었다. 또 네덜란드 한 도시에서 4주간 지내는 비용이나, 한국에 잠시 귀국했다가 돌아오는 비용이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 바르셀로나의 하늘길 관광 도시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에는 아주 많은 항공노선이 있다 |
ⓒ 오영식 |
바르셀로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조건을 동시에 적용해 까다롭게 고른 그 주차장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러 갔다. 도착해 보니 정말로 내가 생각한 그런 곳이었다. 주변에 관광지는 없고 주택가가 바로 옆에 있으며, 현지인들도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공공주차장. 나는 안심하고 숙소로 왔다.
"난 여행 계속하고 싶은데."
"아니, 병원 가서 치료 다 하면 바로 다시 올 거야."
▲ 바르셀로나에서 찾은 주차장 이 곳에 한 달 이상 장기 주차를 해야 했다 |
ⓒ 오영식 |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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