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 쓴 선교사를 아십니까

김슬옹 2024. 1. 2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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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호머 헐버트 탄신 161주년 기념 행사 진행돼

[김슬옹 기자]

▲ 헐버트 박사 탄신 161주년 기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열린 헐버트 박사 탄신 161주년 기념행사 사진.
ⓒ 헐버트기념사업회
지난 1월 26일은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탄신 161주년 기념일이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는 그가 잠들어 있는 서울시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근처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탄신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헐버트 어린이 전기(2013, 한글을 지킨 사람들)를 쓴 바 있는 필자도 참여했다.

포틀랜드지 보도에 따르면, 헐버트는 1909년 미국 포틀랜드 교회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 한국인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들은 모든 권리와 재산을 빼앗겼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들을 대변할 것이다."(1 stand for Korean people, now and always. Despoiled of rights and possessions, my voice shall go out for them until 1 die.)"

같은 해 안중근 의사는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중국 뤼순 감옥에 있을 때, "헐버트는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고 일본 경찰에 진술했고, 그 기록이 통감부 기밀문서로 남아 있단다.

탄신 기념식은 백영찬 헐버트기념사업회 자문위원의 기도로 시작했다. 필자는 헐버트가 직접 1891년에 펴낸 최초 한글전용 인문지리 교과서 격인 161쪽의 <사민필지> 머리말을 낭독하였다. 사민필지는 헐버트(Hulbert, H.B.)가 지은 것으로, 현재는 숭실대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라고 한다.
 
 기념사를 하고 있는 김동진 회장(왼쪽)과 축사를 하고 있는 최용기 교수
ⓒ 김슬옹
 
<사민필지> 머리말에는 "중국 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 언문은 본국 글자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당시 언문(한글)을 깔보던 풍토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한글전용으로 펴내는 취지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최용기 선문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는 축사에서 <사민필지>의 위대성을 몇 가지로 압축해 설명했다. 첫째는 조선인을 배려해 도량형 단위를 미터법이 아닌 모두 조선식으로 한 사실을 국민들이 꼭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둘째는 조선인을 배려하여 버터 같은 외래어를 '쇠젖기름'이라고 하는 등 최대한 쉬운말, 순우리말을 살려 썼다는 점이다. 셋째는 이 책이 나오고 나서 3년 뒤 한글을 주류 문자로 선언한 고종의 국문 칙령이 나오는데, 그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았다. 넷째는 아래아(ㆍ)와 병서 글자 등이 정확히 쓰여 국어사 자료로도 소중하다고 보았다. 다섯째는 대마도를 조선땅으로 기술한 점도 매우 특기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번 행사에서 김동진 회장은 기념사업회의 2024년 행사로 추모식과 독후감 공모전 외에 헐버트 박사 건국훈장 훈격 상향, 헐버트 박사 일대기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영문판 출간, 미국 버몬트(Vermont)주에 헐버트 박사 생가터 표지석 설치 등의 계획을 발표하였다. 특히 그는 표지석 설치가 추진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생가터에서 탄신 축하 기념식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나아가 헐버트의 아버지가 담임 목사로 있던 교회의 원로 목사와 지난 25일 통화도 하고 메일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김 회장에 따르면 그는 헐버트 박사의 표지석 세우는 사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헐버트는 한국의 영웅일 뿐 아니라 미국의 영웅이라는 이유로 사업에 함께하는 이유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날 추운 날씨임에도 참석자들은 헐버트 생가터 표지석 추진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모두 꽃을 바치고 헐버트 선양 사업에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붙임] 사민필지 머리말 현대말 번역(김동진)

천하 형세가 옛날과 지금이 크게 같지 아니하여 전에는 각국이 각각 본국만을 지키고 본국 풍속만 따르더니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천하만국이 언약을 서로 믿고 사람과 물건과 풍속이 서로 통하기를 마치 한 집안과 같으니 이는 지금 천하 형세의 고치지 못할 일이라. 이 고치지 못할 일이 있은즉 각국이 전과 같이 본국 글자와 사적만 공부함으로는 천하 각국 풍습을 어찌 알며 알지 못하면 서로 교접하는 사이에 마땅치 못하고 인정을 통함에 거리낌이 있을 것이오.

거리낌이 있으면 정리가 서로 두텁지 못할지니 그런즉 불가불 이전에 공부하던 학업 외에 각국 이름, 지방, 폭원, 산천, 산야, 국경, 국세, 재화, 군사, 풍속, 학업과 도학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할 것이요. 이런 고로 대저 각국은 남녀를 막론하고 칠, 팔세가 되면 먼저 천하 각국 지도와 풍속을 가르치고 나서 다른 공부를 시작하니 천하의 산천, 수륙과 각국 풍속,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조선도 불가불 이와 같게 한 연후에야 외국 교섭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또 생각건대 중국 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 언문은 본국 글자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

이러므로 한 외국인이 조선말과 어문법에 익숙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 천하 각국 지도와 목견한 풍기를 대강 기록할 새 먼저 땅덩이와 풍우박뢰의 어떠함과 차례로 각국을 말씀하니 자세히 보시면 각국 일을 대충은 알 것이요 또 외국 교접에 적이 긴요하게 될 듯하니 말씀의 잘못됨과 언문의 서투른 것은 용서하시고 이야기만 자세히 보시기를 그윽이 바라옵나이다.

조선 육영공원 교사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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